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커버스토리 視리즈
섣부름의 실패학➋ 증설의 저주
허니버티칩 · 클라우드 초기 성공
대규모 투자 이후 수익성 악화
빠르게 변화하는 소비 트렌드
그럴수록 의사 결정 신중해야

식품업계에 나도는 ‘증설의 저주’라는 말이 있다. 어떤 제품이 인기를 끌어 기업이 공장을 증설하고 생산량을 늘리면 되레 인기가 싸늘하게 식는다는 거다. 대표적인 사례가 감자칩 ‘허니버터칩(해태제과)’과 맥주 ‘클라우드(롯데칠성음료)’다. 모두 초기 인기에 취해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다가 수익성 악화란 부메랑을 맞았다.

허니버터칩은 입소문을 타면서 품귀현상을 빚었지만 열풍은 금세 수그러들었다.[사진=뉴시스]
허니버터칩은 입소문을 타면서 품귀현상을 빚었지만 열풍은 금세 수그러들었다.[사진=뉴시스]

시대가 빠르게 변화하면서 스피디한 의사결정이 미덕으로 여겨지고 있다. 기업 경영에서도 마찬가지다. 한정된 시간과 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써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빠른 의사결정이 늘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는 건 아니다. 

특히 사업이 성과를 내고 있을 땐 더욱 주의해야 한다. 성과에 취해 단행한 의사결정이 자칫 섣부른 판단이 될 수 있어서다. 오랜만에 터진 히트상품에 서둘러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다가 발목이 잡힌 기업들이 적지 않다.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가 ‘허니버터칩(해태제과)’이다.

■ 사례➊ 허니버터 칩 = 2014년 8월 출시된 허니버터칩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기존 감자칩의 틀을 깬 ‘단맛’과 ‘짠맛’의 조화에 사람들이 열광했다.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면서 품귀현상까지 나타났다. 과자를 점포에 예약해서 구입하거나 웃돈을 주고 거래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쉽게 구할 수 없다는 ‘희소성’이 허니버터칩의 인기에 기름을 부은 셈이었다. 

허니버터칩을 론칭한 해태제과로선 가뭄의 단비와 같았다. ‘홈런볼’ ‘에이스’ ‘맛동산’ 등 인기상품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이들을 뒤이을 히트상품이 부재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허니버터칩의 인기가 폭발하자, 해태제과는 생산설비 증설을 결정했다.

2015년 7월 200억원가량을 투자해 강원도 원주시 문막읍에 제2공장을 착공했다. 1만㎡(약 3025평) 규모로, 월 75억원(판매가 기준)이던 허니버터칩 생산량을 2배인 월 150억원대로 늘린다는 계획이었다. 한발 더 나아가 허니버터칩을 연매출액 2000억원대 브랜드로 키운다는 청사진도 내놨다.

하지만 제2공장 준공까지는 1년여의 시간이 걸렸고, 그사이 허니버터칩의 인기는 식어갔다. 허니버터칩의 희소성에 열광했던 사람들은 물량 공급이 원활해지자 흥미를 잃었다. 없어서 못 팔던 허니버터칩을 일부 점포에선 박스째 할인판매하기도 했다.

이는 실적 악화로 이어졌다. 허니버터칩은 해태제과와 일본 가루비사의 합작법인(지분율 50대50) ‘해태가루비’가 생산하는데, 이 회사의 매출액은 2014년 299억원에서 2015년 575억원으로 급증했다가 2017년엔 537억원으로 감소했다. 

회사 관계자는 “당시 허니버터칩의 물량 부족 사태가 벌어져 증설을 결정한 것”이라서 “10여년이 흐른 지금 허니버터칩은 매출액 500억원대 브랜드로 시장에 안착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공장 증설 이전에도 허니버터칩을 연간 900억원 규모로 생산할 수 있었던 만큼 증설이 효율적인 선택이었는지엔 의문이 남는다. 호기롭게 내세웠던 2000억원대 브랜드로 키운다는 청사진도 이루지 못했다. 모처럼의 히트상품 등장에 해태제과가 섣부른 판단을 내린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롯데칠성음료는 맥주 시장점유율 15%를 목표로 맥주 공장을 확대했지만 5%대 시장점유율에 머물고 있다.[사진=뉴시스]
롯데칠성음료는 맥주 시장점유율 15%를 목표로 맥주 공장을 확대했지만 5%대 시장점유율에 머물고 있다.[사진=뉴시스]

■ 사례➋ 클라우드 = 허니버터칩과 같은 해에 출시된 롯데칠성음료의 맥주 브랜드 ‘클라우드’도 비슷한 사례로 꼽힌다. 맥주시장 후발주자였던 롯데칠성음료는 2014년 4월 클라우드를 론칭했다. ‘물 타지 않은 맥주’를 콘셉트로 톱스타 ‘전지현’을 모델로 내세웠다.

초기 반응은 뜨거웠다. ‘물 탄 것 같다’ ‘밍밍하다’ 등의 비판을 받았던 기존 국내 맥주와 차별화를 꾀한 덕분이었다. 클라우드는 출시 9개월 만인 2015년 1월 판매량 1억병(330mL)을 넘어섰다.

클라우드가 초기 흥행에 성공하자 롯데칠성음료는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총 7000억원을 투자해 맥주 생산 설비를 증설(2015년)하고 제2공장까지 건립(2016년)했다. 당시 롯데칠성음료가 내세운 목표도 작지 않았다. 당시 5%안팎이던 맥주 시장점유율을 15%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클라우드의 인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2017년 또다른 맥주 신제품 ‘피츠’를 출시해 투트랙 전략을 펼쳤지만, 피츠는 결국 지난해 단종 수순을 밟았다. 문제는 서둘러 단행한 대규모 투자가 수익성 악화라는 부메랑을 날렸다는 점이다.

이 회사의 주류 사업부문은 2016년부터 2020년까지 5년간 적자를 이어갔다. 무엇보다 공장 가동률이 낮아지면서 수익성이 악화했기 때문이다. 주류 부문 공장 평균 가동률은 2017년 63.3%에서 2020년 39.4 %까지 떨어졌다. 


결국 롯데칠성음료는 공장 가동률을 높이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2021년부터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방식으로 수제맥주(제주맥주) 생산을 시작했다. 일부 맥주 제조 시설을 탄산음료·소주 제조 시설로 전환했다. 이후 공장 가동률(2023년 2분기 기준 50.7%)이 높아지는 등 수익성 개선엔 도움이 됐지만, 여전히 맥주 시장점유율은 5%대에 머물고 있다. 

클라우드의 초기 흥행에 도취해 너무 빨리 증설한 게 되레 악수로 작용한 셈이다. 물론 롯데칠성음료가 맥주시장을 포기한 건 아니다. 지난 21일 이 회사는 3년 만에 맥주 신제품 ‘크러시(KRUSH)’를 공식 출시했다. 아이돌 ‘에스파’의 카리나를 모델로 선정하고, 마케팅을 본격화할 계획이다.   

두 사례에서 볼 수 있듯 빠른 의사결정이 반드시 성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너무 빨리 터뜨린 축포는 되레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 오세조 연세대(경영학) 교수는 이렇게 지적했다. “한국 소비자는 변화무쌍하고 까다롭다. 반짝 인기를 끌더라도 장수제품으로 자리를 잡는 건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출시한 제품이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해서 물량 공세를 퍼부어선 안 된다. 생산량을 확대할 때에는 그에 걸맞은 치밀한 전략이 뒷받침돼야 한다. 수요 예측, 소비자 성향·욕구 파악, 경쟁사들의 대응 전망 등을 면밀하게 파악하고 핵심을 짚은 후에 투자를 결정해야 한다.” 성과나 실적에 급급하다 보면 오판을 내릴 수 있다는 일침이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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