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커버스토리 視리즈
포퓰리즘의 덫➍ 민생의 실종
21대 국회 법안 가결률 28.8%
120여일 앞으로 다가온 총선
여야 할 것 없이 포퓰리즘 경쟁
얼어붙은 민생, 보이지 않는 희망
산적한 민생법안 실종선고 내려져

우리는 총선을 200여일 앞둔 지난 9월 21대 국회의 법안 처리 현황을 살펴봤다. 당시 국회에 발의된 법안은 2만3656건(9월 11일 기준)에 달했지만 그중 국회 문턱을 넘은 건 단 28.8%에 불과했다. 국회에서 낮잠만 자는 법안 중엔 민생법안도 숱하게 많았다. 그후 80여일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면 별로 달라진 게 없다.

민생이 어려움에 처했지만 금배지들의 관심은 총선 공천에 쏠리고 있다.[사진=뉴시스]
민생이 어려움에 처했지만 금배지들의 관심은 총선 공천에 쏠리고 있다.[사진=뉴시스]

민생이 얼어붙고 있다. 고금리·고물가에 허덕이는 서민을 더욱 힘들게 하는 건 ‘나아질 거란 희망’마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다. 처리해야 할 민생법안이 숱하게 쌓여 있지만, 정작 금배지들은 지금을 총선 승리를 위한 골든타임으로 여긴다. 그동안 쏟아낸 민생법안의 처리는 제쳐두고, 표심票心을 잡기위한 포퓰리즘 경쟁을 펼치고 있다.

지난 9월 우리는 21대 국회에 발의된 법안의 현주소를 살펴봤다. 총 2만3656건(9월 11일 기준)에 달하는 법안이 발의됐지만, 그중 가결된 건 단 28.8%(6819건)에 불과했다. 금배지들은 그 후에도 1194건의 법안을 쏟아냈지만, 가결률은 여전히 28.8%(7177건·11월 29일 기준)에 머물러 있다. 

우리가 살펴봤던 민생법안들의 현주소는 더욱 참혹하다. 80여일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국회 계류 중이던 민생법안 중 국회를 통과한 건 단 한건도 없었다. 

내년 4월 열리는 22대 총선까지 남은 시간은 120여일. 그사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는 법안들은 21대 국회와 함께 폐기 수순을 밟을 거다. 지금이야말로 민생법안의 골든타임이라는 얘기다. 그럼 금배지들이 “민생”을 외치며 쏟아낸 법안들은 어디쯤 와 있을까. 한가지씩 살펴보자. 

■ 민생법안➊ 가계부채 = 21대 국회의원들이 민생을 위한다며 쏟아낸 대표적인 법안이 ‘가계부채 관리법’이다. 치솟은 금리에 ‘빚의 굴레’에 빠진 서민들이 숱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가계부채 잔액은 687조9724억원(11월 24일 기준)으로 6개월 연속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코로나19 국면을 빚으로 버텨온 자영업자들의 폐업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유예됐던 대출 원리금 상환이 시작됐지만 그사이 치솟은 금리를 감당할 수 없어서다. 3개 이상 대출을 끌어다 쓴 자영업 다중채무자의 연체액은 13조2000억원(올해 2분기 기준)으로 역대 최대치를 갈아치웠다. 

언급했듯 금배지들은 가계부채 부담을 덜어주겠다며 각종 법안을 내놨다. ‘은행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이를 대표하는 법안 중 하나다. 여기엔 ▲생계 위기에 처한 채무자에게 원금·이자상환 유예 요구권 부여, ▲소득 감소 채무자 보호·지원 강화, ▲금융회사에 금리인하요구권 안내 의무 부여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하지만 관련 법안 10건 모두 국회에 계류 중이다. 

파산 위기에 처한 채무자의 재기를 돕기 위한 ‘채무자회생및파산에관한 일부개정법률안’ 역시 발의된 16건 중 단 3건(대안반영폐기 6건)만이 국회 문턱을 넘었다. ▲파산절차 중 채무자의 자산 가압류 등 금지, ▲회생법원 전국 확대 등의 내용이 담긴 개정안 7건은 국회에서 낮잠만 자고 있다. 

21대 국회의 법안 가결률은 현재 28.8%에 머물고 있다.[사진=뉴시스]
21대 국회의 법안 가결률은 현재 28.8%에 머물고 있다.[사진=뉴시스]

■ 민생법안➋ 전세사기 = 지난해 초 ‘전세사기’가 청년층과 서민층을 할퀴었다. 전 재산에 대출까지 끼고 지불한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위기에 처하자 몇몇 피해자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제야 국회가 움직였다. ‘전세사기특별법(전세사기피해자지원및주거안정에관한특별법)’은 지난해 5월 국회 문턱을 넘어 6월 1일부터 시행됐다. 

여기엔 ▲주택 경매 시 피해자에게 경매 유예·정지 및 우선매수권 부여, ▲한국토지주택공사(LH공사)의 피해 주택 매입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이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피해자는 현재까지 9367명(12월 6일 기준)으로 연말이면 1만명을 넘어설 거란 전망이 나온다. 

그럼에도 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피해자들이 적지 않다. 전세사기 피해자 인정 범위가 협소할 뿐만 아니라 피해주택 매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피해자가 실효적 지원을 받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법의 미비점을 국회도 이미 알고 있다. 

지난해 6월 특별법 시행 당시 국회와 정부가 “6개월마다 보완 입법을 하겠다”고 공언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미비한 법을 보완할 개정안 8건은 모두 소관위에 묶여 있다. 

■ 민생법안➌ 채용비리 = 우리나라의 ‘미래’인 청년들이 처한 상황도 녹록지 않다. 무엇보다 취업자 수가 증가하고 있지만, 청년층을 위한 양질의 일자리는 눈에 띄지 않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체 실업자(62만7000명) 중 3분의 1가량을 청년층(15~29세)이 차지하고 있다.


취업문 앞에서 좌절하는 청년층을 두번 울리는 게 바로 채용비리다. 그래서인지 21대 금배지들은 청년들에게 공정한 출발선을 만들어주겠다며 입을 모았다. 21대 국회에 발의된 채용비리 근절 법안(채용절차의공정화에관한법률 일부개정법률안·채용비리처벌에관한특별법안 등)만 60건에 달한다. 

하지만 법안 처리 현황을 살펴보면 금배지들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채용 대가로 금품 요구·약속 금지, ▲채용절차 시 차별적 정보 수집 금지, ▲채용 후 근로조건 변경 금지, ▲채용비리 행위자 처벌 강화 등의 내용을 담은 개정안 60건 모두 소관위 계류중이다. 

■민생법안➍ 일·가정 양립 = 출산율은 민생의 현실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70명(2023년 3분기 기준)으로 OECD 국가 중 최저 수준이다. 그만큼 한국이 아기를 낳아 기르기에 좋은 환경이 아니라는 거다. 

이렇게 젊은층이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여성의 경력단절, 일과 양육 병행의 어려움, 소득 감소 문제, 난임…. 결국 남녀 차별을 없애고, 일과 가정이 양립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야 한다는 거다. 

이런 다층적인 문제를 해결할 법안들도 21대 국회에 숱하게 발의돼 있다. ▲육아휴직 근로자 해고·불이익 금지, ▲육아기 재택근무 확대 및 야간근로 면제, ▲육아휴직·육아기 근로단축 기간 1년 6개월로 연장, ▲난임휴가 현행 연간 3일에서 10~60일로 확대, ▲가족돌봄휴가 유급으로 전환 등의 내용을 담은 ‘남녀고용평등과일·가정양립지원에관한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은 총 187건에 달한다.

하지만 이중 가결된 건 단 3건(대안반영폐기 15건·철회 1건)에 불과하다. 168건에 달하는 개정안이 헛세월을 보내고 있다. 

■ 민생법안➎ 재난안전 = 그렇다면 각종 재난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할 법안들은 어떨까. 21대 국회 임기 동안 숱한 사건사고가 터졌다. 코로나19부터 10·29 이태원 참사, 오송 지하차도 참사까지…. 하루가 멀다 하고 곳곳에서 재난이 터져 나왔다. 안타까운 점은 대부분이 제대로 대비했다면 막을 수 있는 인재人災였다는 점이다. 

수많은 국민이 목숨을 잃어도 제대로 된 조사조차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문제였다. 이런 국민들의 마음을 아는지 금배지들은 너나없이 ‘재난안전 관리법(재난및안전관리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강화하겠다고 나섰다.

제2, 제3의 참사를 막기 위해 ▲주최자 없는 지역 행사도 지자체장이 안전관리계획 수립, ▲일정 규모 이상의 재난 발생 시 반드시 재난원인 조사, ▲지자체장에게 재난선포 권한 부여 등의 내용이 담긴 개정안이 122건이나 쏟아졌다. 하지만 그중 국회 문턱을 넘은 건 3건(대안반영폐기 22건)에 불과했다.  

금배지들이 발의만 하고 관심을 끊은 법안은 이뿐만이 아니다. 노인 빈곤 문제를 해결할 ‘기초연금 확대법’, 서민주거 환경을 개선할 ‘공공임대주택 지원법’, 육아 지원을 위한 ‘아동수당 확대법’ 등이 여전히 국회에서 낮잠만 자고 있다. 민생법안에 실종선고가 내려졌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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