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視리즈] 자원민족주의 시대➊
배터리 산업의 중요성 커지면서
광물 수요 느는데 공급망 위축
빗장 걸어 잠그는 광물 보유국
리튬 하나 없어도 전 산업 타격
우리나라 원자재 수급은 괜찮나

글로벌 완성차 기업이 광물 확보 경쟁에 에너지를 쏟아붓고 있다. 멕시코, 인도네시아 등 자원 부국은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 자국 산업을 일으키겠다면서 빗장을 잠그고 있다. 제련산업과 채굴시장 투자를 통해 원자재 공급망을 장악한 중국은 리튬 가격까지 결정하고 있다. 자원 빈국이면서 수출주도형 국가인 우리나라는 이 시대를 잘 준비하고 있을까. 광물 전쟁 1편 ‘하얀 석유는 왜 무기가 됐나’를 살펴보자. 

리튬 공급망 위기로 완성차 업계도 직접 광물자원 확보에 나서고 있다.[사진=뉴시스]
리튬 공급망 위기로 완성차 업계도 직접 광물자원 확보에 나서고 있다.[사진=뉴시스]

블룸버그통신은 제32회 글로벌 금속ㆍ광업 콘퍼런스의 개막(2월 27일ㆍ현지시간)을 5일 앞둔 22일 다음과 같은 분석 기사를 출고했다. “자동차 기업들이 광업 기업들과 경쟁하고 있다(Automakers compete with miners).”

이 콘퍼런스에 테슬라, GM, 포드, 스텔란티스, 리비안 오토모티브, 메르세데스-벤츠 그룹 AG, 재규어ㆍ랜드로버 오토모티브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 관계자들이 몰려들 것이란 소식을 분석한 내용이었다. 

이들이 이 콘퍼런스에 모여든 건 전기차 배터리 생산에 필요한 원자재의 장기 공급처를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완성차 업체들은 콘퍼런스 과정에서 ▲리튬, 니켈, 흑연 등 배터리용 원자재 장기공급계약 체결 ▲원자재 생산기업의 지분 확보 ▲광산 투자 개발 참여 등을 위해 광산기업들과 직접적인 경쟁을 펼쳤다. 

예전엔 볼 수 없던 풍경이다. 콘퍼런스를 주최한 글로벌 금융그룹 BMO 캐피털 마케츠(Capital Markets)의 글로벌 금속ㆍ광업 사업 공동 책임자인 일란 바하르(Ilan Bahar)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3~4년 전에 우리가 자동차 회사를 회의에 초대했다면 그들은 아마 그것(회의 참석)을 우선순위로 삼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용 배터리(이하 2차전지 의미) 생산에 필요한 원자재 확보에 그만큼 목을 매고 있다는 방증이다. 

사실 그럴 만도 하다. 현재 세계 완성차 업계는 내연기관차를 버리고 전기차로의 전환을 꾀하고 있다. 전기차에선 배터리가 핵심인데, 배터리 생산에 쓰이는 주요 원자재의 공급처는 한정적이다. 더구나 러시아ㆍ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원자재 공급망은 더 위축됐다. 자원 부국인 러시아와의 무역이 쉽지 않아서다. 

이런 상황에서 배터리 생산에 필요한 자원을 가진 나라들은 자원 개발이나 수출을 제한하고 있다. ‘자원민족주의’로 불리는 이런 움직임은 곳곳에서 감지된다. 우선 배터리의 핵심 원자재인 리튬은 구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전세계 리튬의 56.0%는 ‘리튬 삼각지대’라 불리는 볼리비아ㆍ아르헨티나ㆍ칠레 3개국에 몰려 있다. 

이중 볼리비아는 2008년에 리튬을 국유화했다. 아르헨티나는 지난 1월 리튬을 ‘전략 광물’로 지정한 후 승인된 모든 탐사 활동을 멈춰 세웠다. 민간기업의 채굴권도 정지했다. 칠레는 조만간 국영 리튬기업을 설립한다.

USGS에 따르면 칠레는 현재 기술력으로 사용할 수 있는 리튬을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보유한(41.0%) 국가다.[※참고: 생산량 1위는 호주(48.0%)다. 칠레(26.0%)는 2위, 중국(16.0%)이 3위다.]

리튬 매장량 세계 10위인 멕시코도 지난해 광물법을 개정해 리튬을 국유화하고, 그런 리튬을 관리하기 위해 국영기업 리티오멕스를 설립했다. 지난 2월 18일(현지시간)에는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이 소노라 지역을 리튬 채굴보호구역으로 선언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이 지역엔 리튬이 대량 분포돼 있다. 

리튬만이 아니다. 배터리의 또다른 핵심 자원인 니켈 역시 수급 제한이 심해지고 있다. 세계 최대 니켈 생산국(전체의 37.0% 생산ㆍUSGS 분석)인 인도네시아는 2020년부터 니켈 원광 수출을 금지했다. 대신 자국에 공장을 세우는 기업에만 니켈을 제공하겠다는 방침을 내세웠다. 

원자재 제공 국가에 머무르지 않고 니켈을 발판으로 관련 산업을 키우겠다는 거다. 인도네시아는 한발 더 나아가 지난해 12월 또다른 니켈 생산국인 호주와 캐나다 정부에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비슷한 협력 기구를 설립하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니켈 생산국 필리핀은 니켈 수출에 최대 10%의 세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자원 부국이 대문을 걸고 있는 상황은 배터리 관련 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간단하게 리튬 하나만으로 얘기해보자. 리튬은 지구상에서 가장 가벼운 금속으로 활성(반응속도)이 높고, 전류를 쉽게 흐르게 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리튬이 배터리 생산에 필요한 핵심 원자재가 된 건 그래서다. 배터리가 전기차와 더불어 점점 더 광범위한 분야로 쓰임새가 확대되고 있다는 점 때문에 리튬은 ‘하얀 석유’로도 불린다. 리튬을 얼마나 넣느냐가 배터리의 용량까지 결정한다. 

배터리 산업 내에서도 리튬을 특히 많이 사용하는 곳은 양극재 제조업계다. 이는 리튬의 수급이 불안정해지면, 배터리 생산의 밑단(기초)을 받치고 있는 소재 산업부터 타격을 입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양극재 제조업계 관계자는 “물론 원자재 가격 변동분은 배터리 소재 납품단가에 직접적으로 반영되는 구조여서 원자재 가격 때문에 큰 손해를 입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수급이 불안정하면 공장가동률 등 직접적인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 정부와 국내 대기업이 미래 먹거리로 삼고 있는 배터리 산업을 넘어 완성차 업체의 전기차 생산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거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공급망분석센터)의 임지훈 GVC 산업분석 TF 연구원은 “국내 전체 리튬 수요의 89%가 배터리 생산에 쓰이는데, 이 수요는 2040년에 2020년의 42배에 달할 것”이라면서 “원활한 리튬 수급이 배터리 산업의 미래를 결정하는 핵심 요인이 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건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리튬을 보유한 국가들이 대문을 걸어 잠그고 있다.[사진=뉴시스]
리튬을 보유한 국가들이 대문을 걸어 잠그고 있다.[사진=뉴시스]

리튬이 배터리와 전기차에만 영향을 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도 않다. 에너지저장장치(ESS)를 필수로 하는 재생에너지 산업, 도심형 모빌리티(UAM)와 이를 활용하려는 유통 산업, 충전용 전자제품 관련 산업 등도 리튬의 종속변수가 될 공산이 크다. 리튬은 유리 산업이나 세라믹 산업에도 쓰인다. 이 때문에 범위를 넓히면 건설 산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원자재로 고민하는 기업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원자재 확보를 위해 자원개발 프로젝트나 지분 투자 전선에 뛰어들고, 자원 부국과의 연결고리를 확대하면서, 배터리 수명 연장 기술 개발(R&D)이나 배터리 재활용 사업 등에도 적극 나서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그럼 자원 빈국인 우리나라의 현재 원자재 수급은 괜찮은 걸까. 이 질문의 답은 ‘파트1’에서 찾아보자.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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