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비용 상승으로 기업 이익 급감
고금리에도 대출·연체 동반 급상승
이익 위한 손쉬운 카드 가격 인상
식품에서 나타난 그리드플레이션

지난해 국내 기업의 영업이익은 30% 이상 쪼그라들었다. 반면 이자 비용은 30% 이상 늘어났다. 그런데도 기업의 대출은 증가하고, 연체율은 상승하고 있다. 이는 올해 기업들의 영업이익이 더 악화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에 따라 가격 인상으로 이익을 높이려는 이른바 ‘그리드플레이션(탐욕 인플레)’을 둘러싼 우려가 커지고 있다. 

라면의 5월 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13.1% 상승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4년 만의 최고 상승률이다. [사진=뉴시스]
라면의 5월 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13.1% 상승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4년 만의 최고 상승률이다. [사진=뉴시스]

■ 이익 급감의 시대=지난해 국내 기업의 영업이익은 이자 비용이 늘면서 급감했다. 12일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가 한국평가데이터(KoDATA)와 함께 국내 상장사 1612개의 지난해 말 재무 상황을 분석한 결과, 매출은 전년 대비 12.1% 증가했지만, 영업이익 증감률은 전년 대비 34.2% 감소했다. 대기업들의 영업이익 증감률이 -44.1%, 중소기업이 -3.1%였다. 

지난해 영업이익률도 4.5%로 전년 대비 3.2%포인트 꺾였다.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금리가 인상되면서 이자 비용은 1년 전보다 31.9%나 늘어났다. 기업이 영업이익으로 이자 비용을 낼 수 있는지를 나타낸 이자보상배율은 5.1배로 전년도 10.1배의 절반에 불과했다. 

부채 비율도 늘어났다. 지난해 조사 대상 기업들의 부채 비율은 전년보다 4.8%포인트 상승한 79.9%, 전체 자본에서 자기자본 비중을 보여주는 자기자본비율은 전년보다 1.5%포인트 하락한 55.6%였다. 

■ 대출·연체의 급증=지난해보다 금리가 더 상승했지만 올해에도 기업대출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기업 경영이 악화한 게 상당 부분 이자 비용 상승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우려되는 대목이다. 

9일 한국은행이 발간한 ‘5월 중 금융시장 동향’ 자료에 따르면 지난 5월 은행의 기업대출 규모는 올해 들어 가장 많이 증가했다. 기업대출은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총 34조2000억원 증가했는데, 구체적으로 3월 5조9000억원, 4월 7조5000억원에 이어 5월에는 7조8000억원 늘어났다. 

금리는 오르고 대출 규모는 늘어나는데, 기업들의 대출 상환금 연체율까지 치솟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5월 25일 연체율 증가의 현황을 살펴보기 위해 현장조사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식품과 외식 물가 상승률이 치솟으면서 소비자물가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식품과 외식 물가 상승률이 치솟으면서 소비자물가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문제는 모든 금융회사의 기업대출 연체율이 올해 들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저축은행의 3월 말 기준 기업대출 연체율은 5.07%로 지난해 12월보다 3배 가까이 올라갔다. 상호금융의 기업대출 연체율도 3월 말 1.25%로 지난해 12월 0.91%보다 상승했다. 은행의 기업 연체도 같은 기간 0.27%에서 0.35%로 높아졌다. 

■ 가격 상승의 유혹=문제는 올해다. 금리가 높아지면서 이자 비용은 더 커질 게 분명해서다. 대출 규모가 늘고 연체율이 상승하면서 기업들의 위기감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1년 12월 예금은행의 기업대출 가중평균금리는 연 3.14%였는데, 2022년 11월에는 연 5.67%로 높아졌다. 올해에도 기업대출 금리는 2월 5.36%, 3월 5.25%, 4월 5.09%로 낮아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5%대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들은 ‘가격을 끌어올려야 산다’는 유혹을 떨쳐버리기 힘들어진다. 제품 가격 인상이 수익성에 가장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컨설팅회사 딜로이트의 파트너 임원(Principal)인 줄리 미한이 2011년 펴낸 ‘가격 및 수익성 관리’ 보고서에 따르면 가격을 1% 올렸을 때 영업이익은 12.3% 증가했지만, 변동비용을 1% 끌어올리면 수익은 6.7%, 고정비용을 1% 올리면 수익은 2.6% 늘어나는 데 그쳤다. 변동비용은 생산량이 늘어나는 것에 따라 변하는 재료비·연료비·잔업수당 등을 말한다. 고정비용은 임금·이자·임대료 등 생산량과 상관없이 고정적으로 나가는 비용을 뜻한다. 

영국도 식품 가격 인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사진=뉴시스]
영국도 식품 가격 인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사진=뉴시스]
[자료 | 딜로이트]
[자료 | 딜로이트]

■ 그리드플레이션 우려=서구 매체들은 지난해부터 기업들의 탐욕이 제품 가격을 필요 이상으로 높여 인플레이션을 부채질한다는 뜻으로 탐욕(Greed)과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 ‘그리드플레이션(greedflation)’을 자주 사용하고 있다. 

상장사는 자사 주식의 가치를 끊임없이 끌어올려야 하고, 기업의 수익성과 주식 수익률은 정확하게 일치하지는 않아도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 컨설팅회사 맥킨지는 지난해 8월 S&P500 기업들의 장기 수익률을 분석하면서 “1800년 이후로 주식은 매년 평균 6.5~7.0%의 수익률을 유지해 왔다”며 “우리 분석에 따르면 지난 25년 동안에도 마찬가지였다”고 밝혔다. S&P500에 해당하는 기업들은 수익을 극대화해서 배당, 자사주 매입 등을 통해 주식의 가치를 높여왔다. 

영국 매체 가디언은 지난 3월 24일 ‘그리드인플레이션’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코로나19 팬데믹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영향으로 기업들의 수익이 악화하자 이들이 과도한 이윤을 추가하고 있다”며 “런던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350개 기업의 평균 영업이익률이 2019년 상반기 5.7%에서 2022년 상반기 10.7%로 상승했다”고 보도했다.

가디언은 지난해에도 “비료회사 뉴트리엔이 원자재 비용과 판매량 저조라는 핑계로 제품 가격을 크게 인상해 지난 2년 동안 12억 달러의 추가 수익을 올렸다”고 보도한 바 있다. 가격 인상 요인을 뛰어넘는 수익을 추구하는 ‘탐욕’이 소비자들에게 부담을 주고, 나아가 국가의 물가 관리에도 악영향을 준다는 논지다. 

‘그리드인플레이션’은 주로 식품 관련 회사들과 연관돼 거론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식품의 물가상승률이 유독 높기 때문이다. 영국의 지난 4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8.7% 상승해 13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지만, 식품 물가상승률은 19%로 45년 7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영국 중앙은행은 ‘그리드인플레이션’의 증거가 없다고 주장해왔지만, 제레미 헌트 영국 재무부 장관은 지난 5월 “식품 가격이 여전히 너무 높다”고 경고했다. 

기업의 영업이익이 급감하면서 '탐욕 인플레'에 대한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사진=뉴시스]
기업의 영업이익이 급감하면서 '탐욕 인플레'에 대한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의 5월 소비자물가지수가 안정세를 보이고 있지만, 식품 가격은 여전히 고공행진을 이어가면서 물가에 압박을 주고 있다. 라면의 5월 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13.1% 상승하면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4년 만에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

5월 가공식품·외식 부문 112개 품목 중에서 물가상승률이 10% 이상을 기록한 품목은 31개(27.7%)였다. 5월 전체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3.3%다. 식품발 인플레이션은 계속될 전망이다. 최근 우유 가격 상승이 예고된 가운데 우유 생산비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배합사료 가격은 세계 곡물 가격이 안정세를 보였는데도 사상 최고 수준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ayhan0903@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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