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전쟁과 문학
1편 나치의 혈통관리
「나는 히틀러의 아이였습니다」
우생학 정책 만연했던 나치 독일
인종 분류 작업 노골적으로 진행
끔찍한 레벤스보른 프로젝트 추진
우수 인종 아이 출산 유도하는 계획
레벤스보른으로 태어난 욀하펜
출생의 비밀 알고 회고록 작성
우생학적 논리 언제나 반복돼

언젠가부터 경쟁에서 이긴 자가 모든 걸 독식하는 구조가 자연스러워졌다. 이긴 자들은 그 승리를 공정ㆍ합리ㆍ효율이란 이름으로 포장했다. 어쩌면 이 포장술은 19세기 말 유럽에서 펼쳐졌던 우생학적 논리의 연장선일지 모른다. 이런 사회는 괜찮은 걸까. 새 기획물 ‘전쟁과 문학’ 첫번째 편 ‘나치의 혈통관리로 본 우생학의 위험성’을 펼쳐보자.

좋은 피를 보존해야 한다는 우생학이 스며든 사회는 위험하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좋은 피를 보존해야 한다는 우생학이 스며든 사회는 위험하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19세기 말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의 팽창주의 저변에는 특정 종족이 다른 종족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이 깔려 있었다. 유럽 제국은 이 사고를 ‘과학’으로 포장했다. 우수한 유전자를 보존하고 열등한 유전자를 없애면 인간의 유전형질을 개선할 수 있다는 우생학의 논리는 곧 유럽 사회에 널리 퍼졌다. 서구인들은 자신들이 유전적 피라미드의 상위층에 존재한다고 확신했다. 

나치는 이 믿음을 바탕으로 ‘지배인종’의 숫자를 늘리고 개조하는 작업을 실행에 옮겼다. ‘아리아족 혈통’을 지닌 순수 독일인들에게 자녀를 많이 낳을 것을 권장했고, 피임약과 피임기구의 광고를 중단시켰다. 친위대의 수장 하인리히 힘러(1900~1945년)는 친위대 입단 기준으로 엄격한 신체 조건을 내걸었다. 

그는 친위대 지원자의 신체를 다섯 등급으로 나눴다. ‘순수 북유럽 인종’이 최상위급이었고, 그 아래로 ‘두드러진 북유럽 인종’ ‘디나르 인종이나 지중해 인종의 특성이 첨가된 피부색이 밝은 알프스 인종’ ‘두드러진 동유럽 인종’ ‘비유럽 혈통 잡종’ 순이었다.

그중 상위 세 등급에 속하는 자들만 친위대 입단이 가능했다. 나치에 발탁되기 전에 양계장을 운영했던 힘러는 마치 병아리를 감별하듯이 인간을 분류했다. 나치는 정권을 장악한 1933년 이후 인종 분류 작업을 노골적으로 진행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친위대의 엄격한 선발 요건은 흔들렸다. 전쟁이 격화하면서 힘러가 분류한 ‘최상위급 인종’, 이를테면 북유럽 계통의 순수 독일 청년들이 매주 수천명씩 사망했고, 독일군은 병력 부족에 시달렸다. 

승자독식사회는 언제나 부작용을 노출한다. 사진은 11월 열린 2028 대학입시제도 개편 시안 공청회.[사진=뉴시스]
승자독식사회는 언제나 부작용을 노출한다. 사진은 11월 열린 2028 대학입시제도 개편 시안 공청회.[사진=뉴시스]

그러자 힘러는 ‘레벤스보른(Lebensbornㆍ생명의 샘)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인종적 우월성을 검증받은 여성들을 선발해 아이를 낳게 하고 국가가 양육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또한 친위대는 나치가 점령한 북유럽과 동유럽에서 부모를 잃은 어린이들을 ‘수집’했다. 아이들의 두상, 콧날, 피부색을 측정해 ‘미래의 지배인종’으로 성장할 만한 아이들을 골라냈다. 

노르웨이, 유고슬라비아, 폴란드, 오스트리아, 체코 등 유럽 각지에서 ‘수집’한 아이들은 친위대가 지정한 독일 가정에 맡겨졌다. 아이들의 모국어 사용을 금지해 모국과의 연결고리를 끊고, 위탁 부모들에게는 독일의 군인 집안에서 태어난 고아라고 속였다. ‘레벤스보른 프로젝트’에 참가한 친위대 수석 군의관 그레고르 에브너는 이 프로젝트로 친위대가 30년 후 ‘600개 연대 병력’을 얻을 수 있다고 예측했다. 

‘레벤스보른 프로젝트’의 끔찍한 발상은 훗날 캐나다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의 걸작 「시녀 이야기(1985년)」의 모티브가 됐다. 이 소설은 출산 능력을 기준으로 여성의 등급을 나누고 권력 서열에 따라 남성에게 배급하는 가상의 세계 ‘길리어드’의 모습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길리어드는 여성이 불임으로 판정받거나 저항의 조짐을 조금만 보여도 사형을 집행하거나 ‘콜로니’로 불리는 수용소로 보낸다. 혼자 있을 때도 모든 것을 감시하고, 자살은 금지한다. 당연히 연민이나 사랑 같은 감정도 철저하게 부정한다. 

그러나 길리어드에도 서서히 균열이 생긴다. 그 철저한 감시 체제 아래서도 사람들은 호기심을 갖고, 사랑에 눈뜬다. 어떤 권력도 인간의 호기심과 사랑을 완벽히 제어하지 못한다. 

인간은 타인을 차별해 자신의 불안을 덜고 우월감을 확인하려는 습성을 지녔다. 나치는 그런 인간의 나약함을 정확하게 포착했다. ‘좋은 피’를 보존하고, ‘나쁜 피’를 제거한다는 우생학적 발상은 나치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우리는 경쟁에서 이긴 자가 이윤을 독식하는 구조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여긴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우월감과 소속감을 확인하며 안도감을 느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레벤스보른 프로젝트’로 출생한 여성 잉그리트 폰 욀하펜(1941년~)은 회고록 「나는 히틀러의 아이였습니다(2021년)」에서 증언한다. 

“그토록 엄격하게 선발된 ‘레벤스보른의 아이들’은 결코 타인보다 우월하지 않았다. 그들은 남들과 똑같이 병을 앓았고, 사랑을 갈구하는 평범한 아이들이었다.” 

유고슬라비아에서 태어난 욀하펜은 2살 때 독일로 왔다. 독일인 양부모는 별거하면서 그녀를 보육원에 맡겼다. 그리움에 편지를 써도 어머니는 답장하지 않았다. 보육원에서 나와 다시 아버지와 만났지만 아버지마저 곧 사망했다. 

욀하펜은 우연히 어머니의 일기를 읽고 나서야 자신이 독일인이 아니라는 걸 알아차렸다. 욀하펜은 이후 레벤스보른 프로젝트를 연구하던 역사학자 게오르크 릴리엔탈의 도움으로 정부에 ‘레벤스보른 프로젝트를 조사해 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서독 정부는 나치 시절의 치욕스러운 과거를 조사하길 원하지 않았다. 욀하펜은 포기하지 않았다. 20년간 자료를 모으면서 욀하펜은 자신과 같은 사람들을 계속 만났다.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그대로 독일인으로 살 순 없었다. 결국 욀하펜은 60년 만에 자신의 진짜 친척을 만날 수 있었다. 욀하펜의 진짜 이름은 ‘에리카 마트코’였다. 

이처럼 혈통은 인간의 가치를 증명하지 못한다. 공정, 합리, 효율, 경쟁으로 포장된 우생학의 논리에 인간의 사유가 마비될 때 레벤스보른의 비극은 언제든지 반복될 수 있다. 

이정현 평론가  |  더스쿠프 
21cbac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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