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문래동 작은 공장 이야기
더스쿠프 Video B 기획
5편 일본 현지 취재
마을과 공생하는 오타구 공장
마을서 떠밀리는 문래동 공장

# 도쿄 오타구大田区와 서울 문래동엔 똑같이 공장이 있다. 그런데 두 제조단지의 분위기는 상당히 다르다. 오타구의 마을공장은 때때로 박람회나 행사를 연다. 우수한 성과를 거둔 공장엔 표창장도 준다. 관광객이 눈여겨볼 만한 제품도 직접 만든다. 직접 홍보하기 위해서다.

# 반면 문래동의 작은 공장은 조만간 새 터전으로 가야 할지도 모른다. ‘제조업의 뿌리’ 역할을 하고 있는데도, 작은 공장의 ‘성과’를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이런 무관심은 결국 낙후한 지역을 재생해 도시 미관을 정비하는 ‘개발론’으로 이어진다.

# 더스쿠프와 영상 플랫폼 Video B가 오타구의 변화를 카메라에 담았다. 아무도 말하지 않는 작은 공장의 비밀 마지막 영상, ‘공장이 숨쉬는 도시’ 편이다.


내레이션 : 4편 ‘마치코바 이웃이 되다’에서 우리는 ‘도심 속 공장’으로 유명한 일본 오타구의 생태계를 스케치했습니다. 오타구는 마을공장을 바닷가로 이전시키려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고 몇몇 공장은 그 자리에 남았죠. 이후 오타구 마을공장은 그곳 사람들과 공존하면서 지금까지 명맥을 잇고 있습니다.

내레이션 : 오타구 마을공장의 사례는 우리에게도 좋은 본보기가 됩니다.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문래동도 과거 오타구와 마찬가지로 ‘공장 이전’과 ‘유지’란 갈림길에 놓여 있어서입니다. 어떻게 오타구 마을공장은 이처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룰 수 있었던 걸까요? 4편 ‘마치코바 이웃이 되다’에 이어 그 비결을 살펴보겠습니다.

내레이션 : 일본 도쿄 하네다 공항에서 10분이면 도착하는 오타산업프라자. 이 건물을 출발점으로 삼아 동쪽으로 가다 보면 일본 도쿄만으로 이어지는 노미천이 나옵니다. 여기서 잠시 지도를 볼까요.

내레이션 : 일본의 토지 용도는 한국과 비슷합니다. 영등포구 문래동처럼 노미천 일대는 보라색으로 표시된 ‘준공업지역’입니다. 이는 도시 한복판이라도 기준치 이하의 오염물질을 배출하지 않는 공장이 들어올 수 있다는 뜻입니다. 노미천을 따라 끝까지 걸으면 간척지 위에 지어진 하네다 공항을 지나 도쿄만과 바다까지 갈 수 있습니다.

1980년대 일본 정부는 오타구의 마을 공장을 바닷가 인공섬으로 옮기려 했지만 실패했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1980년대 일본 정부는 오타구의 마을 공장을 바닷가 인공섬으로 옮기려 했지만 실패했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내레이션 : 1980년대 오타구도 여기 어디 쯤에 인공섬을 만들어 마을공장을 옮길 계획을 세운 바 있습니다. 도심 복판에 공장을 놔두기보단 한곳에 몰아넣는 게 낫겠다는 판단이었죠. 하지만 언급했듯 이 계획은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대부분의 공장이 마을을 떠나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내레이션 : 이런 오타구의 스토리를 듣고 있으면 마찬가지로 문래동의 ‘준공업지역’에 있는 작은 공장들이 떠오릅니다. 현재 둥지를 잃을 처지에 내몰린 이곳 사장님들의 심경도 오타구 마을공장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겁니다.


내레이션 : 다만, 오타구와 문래동의 풍경은 사뭇 다릅니다. 같은 준공업지역이지만 문래동 작은 공장은 다닥다닥 붙어 있어 하나의 ‘집적지’를 이루고 있습니다. 반면 오타구의 공장들은 여기저기 산재해 있습니다. 그래서 오타구는 주택만을 위한 공간도 공장만을 위한 공간도 아니었습니다.

내레이션 : 이는 기자가 본 오타구의 풍경에서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오타구엔 마을공장 바로 옆에 시민들이 거주하는 주택이 있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건물 하나를 주택과 공장으로 나눠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 공장과 주택이 한 몸이란 얘깁니다.

내레이션 : 주택 가까이 공장이 있다는 건 광고판으로도 알 수 있었습니다. 노미천 근처를 걸으며 만나는 전봇대에는 주로 치과나 정형외과 등 병원 광고가 있었지만 다른 광고도 있었습니다. 이곳에 나사를 만들고 파는 공장이 있다는 것도 같은 광고로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오타구에서만 볼 수 있는 낯설면서도 흥미로운 광경입니다.

내레이션 : 이제 기자는 산교도로에 서있습니다. 오타산업플라자에서부터 동쪽으로 도보 30분 거리에 있는 곳입니다. 여기엔 다른 마을공장 크기의 2배가 넘는 시나가와기계제작소가 있습니다. 2022년 오타구와 오타산업진흥협회가 선정한 유코죠에서 종합 부문 우승을 차지한 곳입니다. 이를 자랑이라도 하듯 대문 앞엔 유코죠라고 쓰인 황금색 명패가 걸려 있습니다.

내레이션 : 우수공장제도는 오타산업진흥협회가 1995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표창사업입니다. 선정을 위해 사람ㆍ환경ㆍ기술 등 3가지로 나눠 공장을 평가합니다. 기술력이 좋은 공장만 선발하는 게 아니란 얘기죠. 흥미로운 건 환경 부문 수상 기준입니다. 마을공장이 지역 사회에 얼마나 공헌했는지, 지역 환경에 얼마나 좋은 영향을 미쳤는지를 판단해 수상 기준으로 삼습니다. 이는 마을공장을 지역 사회에 편입시키도록 애쓴 흔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내레이션 : 여기서 주목할 대목은 이 표창이 ‘명예’만 주는 건 아니란 점입니다. 앞서 보여드린 금빛 명패 외에도 오타산업진흥회는 표창을 받은 공장을 위해 팸플릿과 영상자료를 제작해 줍니다. 마케팅에 투자할 여력이 부족한 마을공장의 니즈를 파악한 혜택이죠.

일본 오타구에 있는 작은 공장들은 마을과 공생하면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일본 오타구에 있는 작은 공장들은 마을과 공생하면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내레이션 : 정책 대출을 신청할 땐 준비해야 하는 서류를 면제해 주기도 합니다. 공공에 헌신해서 표창을 받은 만큼 공공의 자금을 이용할 땐 그 문턱을 낮춰준다는 얘깁니다.

내레이션 : 이처럼 오타구의 마을공장은 ‘따로 노는 부품’ 같지 않았습니다. 공장은 마을을 위해 헌신하고 마을은 그런 공장을 위해 혜택을 줍니다. ‘도심 속 흉물’ 취급을 받는 문래동 작은 공장에선 찾아볼 수 없는 풍경입니다.

내레이션 : 이렇게 마을과 조화를 이루는 오타구를 보면서 사업을 이어갈 사람조차 찾기 어려운 문래동의 모습이 마음 속에 겹칩니다. 문래동 작은 공장도 도심 속에서 살아남을 순 없는 걸까요. 바닷가로 끝내 가지 않고 마을 속에서 역할을 찾은 오타구 마을공장처럼 말입니다.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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