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협’으로 이름 바꾼 전경련
국정농단 사태, 4대 그룹 탈퇴
전경련 해체 지적 많았지만…
윤석열 정부 지원에 다시 부활
권력-기업 간 매개 창구 불필요
글로벌 싱크탱크 역할 필요해

전경련이 글로벌 싱크탱크로 거듭나기 위해선 정경유착의 고리부터 끊어야 한다.[사진=뉴시스]
전경련이 글로벌 싱크탱크로 거듭나기 위해선 정경유착의 고리부터 끊어야 한다.[사진=뉴시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55년 만에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로 이름을 바꿨다. 산하 연구기관인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을 한경협으로 흡수 통합했다. 이에 따라 2016년 전경련을 탈퇴한 뒤에도 한경연 회원으로 남아 있던 삼성·SK·현대차·LG 등 4대 그룹 계열사들이 한경협 회원으로 승계돼 한경연에 가입하게 됐다.[※참고: 한경협 명칭은 정부가 정관 개정을 승인한 9월 이후 공식 사용한다.]

4대 그룹의 전경련 탈퇴는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태 때문이다. 전경련이 청와대 요구로 미르·K스포츠재단에 회원사들이 거액 출연금을 내는 데 관여한 것으로 드러나자 정경유착과의 결별을 선언했다.

이때부터 숨죽였던 전경련은 윤석열 대통령의 멘토로 불리는 김병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이 회장직무대행을 맡으며 활동을 재개했다.

전경련은 일본의 경제단체연합회(경단련)를 모델로 설립한 기업인 단체다. 경단련이 일본경영자단체연맹과 통합했듯 국정농단 사태 이후 전경련도 발전적으로 해체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하지만 전경련은 그 길을 회피하고 버티다가 윤석열 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부활했다.

전경련은 초심으로 돌아가기 위해 설립 당시 이름으로 바꿨다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한경협은 1961년 5·16 쿠데타 세력이 부정 축재자란 이상한 죄를 덧씌워 기업인들을 구속하자 이병철 삼성 창업주 등 기업인들이 군사정권에 협력을 약속하며 만든 ‘경제재건촉진회’가 모태다.

류진 전경련 신임 회장은 취임사에서 “글로벌 무대의 ‘퍼스트 무버’가 되는 것이 기업보국의 소명을 다하는 길이며, 이 길을 개척해 나가는 데 한경협이 앞장서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전경련이 ‘싱크탱크형 경제단체’로 거듭나겠다는 각오도 밝혔다. 과연 전경련이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글로벌 싱크탱크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전경련은 권력의 외압을 차단할 내부 통제 시스템으로 ‘윤리위원회’ 설치를 정관에 명시했다. 사무국과 회원사가 준수해야 할 윤리헌장도 채택했다. 윤리헌장에는 ‘외부 압력이나 부당한 영향을 단호히 배격하고 엄정하게 대처한다’ ‘윤리적이고 투명한 방식으로 사업을 영위하고 경영할 것을 약속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대·중소기업 협력을 선도한다’ ‘국민 목소리를 경청하고 국민이 더 나은 삶을 향유하도록 노력한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

한국 사회가 기업들에 바라는 기대치가 망라됐다. 그런데 윤리헌장을 만들어 정경유착 고리를 끊겠다면서 정치인 출신인 직전 회장직무대행이 상근 고문으로 남아 있는 것은 누가 봐도 이상하다. 시대 변화에 맞춘 새 출발이 아니라 화장용 간판갈이에 그칠 가능성이 엿보인다.

국정농단 사태 재판 중에 ‘준법경영 지렛대’로 출범한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는 삼성의 전경련 재가입에 조건부 승인 결정을 내렸다. 전경련의 혁신과 정경유착에 우려를 표하면서 “(재가입하더라도) 정경유착이 발생하면 즉시 탈퇴할 것”을 권고했다. 삼성 준법감시위도 전경련의 혁신안을 ‘단순한 선언’으로 인식한 것이다.

전경련 해체론이 대두된 것은 권력이 필요로 할 때마다 재벌 돈을 모아주는 ‘수금원’ 내지 정치적 민원 해결사 역할을 자임했기 때문이다. 정치권은 더 이상 기부 등을 강요해선 안 된다. 기업도 법과 원칙에 따른 정도 경영을 해야 한다. 기업에는 상전, 정권에는 하수인이자 권력-기업 간 매개 창구로서의 경제단체는 한국 사회에서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류진 회장은 첫 행보로 다른 경제단체장들을 찾아가 만났다. 전경련은 이 자리에서 나온 주문부터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이미 적잖은 경제단체가 있는 마당에 역할은 못하고 잡음만 일으키는 곳이 설 땅은 없다.

구자열 무역협회 회장은 전경련이 경제계를 대표하는 글로벌 싱크탱크로서 한국 경제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기문 중기중앙회 회장은 “대·중소기업 상생 협력을 위한 발전적 파트너십을 강화해 나가자”고 했다. 손경식 경총 회장과 류진 회장은 기업 경쟁력 강화와 노동개혁 등 경제현안을 해결하는 데 협력하자고 약속했다.

류진 전경련 신임 회장은 취임사에서 “글로벌 무대의 ‘퍼스트 무버’가 되는 것이 기업보국의 소명을 다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사진=뉴시스]
류진 전경련 신임 회장은 취임사에서 “글로벌 무대의 ‘퍼스트 무버’가 되는 것이 기업보국의 소명을 다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사진=뉴시스]

전경련 스스로 채택한 윤리헌장이 구호에 그쳐선 안 된다. 실천이 중요하다. 경영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세계적 화두인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은 물론 기후변화에 대비해야 한다.

류진 회장 취임사대로 스스로 먼저 움직이는 퍼스트 무버, 시장경제 발전과 신산업 육성에 부합하는 정책과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싱크탱크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시대적 과제인 격차 해소를 위해 중소기업과의 상생, 경제력 집중 완화에 있어서도 역할을 해야 마땅하다. 기업 본연의 가치를 지키면서 기업가정신을 북돋는 기본에도 충실해야 함은 물론이다. ​

양재찬 더스쿠프 편집인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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