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읽을 만한 獨특한 책➊
기존 책과는 다른 독립출판물
낯선 책으로 떠나는 여름 휴가

독립출판물은 판형, 주제, 방식 모두 독특하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독립출판물은 판형, 주제, 방식 모두 독특하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 당신이 생각하는 책은 무엇인가. 대부분 ‘신국판新菊版’ 사이즈(가로 152㎜×세로 225㎜)로 만들어진 문학지 혹은 교양서적을 떠올릴 거다.  그럼 여기 늘어놓은 책은 어떤가. 시집은 담뱃갑 모양이고, 좁은 띠 자체가 책이다. 심지어 ‘편집자’가 ‘편집’에 의문을 던지는 잡지도 있다. 

# 출판업계에선 이런 책들을 전통적 개념에서 벗어난 독립출판물이라고 말한다. 전통적 관점을 벗어난 책은 사실 이뿐만이 아니다. 웹진의 형태를 띤 출판물, SNS를 통한 소통의 기록들, 웹에서 연재하는 소설 등 출판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들고 있는 책은 수없이 많다. 다만,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 그래서 더스쿠프와 문학신문 뉴스페이퍼가 ‘여름휴가 때 혼자 읽을 만한 獨특한 책’으로 독립출판물 6편과 웹소설 3편을 선정했다. 많은 이들이 낯섦을 즐기기 위해 휴가를 떠나듯, 이 책은 ‘이질적이지만 의미 있는’ 경험을 선물할 것이다. 자! 이제 첫 장을 열어보자. 

독립출판물을 아는가. 한마디로 정의하면 통상적인 책 제작 방식에서 벗어난 출판물을 이야기한다. 여기서 독립은 상업성으로부터의 독립일 수 있고 디자인이나 유통망으로서의 독립일 수도 있다.

관점은 모두 다르다. 하지만 독립출판물의 낯선 판형과 주제, 그리고 방식이 출판계에 활력을 주고 있는 건 분명하다. 이번에 소개한 독립출판물도 다소 낯설지만 신박한 요소를 갖고 있다.

독립출판물은 책의 기획부터 형태, 유통까지 기존 출판과는 다른 행보를 보인다. 기존 책의 ‘선을 넘는’ 독립출판물 6편을 소개한다. 

「시Garette」은 궐련형 담뱃갑 모양이지만 시구 20개가 들어있다. [사진=더스쿠프]
「시Garette」은 궐련형 담뱃갑 모양이지만 시구 20개가 들어있다. [사진=더스쿠프]

「시Garette」
주머니시 작가 | 주머니시


골목길에 선 사내는 한숨을 내뱉듯 코트의 안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냈다. 담뱃갑을 열자, 그곳에는 담배 대신 20장의 시구詩句가 적힌 종이가 들어있다. 이것은 시집이다. 20명의 시인이 종이 한장마다 자신의 시구를 적어 놓았다. 담뱃갑 앞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경고: 시거렛은 깊은 한숨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래도 읽으시겠습니까? 시거렛의 글에는 공감, 위로, 자신에게 솔직한 감정, 타인에 대한 이해, 다시 일어설 용기가 들어있습니다.’ 

「시Garette」은 책이라는 판형을 깬 독립출판물이다. 담뱃갑에는 어디서든 간편하게 읽을 시가 들어있다. 20행 내외의 자유시와 달리 짧은 문장들로 이뤄진 시구들은 마치 담배 한 개비처럼 짧다. 회사에서 쉬는 시간 혹은 밥을 먹고 난 후 담배를 피우듯 짧은 시구를 읽고 여유를 느낄 수 있는 시집이다.


「661661 삐삐 암호 사전」
김캐리·신유림·이민서·정우진 | 범프헤드

100–돌아와(back), 100003–만세, 10002 4–많이 사랑해, 1004-당신의 천사로부터 (또는 나의 천사여!), 1008-난 지금 고민스러워, 1010235-열렬히 사모해, 10288-열이 펄펄, 1052-사랑해(loⅤe), 1414-식사나 함께합시다(식사식사), 1472-만사형통 일이 잘되고 있다, 151155-그립다(1V1155=MISS), 1717-일찍 오세요, 17175-일찍 일찍 와

1990년대는 바야흐로 삐삐의 시대였다. 삐삐는 1991년 전국 단위 서비스를 시작했고 1997년에는 국민 4500만명 중 2000만명이 삐삐를 사용했다. 하지만 1998년 휴대전화 보급과 함께 빠르게 사라졌다. 10년이라는 ‘최단기간’ 보편적 소통 수단의 인기를 누린 건 삐삐가 유일하다. 그렇기에 삐삐는 1990년대 그 자체다. 

이 책은 당시 삐삐를 사용했던 사람은 물론이고 삐삐를 모르는 사람도 즐겁게 읽을 수 있다. 175개의 삐삐 은어와 삐삐의 이야기가 담겼다. 책 제목인 661661은 ‘삐삐’를 뜻한다.

 

「영화 속 샌드위치 도감」은 70편의 영화 속 샌드위치가 등장하는 장면을 모았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영화 속 샌드위치 도감」은 70편의 영화 속 샌드위치가 등장하는 장면을 모았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영화 속 샌드위치 도감」
주혜린 | 샌드위치 프레스


사내가 도시락 박스를 열자, 샌드위치가 보였다. 잘 잘린 샌드위치의 단면은 채석강의 퇴적지층처럼 보인다. 빵과 빵 사이에 들어가 있는 양상추, 토마토, 베이컨 무엇을 넣느냐에 따라 샌드위치의 맛과 모양은 변한다. 샌드위치는 한끼 식사를 대체하기 위해 존재한다. 무언가에 쫓기거나 아니면 반대로 쉬어가기 위해서. 

여기 1980년대부터 2010년대의 해외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샌드위치 등장 장면을 수집한 도감이 있다. 이 책은 해외 영화 70편의 퇴적지층이다. 이 퇴적지층은 샌드위치가 등장하는 장면과 그 장면에 얽힌 서사의 기록이 쌓여 만들어졌다.

30년간 70편의 영화 속에서 샌드위치는 무슨 역할을 했을까. 가볍게 지나쳤을 샌드위치 등장 장면을 영화에서 떼어서 종이책에 담았을 때 이 장면은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

「사랑의 힘을 느껴보세요」
김파랑 | All about parang / 波浪

언제인가 손에 난 생채기를 곧 아물겠지 여기다 여기저기 쓸리고 물이 닿으면서 벌어지고 부어 결국 쓰라린 상처로 커졌습니다. 사람으로 산다는 건 꼭 이런 걸까, 내 몸에 난 것은 생채기 하나라도 관리해 주지 못하면 상처로 번지는 것(작가의 말). 

「사랑의 힘을 느껴보세요.」는 독특한 모양의 판형으로 메시지의 힘을 느끼게 한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사랑의 힘을 느껴보세요.」는 독특한 모양의 판형으로 메시지의 힘을 느끼게 한다.[사진=더스쿠프 포토]

183×52㎜라는 독특한 판형을 가진 이 출판물은 3장으로 구성돼 있다. “사랑을 믿지 않는 사람.” “버거운 하루 대비용.” “결국 사랑은 살려달라고 하는 일 아니겠나.” 일반적인 책의 띠지밖에 되지 않은 이 출판물의 판형은 문장을 아티클 단위로 자르거나 카카오톡 채팅방을 재현하는 데 알맞다. 

여기에 실린 짧은 문장들은 ‘사랑의 상처’를 한걸음 떨어져 살피려는 노력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작가가 보여주는 ‘행동’의 일환이다. 작가는 지난 4월 수원의 편집숍 ‘풀꽃’에서 전시전을 열었다. 작가의 모든 행위는 출판이 된다.

잡지 「편않」
편않 | 편않


이번 독립출판물 기획의 마지막은 「편않」으로 끝내는 게 좋겠다. ‘편집자는 편집을 하지 않는다’를 줄인 「편않」은 잡지의 이름이자 출판사이며 공동체다. 출판공동체 ‘편않’은 기존 출판의 권위적·퇴행적 관행에 의문을 품고 새로운 장을 열자는 의도로 시작했다. 질문을 외면하지 않고 누구나 함께 고민하는 장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일종의 플랫폼이다. 언론인과 출판인의 현실적이면서도 깊은 고민을 담은 책을 만든다. 「편않」은 출판계의 민낯이자 질문이다. 답이 있지 않지만 끊임없이 질문하는 것은 출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출판에 출판으로 질문하는 경계를 초월하는 행위는 「편않」을 독립출판물보다 ‘출판’ 그 자체로 보이게 만든다. 

「유감의 책방」
우세계 | 우세계


서점들이 멸종하고 있다. 서점이 한곳도 없는 지역은 총 7곳으로, 인천광역시 옹진군, 강원도 평창군, 경상남도 의령군, 경상북도 군위군, 봉화군, 울릉군, 청송군이다. 오랜 전통을 가진 작은 서점은 더 이상 생존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도 30년 넘게 자리를 지킨 3개의 서점이 있다. 강철인생, 하루백반, 매화다방이다. 

「유감의 책방」은 가짜 인터뷰집이다. 그 거짓말 속에는 서점을 향한 애정이 담겨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유감의 책방」은 가짜 인터뷰집이다. 그 거짓말 속에는 서점을 향한 애정이 담겨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이 책엔 철물점, 백반집, 다방에서 책방을 운영하는 이들의 인터뷰와 사진을 담았는데, 모두 페이크(fake)다. 30년 이상 운영했다는 서점의 사진은 모두 합성으로 만든 조작이며, 인터뷰 역시 거짓이다.

공을 들여 만든 이 페이크 작품집은 블랙 유머로 가득 차 있다. 서점 ‘매화다방’에서는 유자차 책을 팔고 녹차 책을 주문받는다. 74세의 책방 주인은 29세에 서점을 열었다고 말한다.

이들의 인터뷰는 진지하지만 우습다. 30년간 서점을 운영한다는,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이들의 모습은 역설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서점을 향한 바람이다. 인터뷰 틈 사이에 담긴 저자의 진심을 찾을 수 있는 책이다.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이민우 뉴스페이퍼 기자
lmw@news-pap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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