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주의펀드 두 얼굴❷
행동주의펀드와 소액주주
크게 증가한 행동주의 캠페인
침체기 늘어나는 행동주의펀드
기업 흔들어 수익 올린 행동주의

행동주의펀드는 기업에 자사주 매입, 배당 확대 등을 요구해 주식 가치를 끌어올리는 투자전략을 사용한다.[사진=뉴시스] 
행동주의펀드는 기업에 자사주 매입, 배당 확대 등을 요구해 주식 가치를 끌어올리는 투자전략을 사용한다.[사진=뉴시스] 

기업의 지분을 공격적으로 매수한 후 배당성향 확대, 지배구조 개선 등을 요구해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행동주의펀드가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행동주의펀드의 활동이 경기침체와 증시부진이 나타날 때 활발하다는 거다. 하지만 행동주의펀드의 활약이 소액주주의 권리 강화로 이어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기업 지분을 사들인 후 자사주 매입, 배당 확대, 인수·합병(M&A), 재무구조 개선, 지배구조 개편 등을 적극적으로 요구해 주식 가치를 끌어올리는 헤지펀드.”

행동주의펀드가 이슈의 중심에 섰다. 행동주의펀드의 타깃이 된 기업들의 주가가 연일 출렁이면서 시장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엔터테인먼트 기업 SM엔터테인먼트, 담배·인삼 제조 판매 회사 KT&G, 의류생산업체 BYC를 비롯해 태광산업, 남양유업 등 산업과 기업의 성격에 상관없이 행동주의펀드의 대상이 됐다. 

그 대상의 수도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기업지배구조 조사업체 인사이티아(Insightia)에 따르면 2018년 16곳을 기록했던 국내 행동주의펀드 대상 기업은 2021년 27곳으로 증가했고, 지난해엔 47곳으로 늘었다. 4년 사이에 3배 가까이 증가한 셈이다. 미국의 투자은행 라자드에 따르면 지난해 행동주의펀드가 진행한 캠페인 수는 235건으로 2018년 249건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 때문인지 행동주의펀드의 타깃이 된 기업의 주가는 연일 춤을 추고 있다. 행동주의펀드의 날갯짓이 경영권 분쟁으로 비화하기라도 하면 주가는 더 가파르게 치솟았다. 지난 2월 28일 기준 SM엔터의 주가가 연초 대비 69.6%(7만5200원→12만7600원) 상승한 게 대표적이다. 

같은 기간 BYC는 35.4%(36만8000원→49만8500원), 오스템임플란트도 36.0%(13만7500원→18만7100원) 상승세를 기록했다. 주요 기업 중 행동주의펀드의 요구에 선을 그은 KT&G(8만9000원→8만8700원)의 주가만 하락했다. 

당연히 소액주주는 행동주의펀드를 두팔 벌려 환영하고 있다. 행동주의펀드의 손을 타면 주가가 오른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라서다. 하지만 행동주의펀드는 일반에겐 여전히 낯선 존재다. 그렇다면 행동주의펀드는 언제 시작됐고, 왜 시장의 관심을 받고 있을까. 

■ 경기침체와 행동주의펀드 = 행동주의펀드의 시작부터 살펴보자. 미국의 투자자책임연구센터(Investor Responsibility Research Center)에 따르면 행동주의펀드의 근간인 주주행동주의가 처음 등장한 건 1932년이다.

뉴욕시 통합가스회사의 주주총회에 참석한 루이스 길버트는 기업이 주주의 목소리를 무시하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이후 주총장을 다니며 기업 경영진에게 지배구조 개선과 같은 곤란한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일종의 주주행동이었다. 그러던 1943년 미 증권거래위원회가 기업의 주주총회 안건에 주주 제안을 포함하는 ‘Rule 14a-8’ 제정하면서 주주행동주의가 본격화했다.[※참고:가치투자의 창시자로 불리는 벤저민 그레이엄이 1926년 미국 송유관 회사(Northern Pipeline)에 편지로 요청사항을 보낸 것을 주주행동주의의 시초로 보는 의견도 있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1932년이란 시기다. 당시는 1929년 대공황이 발생한 직후로 미국은 극심한 경기침체를 겪고 있었다. 경기침체기에 주주행동주의가 촉발한 셈이다. 그 이후로도 이런 모습은 두드러졌다.

특히 닷컴 버블로 수많은 기업이 무너졌던 2000년대 초 기업의 감시자 역할이 중요해지면서 주주행동주의가 다시 주목받았다. 249건으로 가장 많은 행동주의 캠페인이 벌어졌던 2018년 역시 미중 무역전쟁과 신흥국 금융위기 가능성에 세계 경제와 증시는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국내에 행동주의펀드가 등장한 건 1997년 외환위기를 겪은 직후다. 자본시장을 개방하는 과정에서 국내 기업을 노린 헤지펀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99년 미국계 헤지펀드 타이거펀드와 SK텔레콤의 경영권 분쟁이다. 

그해 4월 SK텔레콤의 지분을 보유한 타이거펀드는 SK그룹의 부당한 내부거래 문제를 꼬집었다. 주주행동주의 였던 셈이다. 타이거펀드의 위협을 막기 위해 SK그룹은 계열사인 SK와 SK글로벌을 통해 타이거펀드가 갖고 있던 SK텔레콤 지분을 비싼 가격에 사들였다(1999년 8월). 그 결과, 타이거펀드는 1년여 만에 6000억원이 넘는 시세차익을 올렸다.[※참고: 이 과정에서 자금을 투입한 SK글로벌은 2003년 부도를 맞았고, SK그룹 계열사의 주가는 폭락했다. 이는 소버린 자산운용과 SK 경영권 분쟁의 단초로 작용했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 관계자는 “경기침체와 증시 부진의 영향으로 주가가 떨어지면 헤지펀드들이 기업의 지분을 확보하기 수월해진다”며 “주주행동을 추진하면 주가가 상승한다는 걸 알아차린 헤지펀드들이 이를 투자기법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행동주의펀드가 활기를 띠고 있지만 소액주주의 권리 강화로 이어질지는 의문이다.[사진=뉴시스]
행동주의펀드가 활기를 띠고 있지만 소액주주의 권리 강화로 이어질지는 의문이다.[사진=뉴시스]

■ 행동주의펀드와 소액주주의 권리 = 1999년 타이거펀드와 SK텔레콤 경영권 분쟁을 시작으로 헤지펀드들은 계속해서 주주행동 활동을 펼쳤다. 앞서 언급했던 2003년 ‘SK 소버린 경영권 분쟁’부터 2005년 ‘칼 아이칸 대 KT&G’, 2015년 ‘엘리엇 대 삼성물산’, 2018년 ‘엘리엇 대 현대차’, ‘KCGI 대 한진칼’ 등 많은 기업의 행동주의펀드의 대상이었다. 

이 과정에서 행동주의펀드는 막대한 돈을 벌어들였다. 소버린은 1조원의 시세차익을 챙겼고, 칼 아이칸과 KCGI도 주식을 매도해 각각 1500억원, 2400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문제는 소액주주다. 소액주주도 행동주의펀드처럼 알찬 수익을 올렸는지는 의문이라서다.

물론 행동주의펀드의 활약으로 주가가 변동성을 보였던 시기 주식을 매도한 투자자라면 수익을 올렸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기업의 변화 가능성을 보고 뒤늦게 뛰어든 투자자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투자자는 손실을 봤을 공산이 크다. 

그렇다면 행동주의펀드의 영향으로 기업문화가 바뀌고 소액주주의 권리는 강화했을까. 안타깝게도 변화는 더디기만 하다. 기업문화가 바뀌고 있지만 소수 지분으로 수많은 계열사를 거느리는 재벌 오너가家의 위세는 여전히 건재하다. 소액주주의 목소리는 여전히 기업을 바꾸기엔 역부족이다. 

삼성물산이 대표적인 사례다. 엘리엇과 제일모직과의 합병 문제로 대립각을 세웠던 2015년 5월 삼성물산의 주가는 19만7000원까지 치솟았다. 지난 2일 기준 삼성물산의 주가는 11만100원이다. 8년 사이 주가가 44.5% 떨어졌다. 줄곧 2000원대를 유지하던 배당도 2021년 4300원을 기록했지만 올해엔 2020년과 같은 2300원으로 감소했다. 

기업정보 공시채널 카인드(KIND)에 따르면, 삼성물산이 2015년 이후 자사주 매입에 나선 적도 없다. 2015년 엘리엇과의 표 대결을 앞두고 수박을 사들고 소액주주를 일일이 방문해 제일모직과의 합병에 찬성해 달라고 읍소했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2020년부터 매년 관계사 배당수익의 60~70% 수준을 주주에게 돌려주겠다는 주주환원 정책을 내놨지만 주가 하락에 성난 주주를 달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나마 주목할 만한 건 최근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소액주주가 늘어나고 있다는 거다. 이는 코로나19 이후 주식투자에 나선 개인투자자가 크게 증가한 게 한몫했다.

은경완 신한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개인 투자자들의 증시 참여 비중과 관심도가 높아졌다”며 “행동주의펀드의 전유물로 알려진 주주제안이 소액주주 사이에서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삼성물산이 올 2월 뿔난 주주를 위해 향후 5년간 3조원 규모의 자사주를 소각하겠다고 발표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행동주의펀드의 기업 때리기가 소액주주의 권리 강화로 이어질 수 있을까. 시장은 기대 반 걱정 반이다. 들불처럼 일어난 행동주의펀드가 소액주주의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행동주의를 표방한 헤지펀드가 언제 기업 사냥꾼으로 탈바꿈할지 알 수 없다. 게다가 재계는 기업 경영권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볼멘소리부터 늘어놓고 있다. 

이런 점에서 김화진 서울대(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2021년 발표한 자료에서 내놓은 주장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시대에는 행동주의 헤지펀드와 기관투자자의 연대가 심화할 것이다. 기업은 주주가치 경영과 사회적 가치 경영을 계속하면 된다. 기업 스스로 주주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면 행동주의를 포함한 외부 세력에 의해 강제로 지배구조를 개편당하게 될 것이다.” 행동주의펀드가 기업을 흔드는 건 맞지만 그 빌미를 제공한 건 결국 소액주주의 목소리를 듣지 않은 기업이라는 얘기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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