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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세금 50% 낮춰줬지만
기업 사내유보금 4배 늘어나
자민당 “투자하는 기업만 지원”
우리 기업 사내유보금 큰폭 증가

일본 자민당이 법인세율을 인상해 투자에 나서는 기업들의 감세 재원으로 쓰자는 주장을 내놨다. 자민당 의원들은 30여년간 일본 기업들의 법인세를 절반 가까이 내려줬는데, 사내유보금은 4배 이상 증가한 것을 눈여겨보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현실은 어떨까. 법인세와 사내유보금의 상관관계를 살펴봤다. 

미야자와 요이치 자민당 세제조사회장이 법인세 인상 찬성 입장을 밝혔다. 사진은 일본 중의원 본회의 모습. [사진=뉴시스]
미야자와 요이치 자민당 세제조사회장이 법인세 인상 찬성 입장을 밝혔다. 사진은 일본 중의원 본회의 모습. [사진=뉴시스]

일본에서 법인세율 인상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11월 29일 열린 일본 집권여당 자민당의 세제조사회 간부회의는 반도체 분야에 투자한 기업들의 감세 조치를 논의하는 자리였지만, 동시에 법인세율 인상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기업들이 법인세를 인하해줬는데도 투자에 나서지 않고, 이를 사내유보금으로 쌓아두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일본 경제매체 산케이는 5일 “일본 기업들의 법인세(국세)와 사업세(지방세)를 합친 최고세율은 1995년 50%에 육박했지만, 현재 29.74%까지 내려왔다”며 “하지만 이 기간 기업들의 사내유보금은 100조엔대에서 555조엔으로 4배 이상 증가했다”고 보도했다. 미야자와 요이치 자민당 세제조사회장은 “(반도체 산업의) 감세를 위한 재원은 투자하지 않는 기업으로부터 법인세로 받는 게 개인적으로는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내유보금의 정식 명칭은 이익잉여금(Retained earnings)이다. 사내유보금은 기업이 사업을 시작한 후 결산일까지 벌어들인 모든 돈에서 원자재 구입부터 운영자금, 세금은 물론이고 주주 배당금까지 모두 제외한 후 남은 돈이다.

사내유보금이 모두 증권·예금과 같은 현금성 자산은 아니다. 기계·공장·땅·빌딩과 같은 실물자산이나 매출채권·미수금·재고와 같은 형태로도 존재한다. 이미 투자한 돈과 앞으로 투자할 돈(현금화 가능한 자산들)이 혼재돼 있고, 이를 재무제표에 이익잉여금 형태로 표현해 놓은 것이다. 투자의 관점에서 보면 사내유보금이 많은 기업은 장사를 잘하는 기업, 투자할 만한 기업이다. 

기업이 사내유보금을 어떻게 쓸지는 기업과 주주들이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여기에 법인세 감세 효과가 작용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일본 자민당이 문제삼는 것도 법인세율을 30여년에 걸쳐 거의 절반으로 줄여줬는데도 기대만큼의 기업 투자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부분이다. 그럴 바에는 일률적으로 법인세 세율을 올려서 반도체 등 투자에 나설 다른 기업들을 돕는 재원으로 쓰는 게 낫다는 얘기다. 

[자료 | 홍성국 더불어민주당 의원, 외감기업 대상]
[자료 | 홍성국 더불어민주당 의원, 외감기업 대상]

일본 정부가 법인세율을 낮추거나 실효세율을 낮추는 방식으로 기업의 부담을 덜어주려고 했던 이유는 기업 투자의 낙수효과를 기대해서다. 일본 정부 입장에서는 그 효과를 마냥 기다릴 수는 없다. 

우리 기업들의 사내유보금도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본과 비슷한 상황이다. 우리 기업들은 시설 등에 투자하지 않고 가지고 있는 현금보유량도 함께 늘어나고 있다. 삼성전자를 보면 연결재무재표 기준으로 사내유보금(이익잉여금)이 올해 6월말 현재 1년 전보다 9.1% 증가한 338조3107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가 보유한 현금도 39조5831억원에서 79조9198억원으로 두배 증가했다. 미래 투자를 위해서든 대형 인수·합병(M&A)을 위해서든, 현재 투자하지 않은 돈이 많다는 뜻이다. 올해 9월 30일 기준 삼성전자의 사내유보금은 342조원으로 더 늘어났다. 

홍성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국회 예산정책처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내 100대 기업의 사내유보금은 2012년 630조원에서 매년 평균 5.5%씩 증가해 2021년 1025조원으로 늘어났다. 이 기간 매출 증가는 연평균 2.3%에 불과했다. 10대 기업으로 좁혀 보면 사내유보금 연평균 증가율은 6.3%, 매출 연평균 증가율은 1.6%였다. 기업의 목적이 무엇이든 사내유보금을 과하게 충당한 정황이 보인다. 

사내보유금 중에서 여러 형태로 투자된 돈이 아닌 현금성 자산의 증가세는 더욱 가파르다. 기업분석회사 CEO스코어가 지난 10월 11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500대 기업 중 2021~2023년 반기보고서를 제출한 278개 기업들의 올해 6월말 기준 현금보유량은 294조8254억원으로 1년 전보다 26.8%나 증가했다.

사내유보금 중에서 각종 법인세 인하 효과는 얼마나 될까. 우리나라 법인세 최고세율은 이번 정부에서 1%포인트 낮춰 국세(24%)와 지방세(2.4%)를 모두 합쳐 26.4%다. 다른 나라와 비슷한 수준이다. 미국의 조세재단(Tax foundation)에 따르면 우리와 비슷한 경제 규모인 호주의 법인세 최고세율은 25.0%, 캐나다는 26.2%다. 그밖에 미국은 25.8%, 일본 29.74%, 이탈리아는 27.8%, 프랑스는 25.8%, 독일은 29.8%였다. 

지난해 12월 경실련이 정부의 세제개편 관련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뉴시스]
지난해 12월 경실련이 정부의 세제개편 관련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뉴시스]

각종 공제를 적용한 실효세율은 더 낮다. 한겨레신문이 국세청 국세통계를 조사한 결과 각종 세금 공제를 모두 적용한 우리나라 기업들의 법인세 실효세율은 지난해 18.5%로 2021년 18.1%에서 소폭 상승했다. 단순하게 얘기하면 감세 정책이 실효세율과 최고세율과의 차이인 7.3%포인트만큼 사내유보금에 영향을 줬다고 볼 수 있다. 

일본 자민당에서 논의를 시작한 것처럼 법인세율 인하가 투자로 이어지지 않았다면, 법인세율을 올려서 이를 재분배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우리도 더불어민주당에서 법인세 최고세율 적용 범위를 넓혀서 실효세율을 높이자는 주장을 하고 있다. 하지만, 불과 2년 만에 두 배 높아진 5%대 기업대출 평균 금리의 영향으로 우리 기업들의 연체율과 파산신청이 늘어나는 현실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우리 기업들이 현재 보유한 사상 최대의 사내유보금과 현금보유량이 올 연말에 고용과 투자를 유지하는 데 유용하게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스티브 네일 미국 앤더슨대 경영대학장은 지난 2월 경제매체 그린빌에 게재한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기고문에서 “주주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직원 해고부터 하는 것은 경기침체기의 올바른 접근 방식이 아니다”며 “임직원과 고객, 지역사회도 주주와 같은 이해관계자인 만큼 해고 전에 다른 방법들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ayhan0903@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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