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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전성 확보한 한국 시중은행
중‧저신용 대출 위험 떠넘긴 덕
저신용자 대출 모두 줄여버린
저축은행·정책금융·대부업체
중‧저신용자 카드론으로 몰려
주택담보대출 크게 늘린 인전

중·저신용층이 금융 시스템에서 밀려나는 현상이 관측됐다. 대형 금융회사들은 부실 위험을 떠넘기면서 건전성을 확보했지만, 저축은행, 대부업체는 물론 정책금융까지 저신용 대출 규모를 줄였다. 중·저신용자들은 15% 고금리 카드론으로 몰렸고, 불법 사금융 피해 사례도 급증하고 있다. 저신용층 배제가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을 분석했다. 

중·저신용자 대출이 자취를 감추면서 신용회복 신청 건수가 늘어났다. [사진=뉴시스]
중·저신용자 대출이 자취를 감추면서 신용회복 신청 건수가 늘어났다. [사진=뉴시스]

■ 연체율 다시 보기=지난 6월 말 19개 국내 은행들의 연체율은 1년 전보다 0.15%포인트 상승한 0.35%였다.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시중은행들의 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은 1년 전보다 두배 치솟았는데도 0.21%에 불과하다. 이를 토대로 몇몇은 ‘한국의 금융이 건실하다’고 주장한다.  

우리 은행들의 주택담보대출의 연체율은 얼마나 낮은 수준일까. 미국 모기지은행협회가 3개월마다 발표하는 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모기지(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은 지난 2분기 3.37%를 기록했다. 이는 협회가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1979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미국은 은행 외에도 모기지 전문금융회사가 주담대를 취급한다. 미국 최대 은행인 JP모건의 올해 2분기 가계대출 연체율도 0.5% 이상이었다.

우리나라 은행들의 건전성이란 확실히 받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대출을 내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중·저신용층 신용 대출로 발생하는 위험을 은행‧저축은행‧상호금융‧인터넷전문은행‧카드회사‧정책금융‧대부회사 순으로 떠넘겨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연체율 줄이기 희생양 저신용자=금리 인상이 지속되고, 여러 부문에서 부실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금융권은 중·저신용자에게 내줬던 대출을 더 줄이고 있다. 이제 중·저신용, 저소득 가구들이 금융 시스템 안에서 빚을 낼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 


11일 김희곤 의원실(국민의힘)이 서민금융진흥원에 요청해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대부업체들의 신규 가계신용대출은 6000억원에 불과했다. 대부업체들의 지난해 가계신용대출 규모는 4조1000억원이었다. 법정 최고금리가 20%인 상황에서 금리인상기가 길어졌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저축은행도 지난해 가계신용대출로 17조2000억원을 풀었는데, 올해 상반기에는 5조8000억원으로 줄었다. 

서민들을 위한 대표적 정책 금융상품인 ‘근로자햇살론’의 올해 공급 목표 역시 2조6000억원으로 지난해보다 1조2000억원이나 줄었다. 그나마도 상반기에 2조1991억원을 집행하면서 이제 여유가 없는 상황이다. 

그러자 서민들은 카드회사의 최고 금리 15%짜리 카드론으로 몰렸다. 지난 8월 22일 여신금융협회는 8개 전업카드사의 지난 7월 말 카드론 잔액이 35조3952억원으로 2개월 전보다 무려 5483억원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자료 | 금융감독원]
[자료 | 금융감독원]

■ 자금 어디로 쏠렸나=중·저신용 서민들에게 나가야 하는 돈은 어디로 간 걸까. 답은 정부 정책에서 찾을 수 있다. 정부는 올해 부동산 연착륙을 위해 각종 규제를 풀었는데, 그 결과 가격 급락세가 멈추면서 주택담보대출이 늘어났다. 특히 중·저신용 대출을 약속하며 출범한 인터넷전문은행들이 공격적으로 주택담보대출을 늘렸다.

지난 3월 카카오뱅크‧케이뱅크‧토스뱅크 3사는 올해 말까지 중·저신용자 대출 비중을 최고 44%까지 끌어올리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인터넷은행 3사가 최근 양경숙 의원실(더불어민주당)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카카오뱅크는 지난 6월 이후 두달 동안 주담대를 1조9950억원(11.5%), 케이뱅크는 같은 기간 3721억원(10.1%) 늘렸다. 5대 대형은행들의 주담대가 이 기간 3조5990억원(0.7%)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막대한 규모다. 


서민들은 이제 불법사금융으로 내몰리고 있다. 11일 국민의힘 서범수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에 요청해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에 불법사금융 관련 상담·신고 건수는 6784건으로 지난해 1만913건의 절반을 이미 넘어섰다. 

결국 경제 시스템을 이탈할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의 수가 폭증했다. 금융감독원이 지난 8월 양정숙 의원실(더불어민주당)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신용회복 신청자 수는 9만1981명으로 폭증했다. 2022년 신청자 수는 13만8202명이었다. 

금융 시스템에서 중·저신용자를 배제하면 좁게는 개인에서, 넓게는 한국 경제까지 상당한 영향을 받는다. 

첫째, 중·저신용자들을 금융 시스템 외부로 축출해 이들이 개인회생 또는 파산하면 최소 10년은 신용 시스템에서 배제된다. 개인 파산자는 법원의 허락이 없으면 10년 후에야 복권된다. 개인 파산자는 직업의 선택부터 금융 거래까지 광범위한 제재를 받는다. 

불법 사채업자들이 기승을 부리자 경기도가 지난 5월 집중단속에 나섰다. [사진=뉴시스]
불법 사채업자들이 기승을 부리자 경기도가 지난 5월 집중단속에 나섰다. [사진=뉴시스]

둘째, 올해 하반기 한국 경제를 지탱해줘야 하는 소비에 악영향을 준다. 올해 2분기 한국 경제는 민간소비와 정부소비가 위축되면서 전분기 대비 0.6% 성장에 그쳤다. 2분기 민간소비는 전분기 대비 0.1% 감소했다. 

셋째, 소비심리가 악화하면서 초과저축 등 소비에 직결되는 지표에 악영향을 준다. 한국은행이 발표하는 소비자심리지수는 지난해 말부터 꾸준히 상승했지만, 8월 103.1로 전월보다 0.1포인트 감소했다. 3분기에도 소비심리가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고소득자들이 초과저축의 대부분을 차지할 것이라고 예단한다. 금액으로는 사실이지만, 저축률로 보면 저소득층의 초과저축도 축적돼 있다. 특히 지난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인 2020년 1분기~2021년 3분기 월평균 초과저축률을 보면, 고소득자인 5분위의 초과저축률은 2.4%로 낮았지만, 저소득층인 1분위와 2분위 초과저축률은 각각 4.3%, 8.2%였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ayhan0903@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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