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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가 인정한 이영우 셰프
나폴리피자 현지 대회서 우승
한국인 최초의 기록 이어가
90초에 맛 좌우되는 나폴리피자
좋은 도우 만드는 데 변수 수두룩
나폴리피자에 인생 건 그의 이야기

# 90초. 누군가에겐 턱없이 짧은 시간이지만 또다른 누군가에겐 ‘삶’을 결정짓는 시간이다. 피자가 대표적이다. 피자의 원형인 나폴리피자는 400도가 넘는 화덕에서 단 90초 동안 구워서 만든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잘 익힌 나폴리피자를 만드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

# 여기 90초에 좌우되는 나폴리피자에 인생을 건 인물이 있다. 한국인 최초 ‘나폴리피자 세계 챔피언십(클라시코)’ 우승자이자 ‘나폴리피자 장인협회’ 한국지부 회장인 이영우(45) 셰프다.  

이영우 셰프는 한국인 최초로 이탈리아 현지 피자 대회에서 우승했다.[사진=쉐프스푸드 제공]
이영우 셰프는 한국인 최초로 이탈리아 현지 피자 대회에서 우승했다.[사진=쉐프스푸드 제공]

전세계인이 즐기는 음식 ‘피자’. 우리는 프랜차이즈화한 미국식 피자에 익숙하지만, 사실 피자 종주국은 이탈리아다. 그중에서도 ‘나폴리피자’는 피자의 원형으로 꼽힌다. 이탈리아 사람들의 피자 사랑도 유별나다.

이탈리아엔 12만8000개에 달하는 피자집(피제리아·pizzeria)이 있고, 피자 시장 규모는 150억 유로(약 21조원)에 이른다. 그만큼 이탈리아인의 피자 자부심이 높다. 글로벌 피자 프랜차이즈 ‘도미노피자’조차 이탈리아 시장에 안착하지 못하고 7년 만에(2015~ 2022년) 사업을 철수했을 정도다. 

주목할 점은 이런 시장에서 한국인 피자이올로(피자 장인을 일컫는 용어)의 활약상이 두드러진다는 거다. 이영우(45) 피자이올로(이하 셰프)가 대표적이다. 이영우 셰프는 2015년 이탈리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대회로 꼽히는 ‘나폴리피자 세계 챔피언십’의 클라시코(Classico) 부문에서 우승했다.

이 대회에서 한국인이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건 처음이었다. 지난 6월엔 한국인 유준환 셰프가 같은 대회 ‘STG(Specialita Tradi tionale Garantita)’ 부문에서 우승했다. STG 부문에선 유네스코에 등재된 이탈리아 전통방식으로 만든 피자로 경연을 펼친다. 

STG 부문 우승자를 전체 대회 우승자로 간주하는 만큼 의미가 크다. 한국인 셰프가 ‘피자의 나라’ 이탈리아에서 인정받고 있다는 건데, 그 이유가 뭘까. 이들의 성공 이면엔 무엇이 숨어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끊임없는 노력이 지금의 그들을 만들었다. 

✚ 한국인 셰프가 이탈리아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이유가 뭔가요? 
“한국인은 손기술이 워낙 좋아요. 셰프들이 ‘열린 마음’을 갖고 있다는 점도 한몫한 것 같아요. 서로 노하우와 기술을 공유하고 한편으론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한국의 나폴리피자 퀄리티가 높아졌다고 생각합니다.” 

✚ 겸손한 말씀이신데요. 
“한국 소비자들이 워낙 깐깐해요(웃음). ‘오늘은 도우가 어떻다’ 가감이 없이 얘기해주시고요. 그런 높은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좋은 결과가 나온 게 아닐까요.” 

깐깐한 소비자의 입맛에 맞추기 위한 노력…. 언뜻 보기엔 간단한 솔루션 같지만 그렇지 않다. 소비자의 입맛을 찾아가는 과정엔 수많은 도전과 좌절이 숨어있기 마련이다. 어떤 분야에서든 1위 자리에 오르는 덴 그에 걸맞은 노력이 필요하다. 이영우 셰프가 걸어온 길도 마찬가지였다. 

스파카 나폴리 벽면을 채운 이영우 셰프의 수상실적.[사진=쉐프스푸드 제공]
스파카 나폴리 벽면을 채운 이영우 셰프의 수상실적.[사진=쉐프스푸드 제공]

✚ 어떻게 나폴리피자의 세계에 입문하셨나요. 
“20대 시절 유럽여행을 하면서 피자가게에 자주 들렀어요. 그곳에 가면 행복하더라고요. 한국에 돌아와 몇년간 직장생활을 했는데 잘 맞지 않았어요. 그때 마음에 간직하고 있던 피자가게가 떠올랐죠. 무작정 화덕피자 가게에 들어가 일을 배웠어요. 당시만 해도 한국에 나폴리피자 가게가 많지 않았죠. 그래서 이탈리아에서 직접 피자를 배우기로 했습니다.” 

✚ 현지에서의 배움은 뭔가 달랐나요. 
“이탈리아 북부 피자학교에 들어갔는데, 기본기를 가르쳐줄 뿐 드라마틱한 방법은 없더라고요. 그래서 2009년 다시 나폴리로 떠났죠. 현지 피제리아에서 셰프의 조수 역할을 하면서 어깨너머로 기술을 배웠어요. 하지만 쉽지만은 않았어요. 그들은 정확한 계량이 아닌 ‘감感’으로 반죽을 만들다 보니, 결국 제 스스로 방법을 찾아야 했죠.” 

✚ 어떻게 방법을 찾으셨나요. 
“한국으로 돌아온 후엔 제 자신과 싸움의 연속이었어요(웃음). 나폴리피자는 400도 이상의 화덕에서 단 90초 동안 구워 만들어요. 이 때문에 반죽(도우)이 높은 열에서 타지 않고 견딜 수 있어야 하죠. 도우가 타버려 화덕에서 일찍 꺼내면 위에 얹은 재료들이 익지 않으니까요. 문제는 도우를 만드는 데 변수가 너무 많다는 거였죠.” 

✚ 좋은 피자를 좌우하는 건 도우인가요. 그럼 좋은 피자의 성패가 단 90초에 결정되는 셈이군요. 
“밀가루, 모차렐라치즈, 올리브오일, 토마토 등 재료의 퀄리티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도우라고 생각해요. 작업장의 온도, 습도, 발효시간 등에 따라 도우의 상태가 천차만별로 달라져요. 매일 매시간 달라지는 도우를 어떻게 일정하게 컨트롤할지 방법을 찾는 과정은 결국 시간과 노력을 쏟아붓는 것 말곤 없더라고요.” 

이영우 셰프는 2011년 서울 합정에 나폴리피자 전문점 ‘스파카 나폴리’를 열었다. 이후 12년 동안 매일 아침 일찍 출근해 밤 11시가 돼서야 퇴근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가 저녁 약속 한번 잡지 않은 건 최상 퀄리티의 피자를 위해선 셰프가 항상 도우를 체크해야 한다는 고집 때문이다. 

✚ 2011년 ‘나만의 가게’ 스파카 나폴리를 여셨습니다. 운영은 안정적이었나요. 
“가게를 열고 5~6년 차가 됐을 때까지도 도무지 모르겠더라고요(웃음). 도우를 만져보면 ‘잘못됐는지’ ‘잘됐는지’ 느낌은 오는데 정작 뭐가 잘못된 건지를 모르니까요. 답답하고 화가 났죠. 초창기엔 도우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가게 문을 닫고 도우에만 몰두했어요.” 

✚ 손님들이 헛걸음을 하는데도요?
“가게 문을 닫아서 못 오신 손님은 언젠가 오시겠지만, 잘못 만든 피자를 드시고 가면 다신 안 오실 것 같았어요(웃음).”  

피자에 한해선 ‘완벽주의’를 지향하는 이영우 셰프가 걸어온 길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는 ‘땀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노력’보다 ‘적당히’가 판을 친다. 아무리 노력해도 미래를 보장받지 못하고, 금수저나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 누군가와의 격차를 극복하기 어려우니 당연한 현상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성공한 사람들은 끊임없이 노력한다. 노력하는 것도 어쩌면 재능이다. 

실제로 이영우 셰프는 한국인 최초의 기록들을 이어가고 있다. 그가 이끄는 스파카 나폴리는 이탈리아 음식 전문 미디어 ‘감베로 로소(Gambero Rosso)’가 선정하는 ‘톱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세차례(2019·2020·2023년)나 이름을 올렸다. 2022~2023년엔 이탈리아 미디어 ‘50 톱 피자(50 Top Pizza)’가 선정하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50 톱 피자’ 순위 11·18위에 올랐다. 

✚ 셰프로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언젠가요. 
“음식을 내고, 손님들의 표정을 봐요. ‘음~’ 하면서 고개를 끄덕끄덕하신다는 건 맛있다는 거거든요. 그 행복한 표정을 볼 때 저도 가장 행복합니다.” 

✚ 앞으로 목표가 있으시다면요. 
“잘 만든 피자는 ‘평양냉면’과 같은 매력이 있어요. 자극적이지 않고 슴슴하죠. 속이 편해서 다시 찾게 되고요. 스파카 나폴리도 오랜 평양냉면집처럼 ‘노포’ 같은 가게가 됐으면 좋겠어요.”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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