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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정부 내년 규제 완화에 초점
규제 완화→총요소생산성→
잠재성장률 선순환 이어질까
규제 완화 독으로 작용할 수도

내년 우리나라 경제의 핵심은 규제 완화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모든 규제 완화가 경제성장에 도움을 주는 건 아니다. 우리가 규제 완화를 꾀할 때 주의해야 할 것들을 아일랜드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패착을 통해 살펴봤다. 

아일랜드 은행인 뱅크오브아일랜드는 2021년 지점 100여곳을 폐쇄했다. 더블린 뱅크오브아일랜드 본점 모습. [사진=뉴시스]
아일랜드 은행인 뱅크오브아일랜드는 2021년 지점 100여곳을 폐쇄했다. 더블린 뱅크오브아일랜드 본점 모습. [사진=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은 26일 올해 마지막 국무회의에서 “(교육·연금·노동개혁은) 우리나라의 성장잠재력을 높이기 위해 끝까지 흔들림 없이 추진해야 하는 과제”라고 말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도 지명 직후인 지난 5일 기자간담회에서 “역동 경제는 윤석열 정부의 정책 기조를 한마디로 표현한 것”이라며 “이를 위해서 규제 완화, 과학기술과 첨단산업 육성, 교육 개혁 등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내년 우리 정부의 경제정책 중심에는 규제 혁신 혹은 규제 완화가 자리잡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에 경고등이 켜졌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 6월 2000년대 초·중반 4~5%에 달했던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이 2023년 1.9%, 2024년 1.7%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잠재성장률은 한 나라가 인플레이션을 유발하지 않고 달성해낼 수 있는 최대 수준의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을 말한다. 

기업 규제를 완화한다고 당장 성장률이 올라가지는 않는다. 정부가 교육·연금·노동의 이른바 3대 개혁을 강조하고, 기업들의 규제 완화를 통해서 자극하고 싶은 것은 총요소생산성(total factor productivity)이다. 총요소생산성은 노동, 인적자본, 물적자본 이외에도 제도개선, 기술발전, 인적자본 수준, 기업 지배구조 등 보이지 않는 생산성 증대 요인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경제가 어느 정도 발전한 나라는 총요소생산성을 높이는 정책에 집중하기 마련이다. OECD도 2022년 11월 이 총요소생산성을 구성하는 지표로 혁신성, 인적자본, 규제환경, 사회적자본, 경제자유도를 꼽았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 11월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이 2% 초반에 머물 것이라며 “다시 성장하려면 구조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한 것도 총요소생산성을 염두에 둔 조언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26일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26일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자료 | OECD 경제전망]
[자료 | OECD 경제전망]

한국은행은 2008년 ‘규제 완화가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보고서에서 “규제 완화는 경쟁을 활성화하고, 기업의 혁신 노력을 촉진해 경제의 생산성(총요소생산성)과 성장잠재력(잠재성장률)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2008년 현재 기준으로 우리나라 규제를 OECD에서 가장 기업 규제가 적은 7개 나라(미국·영국·호주·뉴질랜드·덴마크·아이슬란드·아일랜드) 수준으로 낮추면 1인당 GDP가 연간 2.6%포인트 증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한국은행 보고서의 이런 논리는 발표 후 1년도 지나지 않아서 붕괴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가장 피해를 본 나라가 규제 최저 7개국 중 하나인 아일랜드였기 때문이다. 최저 규제 국가 중 하나인 아이슬란드도 IMF 구제금융을 받았고, 덴마크의 GDP는 2008년 대비 5.5% 감소한 상태에서 늘어나지 않고 있다. 

■ 규제완화 주의점➊ 바닥으로의 경쟁=아일랜드는 2008년 재정위기로 부동산 거품이 붕괴하고, 은행들이 잇달아 파산한 결과 2010년 IMF로부터 850억 유로 규모의 구제금융을 받는 처지에 내몰렸다. 

아일랜드 경제가 1990년대 호황을 이룬 것은 규제 완화, 자본시장 개방, 인적자원 등 총요소생산성 제고책에 있었다. 아일랜드는 특히 세금 인하라는 영역에서 인접국들을 압도하고 해외 투자를 유치했다.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세계에서 가장 낮은 법인세율은 영국의 35.0%, 미국의 38.7%였다. 유럽을 포함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법인세율은 40%를 초과했다. 

아일랜드는 법인세율을 1998년 32.0%에서 2003년 12.5%로 극적으로 낮추며 이 경쟁에서 승리했다. 그 결과 아일랜드는 2007년까지 연평균 6.5%씩 성장했지만, 여기서 발생한 부동산 거품과 각종 규제완화책이 결국 부메랑으로 되돌아왔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해외 자본이 이 나라를 다시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아일랜드가 서유럽 국가들과 벌인 법인세 인하와 외국인직접투자 유치라는 출혈경쟁을 경제 용어로는 ‘바닥으로의 경쟁(race to bottom)’이라고 한다. 실제로 이 출혈경쟁에서 승리한 아일랜드는 바닥을 뚫고 지하실로 들어갔다. 아일랜드는 2010년 IMF 구제금융 3년 동안 공무원 수를 10% 이상 줄였고, 강도 높은 긴축 재정으로 전체 인구의 5%인 250만명이 일자리를 찾아 해외로 나가야 했다. 

■ 규제완화 주의점➋ 경쟁에 좋은 규제 선별=정부가 밝혔듯 규제 완화를 하는 이유는 기업들의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어떤 종류의 규제는 오히려 경쟁을 저해한다. 시카고 경영대학원이 발행하는 ‘시카고 부스 리뷰’는 지난 2019년 ‘모든 규제 완화가 반드시 좋은 것이 아닌 이유’라는 기사에서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금융위기 재발을 위해 제정한 도드-프랭크법을 1호 규제철폐 대상으로 콕 집은 것을 비난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토드-프랭크법을 1호 규제철폐 법안으로 지정한 바 있다. [사진=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토드-프랭크법을 1호 규제철폐 법안으로 지정한 바 있다. [사진=뉴시스]

이 법의 의도는 원래 이름인 ‘도드-프랭크 월스트리트 개혁 소비자 보호법(Dodd-Frank Wall Street Reform and Consumer Protection Act)’에  잘 나와있다. 핵심은 금융위기가 재발하면 그 책임을 월가 은행들이 지도록 하는 것이다. 투자은행들이 자기자본으로 파생상품과 같은 고위험 자산에 투자하는 일을 금지한 이 법의 제619조를 ‘볼커 룰’이라고 한다. 

미국에서 올 초 실리콘밸리뱅크 등 은행 연쇄 파산이 발생한 이유는 도드-프랭크법에 있었던 금융감독 기준을 낮췄기 때문이다. 자산 500억 달러 이상이었던 은행 감독 기준을 자산 2500억 달러 이상으로 완화하면서 실리콘밸리은행(SVB) 등 작은 은행들이 이 규제에서 벗어났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추진하는 ‘플랫폼 공정경쟁촉진법(가칭)’이 윤석열 대통령의 강력한 추진 의지에도 여전히 온갖 이익단체들의 반대론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플랫폼법의 좌초는 도드-프랭크법의 철폐와 비슷한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ayhan0903@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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