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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선택 납세자연맹 회장 
전현직 대통령에게 묻고 싶은 것
증빙자료 없는 세금 사용 괜찮나
투명성 위한 정보공개시스템 갖춰야

전 정부와 현 정부의 갈등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현 정부는 전 정부의 거의 모든 걸 부정하고 있고, 전 정부는 이를 거세게 비난하고 있다. 정치적 이념도, 철학도 모두 달라 보인다. 그런데 전 정부와 현 정부가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게 하나 있다. 국민의 세금으로 이뤄진 특활비의 내역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거다. 납세자연맹이 두 정부의 특활비 내역을 공개하라고 요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선택 회장은 국민 알권리를 위해 공적기관의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사진=뉴시스]
김선택 회장은 국민 알권리를 위해 공적기관의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사진=뉴시스]

지난해 6월 납세자연맹은 대통령실의 특별활동비ㆍ업무추진비ㆍ식사비ㆍ영화관람비 등의 내역을 공개할 것을 청구했다. 대통령실이 정보를 공개하지 않자 연맹은 올 3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그 1심 판결이 지난 1일 나왔는데, 결과는 연맹의 일부 승소였다. 하지만 김선택(63) 납세자연맹 회장의 표정은 밝지 않다. 왜일까. 

✚ 1심 판결의 주요 내용이 뭔가.
“우리가 청구한 정보공개 요구에 대통령실이 불투명하고 모호한 이유를 들어 답변을 회피한 건 국민의 기본권인 알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는 게 판결의 요지다. 1심 법원은 예산지출에 관한 감시를 받지 않겠다는 건 헌법상 법치주의 원리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도 강조했다.”

✚ 결국 정보를 공개하라는 의미인가.
“그렇다.”

✚ 당초 청구했던 정보들이 모두 해당되는가. 
“그건 아니다. 연맹은 크게 4가지 정보의 공개를 요청했다. ▲윤석열 정부 취임 후 대통령실의 특활비 지출 내역, ▲업무추진비 내역, ▲지난해 5월 청담동 모 식당에서 지출한 식사비 내역, ▲지난해 6월 윤 대통령 부부의 영화관람비 내역 등이다. 이중 업무추진비만 제외됐다. 나머지는 특정 개인정보 등을 빼고 공개해야 한다.”

✚ 특활비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라 생각하나. 
“예컨대 사업자가 3만원 이상을 지출로 처리하려면 세금계산서나 영수증을 받아 증빙해야 하고, 그러지 않으면 소득세법에 따라 가산세를 내야 한다. 탈세 예방을 위한 현금영수증 제도도 있다. 반면 고위공직자들은 거액의 특활비를 주로 현금으로 지출하면서 증빙할 자료를 남기지 않고, 증빙자료가 있다고 해도 공개하질 않는다. 이는 국민을 향해선 탈세를 하지 말라고 하면서 자신들은 탈세를 방조하는 꼴이다. 특활비는 그 자체로 불법이다. 북유럽 국가에선 정치인이나 공무원이 영수증 없이 세금을 쓰고, 이를 공개하지도 않는다면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할 거다.” 

✚ 이번 재판에서 승소했으니 의미 있는 성과 아닌가.
“승소를 해도 실익이 없으니 그게 문제다.”

✚ 무슨 뜻인가. 
“문재인 대통령 임기 때인 2018년에도 김정숙 여사 옷값 등 청와대 특활비 내역을 공개하라고 청구했다. 청와대는 공개를 거부했고, 이듬해 연맹은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그로부터 3년 만인 2022년 2월 승소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정보가 공개되지 않았다.”

✚ 이유가 뭔가. 
“관련 자료들이 대통령기록물로 이관됐기 때문이다. 이관 중단을 위한 가처분 신청도 하고, 대통령기록물법 일부가 위헌이라면서 헌법소원도 제기했지만 소용없었다. 가처분 신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헌법소원 결과는 언제 나올지 알 수도 없다.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가 각종 자료를 대통령기록물로 이관한 점을 신랄하게 비판했지만, 똑같은 행태를 보였다. 선례가 있으니 이번 정부도 항소로 시간을 끌다가 같은 전철을 밟지 않겠는가.”

일부에선 연맹이 정치적 목적으로 ‘특활비 공개’를 주장한다고 꼬집는다. 하지만 연맹은 정파와 무관하게 특활비 공개를 주장해왔다. 오히려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연맹의 회원들이 탈퇴하는 바람에 손해를 봤다. 연맹은 정부 지원 없이 회원들의 후원금으로 운영된다. 김 회장은 “연맹은 특정 정부의 부패를 들추려는 게 아니라 정보공개가 국민의 당연한 알권리라는 걸 보여주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법원에서 특활비 내역을 공개하라고 해도 현 정부든 전 정부든 공개하지 않는다는 건데, 이 문제의 근원이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근거 없이 예산을 쓰는 걸 정치인도 공무원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니까 그런 거 아니겠나. 여야를 가릴 것도 없다. 다 똑같다. 그 배경엔 투명성에 관한 사회적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탓이 크다고 생각한다.”

✚ 무슨 의미인가.
“민주주의 시스템을 떠받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바로 정보의 투명성이다. 그래야 국민이 국가를 감시할 수 있고, 부패나 권력 남용을 막을 수 있다. 투명성이 없으면 대통령이 누가 되든 국민의 삶은 달라지지 않는다. 세금을 영수증도 없이 사용할 수 있다면 누가 세금을 올바르게 쓰겠나. 정보 투명성을 확보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그런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 정보공개법이 있으니 정치인들이 결단을 내리고, 법을 지킬 장치를 만들면 되는 거 아닌가.
“그렇지 않다. 이해충돌방지법, 김영란법의 예를 들어보자. 모두 공직자의 부패를 막기 위한 법인데, 그래서 부패가 없어졌는가. 그렇지 않다. 국민 모두가 감시자가 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정보 투명성이 중요한 거다.”

✚ 생각하는 방향성이 있는가. 
“스웨덴 사례를 배울 필요가 있다고 본다. 공직자의 부패를 찾아보기 힘든 스웨덴의 정보공개 방침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특정 지역에 사는 누군가의 이름만 알고 있어도 검색을 통해 집주소는 물론, 동거인의 이름과 나이, 소득 내역, 납세 내역, 심지어 차량 모델의 정보까지 알 수 있다. 이런 시스템에서 누군가를 속이는 게 가능하겠는가. 현재 문제가 되는 전세사기도 스웨덴에선 불가능하다. 공적기관에서 어떤 사항을 결정할 때 결정한 사람이 누구인지,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도 알 수 있다. 양평고속도로와 같은 논란거리가 생길 여지조차 없는 셈이다.”

스웨덴은 강력한 정보공개 시스템을 통해 공직사회의 신뢰도를 높였다. 사진은 울프 크리스테르손 스웨덴 총리.[사진=뉴시스]
스웨덴은 강력한 정보공개 시스템을 통해 공직사회의 신뢰도를 높였다. 사진은 울프 크리스테르손 스웨덴 총리.[사진=뉴시스]

✚ 스웨덴처럼 모든 정보를 공개하는 건 어려운 문제다. 
“그게 옳다는 게 아니다. 문화가 다른데 어떻게 그대로 적용하겠는가. 다만, 스웨덴이 왜 그렇게 하는지 정도는 살펴봐야 하지 않겠나. 이를 통해 우리 현실에 맞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스웨덴도 모든 정보를 다 공개하는 건 아니다. 공개가 기본이고, 공개할 수 없는 정보는 법에 일일이 구체적으로 열거해 놓고 있다. 그게 200쪽 분량이다. 공직자가 임의로 ‘국정운영에 차질을 줄 수 있다’거나 ‘국익을 해칠 수 있다’는 식으로 모호하게 비공개를 결정할 수 없다. 이런 건 배워올 수 있지 않겠는가.”

✚ 정보공개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건가. 
“제대로 된 논의가 필요하다는 거다. 그렇지 않으면 껍데기만 베끼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우리 사회가 어디까지 정보공개를 용인할 수 있는지, 정보 투명성은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는지, 장단점은 무엇인지부터 살펴보자는 뜻이다.”

✚ 1심 판결에도 정보공개를 하지 않고 있는정부에 할 말이 있는가. 
“투명한 국정운영은 정부를 망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신뢰를 확보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노조의 회계 투명성을 강조하면서 대통령실 회계를 불투명하게 운영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다. 이런 상황을 바로 잡으면 더 많은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지 않겠나.” 

✚ 정보공개 요구는 언제까지 할 생각인가. 
“연맹은 전ㆍ현 정부의 특활비 내역이 공개될 때까지 정보공개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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