소셜 벤처 단비기업❶
양윤재 공감과공유의제작소 PD
시니어 경험과 가치 다큐로 제작
공유하고 기억하며 문제 인식
모든 사람에겐 개인의 역사 있어

65세 이상 노인 인구의 상대적 빈곤율 37.6%,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노인 자살률 1위…. 빠르게 초고령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아픈 자화상이자 불명예다. 사회 뒤편으로 밀려나 언젠가부터 ‘노인’이라는 보통명사로 불리는 그들에겐 그들만의 역사는 없을까. 그 역사를 방치해 놔도 괜찮은 걸까. 

양윤재 PD는 사회 뒤편으로 밀려난 노인의 역사를 들여다본다.[사진=천막사진관]
양윤재 PD는 사회 뒤편으로 밀려난 노인의 역사를 들여다본다.[사진=천막사진관]

주름은 삶의 곡선이다. 색이 빠진 머리카락은 모짊의 흔적이다. 흔히 ‘노인’이라 불리는 사람들. 그들에게 삶의 역사가 없으랴. 옆집 할머니는 동네 제일 미녀로 오르내리며 미스코리아를 꿈꿨을 수도 있고, 그 옆에 옆집 어르신은 비행사를 희망했을지 모른다. 언젠가부터 우린 노인을 ‘보통명사’쯤으로 대우하진 않았을까. 

다큐멘터리를 비롯해 다양한 방송 프로그램을 20년 넘게 연출해온 양윤재(50) 공감과공유의제작소(이하 공공제작소) PD는 사회 뒤편으로 밀려버린 노인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했다. 고민의 결론은 자신의 주특기인 ‘다큐’를 활용해보자는 거였다. 우리 사회 시니어들이 살아온 삶의 경험과 가치를 다큐로 제작하고, 이를 공유하며 함께 기억한다면 지금의 문제를 조금이나마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설령 지금의 모습이 조금 초라하고 여유롭지 못하다고 해서 그분들이 살아온 모든 과정이 그렇진 않았을 거잖아요. 그분들도 한때 잘나갔던 시절이 있었을 텐데, 그런 이야기들을 담는다면 삭막한 세상에 조금은 울림을 줄 수 있지 않을까요?”

이런 생각을 조금 더 구체화한 계기도 있다. “지인 소개로 A씨 관련 영상 작업을 했습니다. A씨 인터뷰를 하고, 그분의 어머님을 만나 뵙기로 했는데 몸이 편찮으셔서 당시엔 찾아뵙질 못했어요. 그즈음 저도 다른 일로 바빠지면서 일이 흐지부지됐죠. 그러다 한참 후에 다시 진행해보자는 얘기가 나와서 2022년 1월에 처음 A씨의 어머님을 뵈었습니다. 그날 2시간 30분 정도 인터뷰를 하고, 그다음주에 한차례 더 방문해 일상을 촬영했죠.”

그로부터 2~3주 후 양 PD는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A씨였다. “어머님이 돌아가셨다”며 “장례를 4일장으로 치를 테니, 영상을 마무리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양 PD는 부랴부랴 찍어놓은 인터뷰를 정리해 8분짜리 영상을 완성해 A씨에게 전달했다. 그 영상은 A씨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상영됐다. 가족과 조문객들이 함께 A씨 어머니의 영상을 보며 그분을 추모했다.

이 일을 계기로 양 PD는 본격적으로 ‘나의 인생다큐’ 프로젝트의 문을 열어젖혔다. 어르신들의 살아온 이야기, 그분들의 역사를 진심으로 담기 위해서였다. 이같은 아이디어로 부천시 단비기업 공모에 사업계획서를 냈고, 지난해 6월 최종 선정됐다. “사실 이미 많은 사람이 이런 작업을 하고 있어요. 복지관에서도 하고, 어르신들이 직접 영상제작법을 배워서 스마트폰으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기도 하죠. 그럼에도 이걸 해보자고 한 건 우리의 삶은 모두에게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잘하는 일이 다큐 만드는 일이지만, 쉽지 않은 순간들도 많았다. 양 PD는 최근에도 현실적인 벽을 경험했다. 영구임대 아파트에 거주하며 열심히 사는 어르신의 사연이었는데, 자녀들 인터뷰를 해야 하는 단계에서 예상치 못한 장애물을 만났다. “만나서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양 PD의 제안을 두명의 자녀가 한사코 거절해 결국 전화통화로 마무리해야 했다. 

“나의 인생다큐는 자녀가 부모님께 옛이야기를 질문하는 형식입니다. 그런데 자녀는 대부분 ‘우리 부모님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하곤 해요. 새삼 뭘 궁금해하질 않죠.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우린 부모님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그래서 양 PD는 이 프로젝트를 진행할 땐 자녀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려 한다. 파편처럼 흩어져 있는 한 기억을 두고도 부모님과 자녀의 관점이 다를 때가 많아서다. “모든 사람에겐 개인의 역사가 있어요. 그건 부모님들도 마찬가지죠. 그들의 숨은 역사가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알려지고, 남겨지고, 기억되길 바라는 게 공공제작소가 지향하는 가치입니다.”

하지만 공공제작소가 가치를 실현하는 작업은 가시밭길의 연속이다. 특히 수익모델이 약하다는 지적을 숱하게 받는다. 양 PD도 그걸 모르는 건 아니다. 그래서 더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다만, 한가지는 자신 있다.

“영상이든 책이든 창작물이라는 건 결국 누군가가 봐야 의미가 있는 거잖아요. 방송도 시청률이 높아야 좋은 것처럼요. 영상을 찍어서 유튜브에 올려놓고 혼자만 보면 그건 그냥 개인적인 만족으로 끝나죠. 결국엔 그걸 유통할 수 있는 플랫폼을 어떻게 활용할 것이냐의 문제입니다. 제가 20년 넘게 영상을 만들었는데, 거기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웃음)” 

옛날엔 현장을 누볐다면, 지금 양 PD는 개인의 역사를 기록한다. 또 한번 새로운 출발선에 선 그의 어깨는 한없이 무겁지만, 첫발을 내디딘 그의 발걸음은 가볍다. 양 PD의 역사도 다시 쓰이고 있어서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편집자 주-

☞ 단비기업은 “가장 절실한 순간 가장 필요한 지원을 해주겠다”는 모토로 시작한 부천형 소셜벤처 브랜드입니다. 딱 한장만 내면 되는 ‘One page 사업계획서’ 시스템으로 문턱을 낮췄고, 2017~2022년 총 54개팀을 발굴했습니다. 이번 소셜기록제작소에선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나아가고 있는 단비기업 6기 중 8팀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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