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피해자 구제책
중산층 보호 차원서 다뤄야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때
美 정부 구제책 발동한 까닭

기준금리 인상 기조가 1년 이상 지속되면서 가계‧기업 할 것 없이 부채의 역습으로 고통받고 있다. 부동산 시장에서는 주택 가격의 하락과 맞물려 전세사기가 큰 사회 문제가 됐다. 매매와 임대라는 큰 차이가 있지만, 전세사기와 미국의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공통점이 많다. 중산층을 대표하는 통계인 미국의 자가점유율은 아직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미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 얽힌 이들 중엔 무리하게 대출을 받은 차주도 많았다. [사진=뉴시스]
미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 얽힌 이들 중엔 무리하게 대출을 받은 차주도 많았다. [사진=뉴시스]

미국 금융위기의 원인이었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과 한국 특유의 전세제도를 1대1로 비교할 수는 없다. 모기지는 집을 살 때 받는 대출이고, 전세는 소유권을 넘겨받는 것이 아니라 임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택가격의 하락에서 시작된 전세 사기와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이에는 지나치기 힘든 공통점도 존재한다.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의 원인은 주택시장에서 발생한 거품이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Fed)는 2004년 6월 연 1.00%였던 기준금리를 2006년 7월 연 5.25%까지 인상했다. 이때 타격을 받은 이들은 이른바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변동금리로 받았던 저신용 대출자였다.

당시 미국에선 집을 살 때 받는 모기지 대출과 주택을 담보로 추가대출을 받는 2차 대출을 합해 집값의 100% 이상을 빌려도 집값이 오르면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집값이 내려가자 이야기가 달라졌다.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주로 적용하던 변동금리가 금리인상기와 겹치면서 연체가 증가했다. 당연히 은행에 집을 압류당하는 이들도 급증했다. 이는 월가 금융회사들의 줄도산으로 이어졌고, 세계 금융위기 발생의 도화선이 됐다. 

■ 공통점=한국의 전세와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가장 큰 특징은 주택 가격이 하락하고, 금리가 인상하는 시점에서 발생한 문제라는 점이다. 주택시장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거나(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향후에 미칠 것(전세)이란 공통점도 존재한다.

전세사기 문제가 불거진 후 전세가 끼어있는 매물을 기피하는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거래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에서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사태로 대량 압류가 진행되면서 주택 가격의 하락을 더 부추겼다. 

대출자 사이에도 공통점이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금융회사들이 집을 살 능력이 없는 저신용자들에게 무리하게 대출을 집행해 문제가 됐다. 전세의 경우는 신용과는 상관이 없을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주택 미소유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전세제도를 둘러싼 논의는 중산층 보호란 관점에서 진행해야 한다. [사진=뉴시스]
전세제도를 둘러싼 논의는 중산층 보호란 관점에서 진행해야 한다. [사진=뉴시스]

공통점은 또 있다. 두 나라 모두 주택금융 관련 공사가 일정한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미국은 금융위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직후 정부가 사실상 보증하던 주택대출 관련 회사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을 국유화했다. 이 두 회사가 직접 매입하거나 보증한 주택 관련 채권 규모는 2008년 9월 당시 5조3000억 달러에 달했다.

한국의 경우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전세금 반환보증보험을 2013년 시행하면서 가입 기준을 전세보증금의 80%로 정했는데, 이 기준이 갈수록 완화하면서 은행들이 전세자금 대출을 공격적으로 늘리게 됐다. 

■ 차이점=미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전세 제도 사이엔 차이점도 많다. 앞서 언급했듯 매매와 임대란 근본적인 차이를 갖고 있다. 그 외에도 미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대출을 받은 소유주가 거주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반면 한국은 소유주와 세입자가 분리돼 있다. 현재 세입자들이 전세사기로 인해 겪는 고통과 비교할 수준은 아니지만, 해당 주택을 소유한 이들도 결국 파산으로 내몰릴 것으로 보인다. 전세 제도를 단순히 개인 사이의 돈거래 정도로만 봐서는 안 되는 이유다.

전세 제도가 당장은 미국발 금융위기와 같은 경제위기를 불러일으키진 않을 것이란 점도 차이점이다. 전세사기로 인한 시장 위축이나 사회적 여파가 적어서가 아니다. 한국의 전세 채권은 금융 파생상품들과 엮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3일 국무회의에서 “취약층이 중산층에 많이 편입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사진=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3일 국무회의에서 “취약층이 중산층에 많이 편입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사진=뉴시스]

미국의 경우 패니메이‧프레디맥 외에도 대형 금융회사들이 모기지 채권 유동화에 나서면서 부실의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미국은 2000년대 중반 우대 금리를 적용받는 프라임 모기지를 MBS(주택저당증권) 형태로 유동화했는데, 여기에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 등을 묶어서 CDO(부채담보부증권) 형태로 다시 유동화했다.

모기지 채권의 부도 리스크를 회피하기 위해서 판매한 CDS(신용부도스와프) 규모만 2008년 당시 수십조 달러에 달했다. 이 모든 것은 오로지 주택 가격이 끊임없이 오를 때에만 기능했다. 주택 가격이 하락하고, 모기지 채권이 부실화하는 순간, 시스템 상 파국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양국 정부의 대응 방법에도 차이가 있다. 한국은 전세사기 특별법을 6월 1일 공포하고 즉시 시행한다. 특별법의 골자는 최우선 변제금을 받지 못하는 전세사기 피해자들에게 향후 10년간 무이자 대출을 해주고, 해당 주택을 구입하기를 희망하는 전세사기 피해자들에게 우선 매수권을 주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2008년 거의 모든 재원을 금융회사들에 투입했다. 모기지 채권의 증권화로 금융회사들이 줄도산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대출을 받고 연체를 피하지 못한 사람과 그 결과로 집을 압류당해 살 곳을 잃은 사람이 일치했다. 반면, 전세사기 피해자 대부분은 무리하게 대출을 받거나 연체를 하지도 않은 세입자들이다. 

■ 중산층 보호=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3일 국무회의에서 “취약층이 중산층에 많이 편입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전세는 한국에서 단순한 개인간의 금융거래라고 보기 힘들다. 자가 소유를 향한 징검다리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전세 관련 문제의 대책은 중산층 보호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 

한국의 전세 문제로 피해를 입은 이들과 달리, 미국에서는 대출을 받고, 그 대출금을 연체한 사람과 집을 압류당해 내쫓긴 사람이 똑같았다. 그런데도 미국 정부가 이들을 돕겠다고 한 것은 중산층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미국을 대표하는 ‘아메리칸 드림’의 핵심은 자가 소유 주택과 자동차다. 부실이 예상되는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시행될 수 있었던 것도 아메리칸 드림이 미국 사회의 근간이기 때문이다.

[자료 | 미국인구조사]
[자료 | 미국인구조사]

미국에서 2010년까지 압류된 주택 수는 무려 600만채에 달한다. 결국 미 정부는 2008년 주택경기회복법, 2009년 긴급경제법 등을 만들어 압류된 집을 사들여 임대주택으로 활용하도록 하거나,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기존 집을 샀던 이들을 위한 저렴한 주택공급 건설을 지원하도록 했다. 

그런데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잃은 중산층은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미국 인구조사(센서스) 자료에 따르면, 자가점유율은 2004년 69.2%로 고점을 찍었고,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엔 67.8% 수준이었다. 하지만 금융위기 후 중산층의 척도인 미국의 자가점유율은 2016년까지 하락해 63.7%로 저점을 기록했고, 결국 금융위기 전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2022년 미국의 자가점유율은 65.9%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ayhan0903@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