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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취업비자 정책의 맹점
내년 E-9 근로자 역대 최대 예상
중기 인력난 해소 위한 거라지만
勞, 근로환경 개선 없인 백약무효

내년 고용허가제 비전문 취업비자(E-9)를 받아 국내로 들어오는 외국인 근로자 수가 역대 최대치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내국인 근로자를 구하기 쉽지 않은 업종의 구인난을 외국인 근로자(이하 모두 E-9 지칭)로 해소하겠다는 게 정부의 취지다. 하지만 노동계의 비판이 만만찮다. 내국인의 빈자리를 단순하게 외국인으로 메우겠다는 구상도 섣부르다는 지적이 나온다.

외국인 근로자 유입을 늘려도 근무여건이 개선되지 않으면 중소기업의 인력난은 해소되지 않을 거라는 지적이 나온다.[사진=뉴시스]
외국인 근로자 유입을 늘려도 근무여건이 개선되지 않으면 중소기업의 인력난은 해소되지 않을 거라는 지적이 나온다.[사진=뉴시스]

11월 27일 고용노동부가 노동계에 파문을 일으킬 만한 ‘안案’을 확정했다. “2024년 고용허가제 E-9 도입 규모를 16만5000명으로 확정했다”는 거였다. 올해 12만명보다 4만5000명(37.5%) 늘어난 것으로, 고용허가제 도입 이후 최대 규모다. 

2004년 도입한 고용허가제는 내국인 근로자를 구하지 못한 중소기업이 합법적으로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할 수 있는 제도다. E-9은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일정 자격이나 경력 등이 필요하지 않은 제조업ㆍ건설업ㆍ농업ㆍ축산업을 비롯한 비전문 직종에 취업하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발급하는 비자다.

정부는 “저출산ㆍ고령화에 따른 생산인구 감소 등 구조적 요인이 여전한 가운데, 일부 서비스업에선 일할 사람이 모자라 외국인 근로자를 채용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됐다”면서 “외국인 근로자 도입 규모 확대는 이런 상황을 고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업종별로 보면 ▲제조업 9만5000명, ▲농축산업 1만6000명, ▲서비스업 1만3000명, ▲어업 1만명, ▲건설업 6000명, ▲조선업 5000명, ▲탄력배정분 2만명이다. 특히 내년부터는 음식점업과 임업, 광업 등 3개 업종에서도 고용허가제를 통한 인력 고용이 가능해진다.

정부는 “외국인 근로자 규모가 늘어남에 따라 그들의 원활한 정착은 물론, 체류 관리와 지원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새롭게 고용허가제를 적용하는 업종에는 관련 협회나 자체 훈련기관을 통해 직무교육이나 산업안전교육을 실시하겠다는 게 정부의 방침이다.

아울러 업황과 특성에 따라 고용허가제 허용 기준을 정하는 등 인력관리 시스템도 보완한다. 예컨대 음식점업은 휴ㆍ폐업 비율이 높은 만큼 일정 수준의 운영 여건을 갖춘 사업장에만 외국인 근로자 고용을 허용하고, 전일제 고용을 원칙으로 삼는 식이다. 

정부는 내년 하반기 고용관리 실태조사도 실시할 계획이다. ▲외국인 근로자 고용 직후 내국인 근로자를 이직시킨다든지, ▲임금체불이나 노동관계법 위반 등이 발생하면 불이익을 주는 방식으로 사후관리도 강화한다. 

하지만 정부의 이런 조치를 두고 노동계는 비판적인 입장을 내놨다. 민주노총은 성명을 통해 “정부는 인력난을 겪는 업종의 임금ㆍ노동조건 개선은 외면한 채 무조건 외국인 근로자만 늘리면 된다는 식으로 접근하고 있다”면서 “과연 이게 유일한 대안인지 정부는 생각해봐야 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민주노총은 “외국인 근로자의 정책이 엇갈린다”는 점도 꼬집었다. “외국인 근로자 증가에 걸맞은 지원 정책과 처우 개선이 필요한데 정부는 오히려 후퇴시키고 있다.

일례로 10월 19일부터 신규 입국자는 사업장 이동 제한 외에 지역 이동까지 제한해 외국인 근로자를 이중삼중으로 옥죄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 지원정책의 거점이라 할 수 있는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위탁사업 예산도 전액을 삭감했다.” 

정부가 내년에 비전문 취업비자 규모를 확대하기로 했다. 사진은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사진=뉴시스]
정부가 내년에 비전문 취업비자 규모를 확대하기로 했다. 사진은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사진=뉴시스]

한국노총 역시 성명을 통해 “국내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 해당 업종 노동계와의 논의, 기존 허용 업종을 평가하는 작업이나 개선 등이 전혀 없는 일방적이고 졸속적인 정책 추진”이라면서 “코로나19 시기에 일자리를 잃은 국내 근로자들이 제자리를 찾아가지도 못한 상황에서 그들의 재취업을 막아 노동시장 생태계를 파괴하는 일을 정부가 주도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동계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지 않다. 취업 비자만 열어준다고 부족한 일손을 제대로 채울 수 있는 건 아니다.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할 사업장의 근로환경이 개선되지 않고,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전례가 있다.

한국노총에 따르면 2021년 광업 부문에 H-2(중국과 옛 소련 지역의 재외동포에게 발급하는 취업 비자)를 허용했지만 취업자는 3명에 불과했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노사정 간 논의 없이 졸속으로 추진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외국인 근로자 도입 확대는 노동시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다. 논의가 필요하다는 노동계의 주장이 과한 걸까. 그렇지 않아 보인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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