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소셜기록제작소
2023 스타트업 열전 9편
엄윤설 에이로봇 대표
반려로봇 에디 개발‧생산
‘돌보고 싶은’ 똑똑한 로봇
로봇과 공존 피할 수 없는 미래
인간과 로봇의 공존 돕는 기업
휴머노이드 시대 여는 게 목표

# 내가 처음으로 산 스마트폰, 어머니가 혼수로 해왔던 냉장고, 아버지의 첫 차. 이런 기계들은 언젠가는 망가진다. 스마트폰은 더이상 켜지지 않고 냉장고는 소음만 내며, 자동차는 도로 한복판에서 시동이 꺼진다. 이런 순간에 스마트폰이나 냉장고, 첫 차의 기억을 갖고 있던 사람들은 그것들을 향해 섣불리 ‘이별’을 고하지 못한다. 어쩔 수 없이 폐기하더라도 그건 ‘이별 아닌 이별’이다. 

# 이처럼 표현도 할 수 없는 기계에 애착을 느끼는 사람은 생각보다 숱하다. 2018년 설립한 로봇콘텐츠기업 에이로봇의 엄윤설 대표는 그 점에서 ‘반려로봇’의 가능성을 봤다. 에이로봇의 ‘에디’는 손도 발도 없는 하얗고 부드러운 털과 눈웃음을 가진 로봇이다. 여태까지 로봇은 위험한 일을 대신하거나 인간보다 일을 빠르게 하는 수준의 ‘도구’에 불과했지만 오히려 인간이 로봇을 ‘반려의 대상’으로도 느낄 수 있다는 거다.

# 단순한 반려만이 아니다. 노동인구가 줄어드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생각하면 로봇과의 공존은 피할 수 없는 과제다. 모든 사람이 갖고 다니는 스마트폰의 자리를 언젠가 ‘로봇’이 대체할지도 모를 일이다.

더스쿠프 소셜기록제작소가 “휴머노이드(Humanoidㆍ인간형 로봇)의 한계를 규정해선 안 된다”고 말하는 엄윤설(46) 대표를 만났다. 2023 스타트업 아홉번째 편이다.

엄윤설 대표는 사람의 돌보고 싶어하는 본능에서 반려로봇의 가능성을 봤다.[사진=천막사진관]

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ㆍDefense Advanced Research Project Agency)은 1969년 인터넷의 모태가 된 아르파넷을 고안했다. 이는 1990년 세계 최초의 검색 엔진이 탄생하는 데 근간이 됐다. DARPA의 실험이 20여년 만에 결실을 맺은 셈이다.

사례 하나를 더 보자. 2005년 DARPA는 무인자동차대회인 그랜드 챌린지를 시작했다. 이날 완주한 차는 없었지만 이 역시 15년 만인 2020년 미국 캘리포니아와 애리조나주에서 시작된 무인 자율주행 시범사업의 발판이 됐다. 

이처럼 DARPA의 도전은 15~20년 후의 세상을 여는 데 ‘밀알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스타트업 에이로봇의 엄윤설 대표가 “2030년이면 휴머노이드(Humanoidㆍ인간형 로봇)가 더 익숙한 세상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DARPA가 2013년 재난구조로봇 대회인 ‘로보틱스 챌린지’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DARPA의 발걸음을 보면, 휴머노이드의 세상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엄 대표의 생각은 ‘공상’이 아니다. 

처음부터 엄 대표가 로봇의 길을 걸었던 건 아니다. 대학 시절(공예 전공) 만난 지금의 남편이 ‘로봇전공’이었다. 대학 졸업 후 남편이 다니던 로봇회사에 디자이너로 취업했는데, 이게 그의 운명을 바꿔놨다. 2018년 스타트업 에이로봇을 창업한 그는 생소하기만 한 ‘반려로봇시장’에 도전장을 던졌다. 

✚ 예술과 로봇은 완전히 다른 분야 같은데요.
“그래도 예술을 전공한 게 도움이 많이 됐어요. 일반적인 연구자와 다른 방향에서 생각할 수 있었으니까요.”

✚ 약간 모호한 대답 같은데요(웃음). 
“그런가요?(웃음) 로봇을 연구하는 학자의 목표는 로봇과 인간의 공존이에요. 둘이 잘 소통할 수 있도록 만드는 거죠. 이걸 휴먼 로봇 인터랙션(Human Robot Interac tion)의 영역이라고 말해요. 쉽게 말해, 로봇과의 정서 교류를 뜻하죠. 그런데 로봇 학자들은 HRI를 위해 ‘어떻게 하면 로봇이 인간의 반응을 잘 확인할 수 있을지’에 관심을 둡니다. 인식마저 기술로 생각하는 셈이죠. 하지만 예술은 반대예요. 예술은 어떻게 하면 자신을 표현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하거든요.”

✚ 그럼 예술이 로봇과 인간의 정서 교류에 도움을 준다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로봇 학자들이 던지는 ‘어떻게 하면 로봇이 인간의 반응을 잘 확인할 수 있을까’란 질문을 예술적 관점으로 바꿔볼까요? 그럼 이렇게 됩니다. ‘로봇이 무슨 행동을 하면 인간이 로봇을 받아들이고 이 로봇을 사랑하게 될까요?’ 이처럼 로봇학자와 예술가의 목적은 같더라도 관점 자체가 완전히 달라요. 로봇이 인간을 관찰하고 그것에 맞게 행동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로봇이 인간의 사랑을 받는 행동을 할지 연구하는 식이죠.”

✚ 말씀을 들어서인지 제 앞에 있는 로봇이 ‘귀여운 동물’처럼 보이네요. 
“이 친구 이름은 에디예요. 벌써 여덟번째 버전을 만들고 있어요. 반려로봇이죠. 지금은 산업부의 과제를 수행 중인데 올해 에디 에잇(8)의 프로토타입이 나올 거예요. 2024년부터는 필드 테스트를 할 거고요. 2년이면 에디 에잇이 완성될 거예요.”

✚ 에디의 첫 탄생이 궁금한데요.
“시작은 공연용 로봇이었어요. 박근혜 정부 시절에 당시 미래창조과학부에서 ‘공연에 투입할 수 있는 로봇’을 만들라는 주제로 R&D 과제를 냈었거든요. 당시에 저는 서울예술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고 남편은 한양대학교 에리카캠퍼스에서 학생들에게 로봇을 가르치고 있었죠.”

8세대 에디.[사진=에이로봇 제공]
8세대 에디.[사진=에이로봇 제공]

✚ 예술대학과 공학대학이 함께 만들어 낸 로봇이 바로 에디군요?
“맞아요. 두 대학이 함께 과제를 따냈어요. 공연에 투입하는 로봇이니까 일단 시나리오가 필요했어요. 주인공은 로봇과 사람이에요. 모험을 떠난 로봇과 사람이 게임을 하나씩 격파하면서 결말에 이르는 거죠. 여기에 맞게 시나리오를 썼고 게임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디자인해 인터랙티브 미디어아트 게임을 만들었어요.”

✚ 인터랙티브라고 하면 관람객들도 함께 참여하는 형태죠?
“네, 맞아요. 관람객은 에디 1대와 함께 공연장에 들어가요. 시나리오에 따라서 게임을 완료하고 로봇을 반납하는 형식으로 진행했어요.”

✚ 공연 콘텐츠로는 좋아 보이는데요. 하지만 어떻게 공연 로봇이 반려로봇으로 바뀐 건가요? 
“로봇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필드 테스트예요. 사람들과 직접 교류하고 테스트를 해봐야 로봇의 기능이나 역할을 확인할 수 있죠. 그래서 에디를 업그레이드할 때마다 과천과학관에서 필드 테스트를 했어요. 테스트로 진행한 공연 시간은 15분가량이었는데, 의미 있는 신호들이 잡혔어요.” 

✚ 뭔가요?
“공연장을 찾은 아이들이 에디와 시나리오대로 게임을 하고 나면 떨어지기 싫어하더라고요.”

✚ 에디를 친근하게 느낀 거군요.
“맞아요. 애착이 생긴 거죠. 거기서 사업성을 봤어요. 반려로봇이 가능하겠다 싶었죠. 그래서 반려로봇 ‘에디’를 만든 거예요.”

이때가 엄 대표가 에이로봇을 창업한 2018년 무렵이다. 로봇에 애착을 느끼는 사람들의 모습 덕분에 사업 아이디어가 생긴 셈이다. 

✚ 에디는 귀여운 인형으로도 보이지만 로봇이잖아요. 반려로봇은 인형과는 다를 것 같은데요.
“반려로봇으로서 에디는 두가지 역할을 해야 해요. 먼저 ‘살아있는 듯한’ 느낌을 줘야 해요. 둘째는 사용자에게 ‘맞춤형’이란 인식을 줘야 하죠. 그러면 애착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 로봇이 인간을 맞춰준다는 의미인가요? 
“조금 달라요. 반려로봇은 인간에게 위로를 줘야 해요. 그건 로봇이 인간을 돌봐주기 때문에 생기는 감정이 아니에요. 그 반대죠.”


✚ 인간이 로봇을 돌본다는 건가요?
“벤저민 프랭클린 효과라는 게 있어요. 프랭클린이 했던 이야기인데요. 사람은 심리적으로 자신을 도와주는 대상보다 자기가 돌봐줘야 하는 대상에 더 큰 애정을 느낀다는 거예요. 반려동물도 사실 그래요. 전 고양이를 키워요. 정말 무한사랑을 보내죠. 고양이가 제 밥을 챙겨줘서 그런 걸까요? 그렇지 않아요. 고양이를 돌봐주는 주체도, 사랑을 주는 주체도 저죠.” 

✚ 반려로봇도 그래야 한다는 거군요? 
“맞습니다.” 

✚ 에디가 귀여운 이유가 있었네요.
“그렇죠. 연약해 보이거나 내가 지켜줘야 하는 존재로 보이도록 하는 거예요. 하지만 여기엔 더 중요한 게 있어요.”

✚ 그게 뭔가요? 
“실제로는 아주 똑똑해야 해요. 겉모습은 귀여워도 스마트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 왜죠?
“로봇이 똑똑해야 애착 형성도 더 쉽습니다. 맞춤형으로 움직이니까요. 실질적으로 주인의 삶에도 도움을 줄 거고요.” 

✚ 에디는 어떤 점에서 똑똑한가요.
“에디는 주인의 표정과 감정을 인식하고 사회적 행동을 구분할 수 있어요. 포옹하거나 혼자 웅크려 있는 행동을 인지한다는 거예요. 더 놀라운 건 특이한 상황을 인지할 수 있다는 점이에요.” 

✚ 어떤 상황인가요.
“위기 상황을 읽는 겁니다.”

✚ 주인이 위험한 상황을 안다는 건가요.
“맞아요. 사람들의 특정한 행동 패턴을 익히면 위기 상황을 인지할 수 있어요.”

휴머노이드 앨리스 3세대. [사진 | 에이로봇 제공]
휴머노이드 앨리스 3세대. [사진 | 에이로봇 제공]

✚ 로봇이 인간의 행동 패턴을 통해 위기 상황을 감지할 수 있다는 건가요? 
“사람들은 저마다 특정한 행동 패턴을 갖고 있고, 이를 잘 바꾸지 않아요. 몸에 익어있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볼까요. 할머니 한분이 에디를 입양했다고 가정해 볼게요. 화장실에 갔는데 항상 빨리 나오던 할머니가 30분 이상 나오지 않는다면 무슨 일이 생긴 거죠. 그러면 반려로봇은 자녀들에게 연락하거나 밖으로 구조요청을 보낼 수 있어요.” 

✚ 로봇이 상황 판단을 종합적으로 할 수 있어야겠네요.
“그렇죠. 로봇이 ‘화장실 위치→할머니 들어감→평균 머무는 시간→이상징후’ 등을 파악하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 그런 상황까지 판단할 수 있는 로봇엔 더 많은 기능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에디에도 그 기능이 있나요? 
“지금은 연구 중이에요. 곧 실현될 겁니다. 조만간 상황판단 기능을 탑재한 에디를 출시할 계획이에요.” 


✚ 그렇게 어마어마한 기능을 갖고 있는 에디는 지금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거의 흡사할 거예요. 지금 바꾸려고 하는 건 얼굴 LCD의 크기예요. 지금은 사각형을 쓰는데 앞으로는 원형을 쓸 거예요. 에디의 얼굴 자체가 커지니까 표정이나 표현도 다양해질 겁니다. 물론 다른 변화도 줄 생각이에요.” 

✚ 어떤 건가요.
“에디는 지금 바퀴만 있어서 굴러다녀요. 하지만 2년 후에 완성할 ‘에디 8’에는 다리를 부착할 계획이에요. 이를테면 ‘이륜 이족 보행’ 로봇이죠. 관절을 이용해서 몸도 펼 수 있도록 만들 생각입니다. 그러면 주인과 함께 춤도 추고, 애교도 부리고, 다가와서 몸도 비빌 수 있을 거예요. 정말 반려견처럼요.” 

✚ 그럼 반려동물시장과 경쟁할 수도 있을 듯합니다. 
“에디는 동물이 아니에요. 동물과 형태도 다르죠. 그런데도 반려견 모양의 로봇이라면 사람들은 그 로봇에게 반려견처럼 행동하길 기대할 거예요. 집에 돌아왔는데 반기지 않는다면 실망할 거고요. 하지만 에디는 고유한 반려로봇이 될 거예요. 에디만의 역할이 생기고 또 에디에 기대할 수 있는 것들이 따로 있을 거고요.”

✚ 반려로봇시장을 타깃으로 삼겠다는 의지의 말로 들립니다. 
“반려로봇시장도 반려동물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추이를 따라갈 것으로 보고 있어요.”

✚ 로봇시장이 반려동물시장처럼 커지는 시기는 언제쯤으로 예상하시나요?
“2028년이요. 늦어도 2030년까지라고 생각해요.”

✚ 상당히 구체적인 연도인데요. 그렇게 생각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미국 국방부 산하에 있는 DARPA의 연구 때문이에요. DARPA은 1970년대에 인터넷의 모태를 개발했고 그 이후에 인터넷이 대중화했죠. DARPA이 2005년 무인자동차 경주대회를 열어젖힌 지 15년 만인 2020년 캘리포니아에서 무인 자율주행차가 시범 운행했죠. DARPA의 도전을 잘 쫓아가보면 15~20년 만에 현실이 됐죠. 그런 DARPA이 2013년에 인간 형태의 로봇인 ‘휴머노이드 대회(로보틱스 챌린지)’를 열었어요. 그러니까 2030년께면 휴머노이드 세상이 열릴 것으로 봅니다.” 

✚ 휴머노이드의 대중화가 가능할까요? 
“시간과 돈을 투입하면 기술은 발전해요. 그걸 가장 잘 알 수 있는 건 대기업의 투자 여부예요. 이미 테슬라와 삼성전자는 휴머노이드에 관심을 두고 있어요.”

✚ 에이로봇도 휴머노이드 연구를 하고 있나요.
“이미 3세대까지 만들었고 4세대를 개발 중이에요. 이름은 앨리스입니다. 내년에 앨리스 4세대를 선보일 거예요.”

✚ 3세대까지 만들었다면 상용화했다는 건가요? 
“네, 휴머노이드 로봇은 실제로 판매하고 있고요. 대학이나 연구기관에서 소프트웨어를 실제로 구동할 수 있는 로봇을 원하거든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면 앨리스에 탑재해서 실제로 작동하는 모습을 확인하는 거죠.”

 

✚ 대학이나 연구기관만으로는 시장이 작을 것 같은데요.
“물류시장은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봐요. 새벽 배송은 사실 사람이 하기엔 너무 힘든 일이잖아요. 하지만 로봇은 밤을 새워도 상관없어요. 에이로봇이 주목하고 있는 건 그쪽 시장입니다.”

✚ 4세대 앨리스가 상용화한다면 그 이상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앞으로 휴머노이드는 산업 현장뿐만 아니라 각 가정에서도 꼭 필요한 존재가 될 겁니다.”

✚ 그렇게 전망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고령화에 접어든 우리나라에선 ‘노인 돌봄’ 문제가 점점 더 커질 거예요. 그렇다고 젊은층을 나이든 사람을 돌보는 일에 투입할 순 없는 일이잖아요. 전 이 문제를 휴머노이드로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 앞으로 로봇이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을 거라고 보시나요.
“영화적 상상력이 한발 먼저 나가면 그걸 보고 과학이 따라와요. 과학이 그렇게 신기술을 만들면 예술가들이 다시 상상의 나래를 펼치죠. 예술과 과학은 두다리처럼 움직입니다. 이는 인간이 상상하는 건 일어날 수 있는 일이란 뜻이에요. 로봇의 성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봅니다.” 

✚ 에이로봇이 꿈꾸는 목표가 궁금하네요. 
“앞서 얘기한 것처럼 인간과 로봇의 공존이에요. 고령화 사회에서 부족해지는 사람을 휴머노이드가 대체하는 미래는 이미 왔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준비해야 할 건 함께 살아가는 겁니다.”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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