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혜진의 내 아이 상담법
엔데믹 전환, 다시 열린 대면 시대
학교 적응에 어려움 겪는 아이들
갈등 극복 과정에서 성장 가능
현실 회피 않도록 이끌어줘야…

일상이 회복하고 있다. 이제 마스크를 쓰지 않고 서로 표정을 보고 의사소통할 수 있다. ‘대면對面 시대’가 돌아온 거다. 문제는 3년여 만에 찾아온 대면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점이다. 특히 코로나19 기간 ‘관계 맺기’에 서툴러진 청소년들 중엔 학교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적지 않다. 어떻게 해야 할까.

학교 교육이 정상화했지만,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학교 교육이 정상화했지만,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이제 대중교통 안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불과 몇달 전 버스 안에서 동료와 대화를 나누다 옆자리 아주머니께 제지를 당했던 기억이 있는데, 금세 세상이 달라졌다.

3년 4개월간 지루하게 이어진 코로나19 국면이 사실상 끝을 알리고 있다. 5월 5일 세계보건기구(WHO)는 코로나19 국제공중보건위기상황(PHEIC)을 해제했다. 우리 정부도 6월 1일을 기점으로 코로나19 위기 경보 수준을 ‘심각’에서 ‘경계’로 하향 조정했다. 

당연히 우리 마음도 팬데믹 공포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다. 하물며 아이들은 어떨까. 학교 교육이 정상화했고, 마스크를 벗은 채 수업을 한다. 아크릴판 없이 함께 모여 식사를 하는 등 소소한 것들이 제자리를 찾았다. 

다만, 친구들을 만나고 부대끼는 ‘직접 소통’은 필연적으로 갈등을 수반한다. 코로나19가 극성을 부린 지난 3년 동안 가족과의 갈등 문제로 상담실을 찾은 청소년이 급증한 건 같은 맥락이다. 집에서 가족들과 지내는 시간이 늘어나다 보니, 자연스레 갈등도 잦아진 셈이다. 

학교 생활이 정상화하면서 친구와의 갈등이 많아지는 것도 자연스러운 결과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 각기 다른 욕구와 가치관을 지닌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종종 ‘서로 꼭 맞는 관계’가 있을 거란 기대를 품는다. 서로 눈빛만 봐도 원하는 것을 알 수 있는 관계가 정말 있을까.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저 생각이나 취향이 비슷한 사람 혹은 서로 맞춰가려고 노력하는 사람만 있을 뿐이다. 관계에서 발생하는 갈등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닌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갈등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팬데믹 기간 아이들의 학습 격차나 낮아진 학업 성취도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필자는 그런 학업보단 또래 간 교류가 줄어든 게 더 아쉬웠다. 관계 맺기를 통한 성장의 기회가 박탈됐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최근 다시 시작한 학교 생활에서 과거보다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얼마 전 상담실을 찾아온 청소년 A군의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A군은 이렇게 토로했다. “코로나19 기간엔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서 심심하긴 해도 마음이 편했다. 간섭하거나 비난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시 학교에 가니 ‘살쪘다’고 놀리는 친구부터, 아파서 엎드려 있는 내게 ‘게임 중독자라 낮에 자는 것 아니냐’고 비아냥거리는 아이까지…. 스트레스가 쌓인다. 나 빼고 자기들끼리 즐거운 아이들을 보면 스스로 못나 보여 괴롭다.”

그나마 친했던 친구들과도 다른 반이 되면서 A군의 어려움은 더 커졌다. A군은 “친구가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함께 다닐 아이들이 있었다”면서 “이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어야 하는데 방법을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런 A군을 바라보는 부모님의 마음은 안타깝기만 하다. 부모님은 “학교에 가지 않을 땐 밤에 게임하는 걸로 승강이를 하긴 했지만 큰 문제는 아니었다”면서 “개학하자마자 학교를 관두고 싶다고 하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고 호소했다. 

이는 비단 A군만의 고민은 아니다. 학교 생활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들이 적지 않다.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이 ‘코로나19 전후 청소년의 변화’ 관련 조사(2023년)를 실시한 결과, “친구와의 관계가 어색하고 공감대 형성이 어렵다”고 답한 청소년은 전체의 38.7%에 달했다. ‘대인관계’로 고민하는 청소년의 비중은 2020년 22.2%에서 올해 1분기 29.6%로 7.4%포인트 커졌다. 

그렇다면 A군의 주장대로 학교를 관두고 집에서 혼자 지내면 모든 게 괜찮을까. 사람을 대면하지 않으면 당연히 갈등과 괴로움을 겪지 않는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세상에서 배워야 할 많은 것을 놓칠 수 있다는 점이다.

사랑과 이해, 좌절과 극복, 인정과 존중, 자기표현과 협상 같은 것들이다. 지금 자녀가 학교 생활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다면 부모가 하루라도 빨리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아이들이 상황을 회피하지 않고 기꺼이 발을 내디딜 수 있도록 이끌어 줘야 한다는 거다. 


이쯤에서 심리학 이론 중 하나인 ‘도피와 회피 학습’의 내용을 이야기해보자. 여기 서로 왕복할 수 있는 두개의 상자가 있다. 한쪽 상자에 개 한 마리를 집어넣었다. 잠시 후 개가 있는 상자 안의 불을 끄고, 10초 뒤 바닥을 통해 개에게 전기충격을 가했다. 이 개는 전기충격을 피해 옆 상자로 넘어가고자 했지만 벽이 높아 실패했다. 

같은 실험을 계속하자 개는 이내 옆 상자로 넘어갈 수 있게 됐고, 전기충격을 받는 시간은 점차 짧아졌다. 더 빠르게 옆 상자로 넘어갔다는 거다. 실험을 반복하자 마침내 전기충격을 받기도 전에, 불이 꺼지자마자 개는 옆 상자로 넘어갔다. 

첫 실험에서 불이 꺼진 후 전기충격을 받은 개가 옆 칸으로 넘어가는 건 일종의 ‘도피’다. 고통을 당한 뒤 이를 피한 셈이다. 반면 마지막 실험에서 전기충격을 받기도 전에 불만 꺼져도 옆 칸으로 넘어가버리는 건 일종의 ‘회피’다. 불이 꺼지고 난 뒤 전기충격이 가해지지 않을 수도 있는데, 이런 가능성마저 사전에 차단해 버린 셈이다. 

필자가 회피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A군이 학교를 관두는 건 회피와 같다. 회피는 A군이 성장할 많은 기회를 잃게 만든다. 이런 태도는 나아가 대학이나 직장생활에도 영향을 미칠 확률이 높다. 괴롭고 힘들어도 갈등을 회피하지 말고, 직시해야 한다는 거다.

‘코로나19 전후 청소년의 변화’ 관련 조사를 실시한 결과, “친구와의 관계가 어색하고 공감대 형성이 어렵다”고 답한 청소년은 전체의 38.7%에 달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코로나19 전후 청소년의 변화’ 관련 조사를 실시한 결과, “친구와의 관계가 어색하고 공감대 형성이 어렵다”고 답한 청소년은 전체의 38.7%에 달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A군과 같은 고민을 하는 아이들에게 필자는 이렇게 조언하고 싶다. 먼저 자기표현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 만약 친구들이 자신을 놀렸다면 그들의 의도를 파악하고,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실제로 나를 놀리려는 의도였고, 그로 인해 기분이 나빴다면 친구에게 명확하게 내 느낌을 표현해야 한다.

둘째, ‘친구들이 비웃을까봐’ ‘내가 못나 보일까봐’와 같은 마음이 든다면 현실 검증을 해야 한다. 막연한 느낌이 아닌 스스로 객관화하고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는 거다. 

물론 스스로 위축된 상황에서 자기를 표현하고, 현실을 검증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무조건 “견디라”고 몰아붙여선 안 된다. “네가 나약해서”라고 비난해서도 안 된다. 그들이 힘을 낼 수 있도록 곁을 지켜주는 것, 손을 내밀어주는 것이 지금 우리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이다. 


유혜진 서울시청소년상담복지센터 소장 | 더스쿠프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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