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전경련, 소통 강조하며 쇄신 작업
한편에선 “쇄신 어려울 것” 전망
권력과 공생하는 한계 뚜렷
사건 때마다 폐지론 대두
이번엔 쇄신할 수 있을까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연일 쇄신을 강조하고 있다. 올해 2월부터 김병준 회장 직무대행 체제를 갖춘 이후 MZ세대와의 소통을 강조하며 다양한 이벤트를 벌이는가 하면 최근엔 전경련이라는 간판도 바꿨다. 하지만 이런 행보를 두고 “해체해야 할 조직의 마지막 몸부림”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다. 전경련은 바뀔 수 있을까. 

전경련이 쇄신을 강조하고 나섰다. 김기현(가운데) 국민의힘 대표와 악수하는 김병준(오른쪽) 회장 권한대행.[사진=뉴시스]
전경련이 쇄신을 강조하고 나섰다. 김기현(가운데) 국민의힘 대표와 악수하는 김병준(오른쪽) 회장 권한대행.[사진=뉴시스]

“일부에서 전경련으로 복귀하기 위한 시그널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는데, 절대 사실이 아니다. 이벤트 취지에 공감한 회장님이 개인 자격으로 참여하는 것일 뿐이다. 전경련과 그 어떤 연결도 짓지 말아달라.” 지난 4월 30일 ‘한국판 버핏과의 점심, 갓생 한 끼’라는 제목의 전국경제인연합회의 보도자료가 나온 이후 현대차그룹 홍보담당자가 했던 말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2015~2017년) 전경련이 회원사들로부터 774억원의 기부금을 걷어 미르ㆍK스포츠재단에 헌납한 정경유착 사건을 계기로 전경련을 탈퇴한 대기업들이 전경련과 묶여 함께 거론되는 걸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전경련이 MZ세대와의 소통을 강조하면서 청년 자문단을 만들고, 인스타그램을 개설하고, 심지어 ‘한국경제인협회’로 개명까지 해가며 쇄신을 강조하고 있는데도 이미지 개선에 실패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오히려 일부에선 “전경련은 혁신이나 쇄신 자체가 불가능한 조직”이라면서 “해체가 답”이라는 지적까지 나온다. 이유가 뭘까.[※참고: 전경련은 조직명을 바꿨지만, 한국경제인협회 또는 한경협이라 부르는 이들은 거의 없다. 우리도 전경련이란 옛 간판을 그대로 사용했다.] 

■ 해체론 근거➊ 부적절한 탄생 배경 = 사실 전경련은 설립 배경부터 석연치 않다. 흔히 전경련과 함께 대한상공회의소ㆍ한국경영자총협회ㆍ한국무역협회ㆍ중소기업중앙회를 묶어 ‘경제 5단체’라 부른다. 대한상의는 상공업 육성을 위해 탄생한 상공회의소법에 따라 만들어진 법정단체다. 1884년 일본 상인들을 견제하기 위해 조선 상인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한성상업회의소가 모체다.

경총은 1970년 ‘합리적인 노사관계의 방향 정립’을 목적으로 탄생했다. 기업과 경영자의 입장을 대변하지만, ‘노사관계 방향성 정립’이란 목적성은 분명하다. 중기중앙회와 더불어 최저임금위원회의 사용자 대표로 참가하는 단체이기도 하다.

무협(1946년)은 무역업체들의 권익을, 중기중앙회(1962년)는 중소기업의 권익을 대변한다. 이들 경제단체의 공통점은 분명한 목적 아래 탄생했고, 재벌 대기업의 이해만을 대변하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반면 전경련은 1961년 박정희 정부와 재벌 대기업들의 ‘거래’로 탄생했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1960년 4ㆍ19 혁명 이후 부정축재자로 수감된 재벌 대기업 오너들이 이듬해 5ㆍ16 쿠데타 이후 경제 재건을 약속하면서 풀려났는데, 이들을 주축으로 탄생한 게 바로 전경련이다.

전경련은 툭하면 권력과의 유착으로 논란을 빚었다.[사진=뉴시스]
전경련은 툭하면 권력과의 유착으로 논란을 빚었다.[사진=뉴시스]

이후 전경련을 중심으로 재벌 대기업들은 박정희 정부의 경제 정책에 적극 협조하고, 반대급부로 이권을 챙겼다. 전경련은 정당성이 부족했던 정권의 손발이 돼 주고, 자신들의 지위를 보전받은 셈이다. 

박상인 서울대(행정대학원) 교수는 “전경련은 애초부터 정경유착으로 탄생했다”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전경련은 박정희 정부 경제정책을 실행하는 조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당시의 정경유착 구조가 국가 경제를 빠르게 일으키는 동력이 되기도 했다. 다만 정부 주도의 경제개발이 마무리되면서 전경련은 재벌 대기업들의 목소리만 대변하는 조직이 됐다.”

그래서일까. 전경련은 목적성도 모호하다. 공식적인 설립 취지는 ‘자유시장경제의 창달, 건전한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한 올바른 경제정책 구현, 우리 경제의 국제화 촉진(정관 제1조)’인데, 구체적인 목적은 보이지 않는다. 

■ 해체론 근거➋ 끊어지지 않는 유착의 고리 = 탄생 과정이 부적절했다 하더라도 시대적 요구에 맞게 역할을 재정립했다면 존속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하지만 전경련은 변화가 필요한 상황에서도 권력과의 유착 관계를 끊어내지 못했다.

재벌 대기업들로부터 기부금을 걷어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자금 창구였던 일해재단에 갖다 바친 사실이 드러난 1988년에도,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댔던 사실이 드러난 1995년에도, 현금을 트럭에 담아 당시 여당이던 한나라당(현 국민의힘)에 정치자금을 댄 사실(일명 ‘차떼기 사건’)이 드러난 2002년에도 돈줄 역할을 했던 전경련은 ‘변화’를 내걸었지만 늘 말뿐이었다. 

정세은 충남대(경제학) 교수는 “그동안 전경련은 쇄신할 기회가 많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서 “미르ㆍK스포츠재단 사건은 환경만 조성된다면 전경련이 언제라도 권력과 유착할 수 있다는 걸 여실히 보여준 예”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회장을 선출하지 못한 전경련이 윤석열 대통령 인수위원회에서 활동한 김병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을 ‘회장 직무대행’으로 둔 것도 정권과의 유착을 통해 재기를 노리려는 걸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전경련은 김병준 회장 직무대행 체제 이후 윤석열 정부의 정책을 뒷받침하는 목소리를 냈고, 윤석열 대통령의 방일ㆍ방미 과정에서 경제사절단 준비를 주도하는 등 지위를 높여가고 있다. 전경련이 과거를 청산하고 새롭게 거듭나겠다고 하지만, 권력에 추종하는 건 여전하다는 얘기다. 

■ 해체론 근거➌ 너무 약한 전경련 역할 = 일부에선 전경련이 쇄신을 해봐야 무슨 역할을 할 수 있겠냐는 지적도 나온다. 박상인 교수는 “전경련의 핵심이던 4대 그룹(삼성ㆍSKㆍ현대차ㆍLG)은 전경련을 탈퇴해 주 무대를 대한상의로 옮겼고, 전경련이 강화하겠다는 싱크탱크로서의 역할은 각 재벌 대기업 산하의 연구소들이 하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전경련의 싱크탱크에 돈을 댈 재벌 대기업들은 없다”고 분석했다.

현대차그룹이 정의선 회장의 전경련 이벤트 참석을 두고 홍보가 아닌 ‘전경련과의 선긋기’에 나선 게 단지 전경련의 이미지 때문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얘기다. 

박 교수는 “정부 주도의 경제개발은 오래전에 끝났고, 전경련은 쓸모를 다했다”면서 “더구나 심각한 범죄까지 저지른 조직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는 것 자체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세은 교수 역시 “재벌 대기업으로의 경제력 집중이 한국 경제의 걸림돌이 되는 상황에서 재벌 대기업의 이해를 대변하는 조직이 존재한다는 건 시대에도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물론 전경련의 역할을 바라는 세력은 여전히 있다. 쇄신하려는 지금의 노력이 전경련의 이미지를 바꿔놓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그러려면 ‘뼈를 깎는 혁신’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정부 정책을 무조건 추종하기보단 때론 비판의 목소리도 낼 줄 알아야 한다. 전경련은 과연 달라질 수 있을까.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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