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커버스토리 視리즈
넷플 참여 보고서 명암➊
콘텐츠 시청시간 공개한 넷플릭스
엄격한 비밀주의 깬 첫번째 사례
보고서에서 입증된 K-콘텐츠 저력
더글로리 세계 시청 순위 3위 기록
K-콘텐츠 시청시간 8.2% 점유해
그중 스튜디오드래곤 활약 빛나
한국 콘텐츠 몸값 높아질 가능성 ↑
당장 제작사 실적엔 도움되겠지만
넷플릭스 쏠림 가속화 우려스러워

한국 콘텐츠 산업이 두 갈래 길에 놓여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한국 콘텐츠 산업이 두 갈래 길에 놓여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 넷플릭스의 ‘비밀주의’는 깰 수 없는 관례였다. 넷플릭스는 국가별 유료 가입자는커녕 어떤 작품을 누가 얼마나 봤는지도 공개하지 않았다. 심지어 작품을 만든 제작사도 데이터에 접근하는 게 쉽지 않았다. 넷플릭스 입장에선 데이터를 경쟁사에 제공하는 게 ‘독’이 될 수 있다는 전략적 판단이었겠지만, 콘텐츠 제작 생태계 입장에선 답답한 점도 있었다. 내가 만든 작품인데, 얼마나 흥행했는지도 모른다는 건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 이랬던 넷플릭스가 지난해 12월 13일 콘텐츠 시청 데이터를 리포트로 만들어 배포했다. 이 회사가 비밀주의를 스스로 깨버린 건 ‘할리우드 파업’ 때문이었다. 제작업계의 불만이 갈수록 커지자 회사는 백기를 들었다. 테드 사란도스 넷플릭스 공동 CEO는 “그간 회사는 비공개로 유지해 경쟁사에 제공하지 않고 실험을 해왔다”면서 “하지만 콘텐츠 흥행을 둘러싼 투명성 문제 때문에 제작 생태계로부터 불신을 받은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 넷플릭스가 공개한 데이터엔 흥미로운 지표가 많았다. 말로만 듣던 ‘K-콘텐츠의 저력’도 데이터로 확인됐다. 납품한 콘텐츠 수가 많지 않은데도 글로벌 넷플릭스 고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제작 역량을 수치로 증명한 한국의 콘텐츠 제작사는 넷플릭스와 협상 테이블을 차릴 때, 더 유리한 조건을 내세울 수 있게 됐다.

# 다만 ‘더 높은 몸값’이 한국 콘텐츠 생태계의 발전을 담보하는 건 아니다. 넷플릭스가 K-콘텐츠에 더 많이 투자할수록, 나머지 OTT의 입지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미 한국 콘텐츠 생태계는 ‘넷플릭스 쏠림 현상’으로 얼룩져 있다. 비밀주의를 털어낸 넷플릭스의 행보, 과연 긍정적인 효과만 있을까. 더스쿠프가 답을 찾아봤다. 視리즈 ‘넷플릭스 데이터 공개의 빛과 그림자 1편’을 열어보자. 

넷플릭스가 한국 콘텐츠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력은 크다.[사진=연합뉴스]
넷플릭스가 한국 콘텐츠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력은 크다.[사진=연합뉴스]

넷플릭스가 특유의 ‘비밀주의’를 벗었다. 2023년 12월 13일 이 회사가 공개한 리포트 ‘우리가 본 것: 넷플릭스 참여 보고서(What We Watched: A Netflix Engagement Report)’엔 콘텐츠별 시청시간(2023년 상반기)이 담겼다. 넷플릭스가 친절한 콘텐츠 데이터를 공개한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만큼 넷플릭스의 비밀주의는 고집스럽기로 유명했다. 국가별 유료 구독자 추이 같은 핵심 경영 지표는 언제나 ‘깜깜이’였다. 콘텐츠의 정확한 흥행 수치도 당연히 비공개였다. 매주 인기 상위에 오른 콘텐츠를 추려 발표하는 게 전부였다. 

이랬던 넷플릭스가 비밀주의를 벗은 배경에는 ‘할리우드 파업’이 있다. 지난해 5월 할리우드 작가들이 펜을 내려놨고, 7월엔 배우들도 가담했다. 이들이 파업을 벌인 이유는 글로벌 OTT 시대에 걸맞은 보상을 요구하기 위해서였다.  

가령, OTT 플랫폼의 자체 제작 콘텐츠는 작품이 크게 흥행하더라도 구성원은 추가 소득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OTT가 사전 투자를 통해 제작비를 지급하는 대신 제작사는 추가 인센티브를 둘러싼 권리가 없거나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할리우드의 노동자들은 이게 불합리하다고 꼬집었다. 

무엇보다 성과를 제대로 공유하려면 콘텐츠가 얼마나 흥행했는지도 알아야 했다. 그런데 앞서 언급했듯, 넷플릭스는 흥행 지표를 제작진에게도 공유하지 않는 회사였다. 할리우드의 노동자는 성과 공유의 근거조차 확인하기 어려웠다. 할리우드 파업엔 넷플릭스의 비밀주의가 타깃이 됐고, 결국 넷플릭스는 향후 6개월마다 전체 시청 데이터를 공개하기로 했다. 

데이터 공개를 요구한 건 할리우드 노동자였지만, 뜻밖에도 한국 콘텐츠 산업이 들썩였다. 넷플릭스와 한국 콘텐츠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넷플릭스는 아시아 콘텐츠 시장 공략을 위한 전진기지로 한국을 삼고 적지 않은 공을 들여왔다. 

넷플릭스는 2017년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에 578억원을 투자하며 한국 콘텐츠 시장의 문을 두드렸다. 이후로도 한국인 감독과 작가가 쓰고 한국인 배우가 나오는 작품을 여러 차례 ‘독점작’으로 내놨다. 진출 초기만 해도 ‘찻잔 속 태풍’으로 사라질 거란 평가를 받았던 넷플릭스는 이를 발판으로 수년째 국내 1위 OTT 플랫폼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K-콘텐츠는 넷플릭스가 전 세계에서 인기를 끄는 효자 노릇도 톡톡히 해냈다. 예컨대, 넷플릭스가 2021년에 공개한 ‘오징어게임’은 전 세계를 휩쓸었다. 출시 열흘도 되지 않아 TV 프로그램 시청률 부문에서 세계 1위를 기록했고, 넷플릭스 회사의 주가도 크게 끌어올렸다. 한국 최초, 아시아권 최초로 에미상 수상자에 이름을 올리며 역사적 사건을 만들기도 했다. 

그런데도 넷플릭스와 ‘오징어게임’은 그해 국정감사에서 도마에 올랐다. 넷플릭스는 ‘오징어게임’의 지식재산권(IP) 권리를 온전히 갖는 대신 제작사에 ‘제작비+알파’를 지급했다. 결과적으로 흥행에 따른 추가 수익을 넷플릭스가 독식하는 구조였는데, 이게 논란의 불씨가 됐다. 어떤 국가에서 얼마나 이 드라마를 봤는지도 여전히 ‘깜깜이’였던 탓에 씁쓸한 뒷맛을 남긴 흥행이었다. 

■ 전진기지 : K-콘텐츠 = 그렇다면 베일에 싸인 ‘넷플릭스 속 K-콘텐츠의 위상’은 어땠을까. 넷플릭스가 12월 13일 발간한 첫 보고서엔 1만8214개의 콘텐츠와 콘텐츠별 시청시간이 담겼다. 한국 제작사가 만든 콘텐츠는 1072개였다. 비율로 따지면 5.9%로, 큰 비중은 아니었다. 하지만 시청시간으로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2023년 상반기, 넷플릭스 고객들은 이 플랫폼에서 영상을 보기 위해 무려 934억5520만 시간을 소비했다. 한국 콘텐츠를 보는 데는 76억2540만 시간을 썼다. 비중으로 따지면 8.2%였다. 작품 수 대비 시청시간이 많다는 건 그만큼 K-콘텐츠가 인기를 끌었다는 방증이다. 

지난해 상반기 넷플릭스에서 가장 히트한 K-콘텐츠는 ‘더글로리 시즌1’이었다. 글로벌 넷플릭스 고객은 이 드라마를 보기 위해 6억2280만 시간을 들였다. 이 기간 전 세계에서 세번째로 많이 본 콘텐츠로 랭크됐다. 

이밖에도 ‘피지컬100(15위ㆍ2억3500만 시간)’ ‘일타스캔들(16위ㆍ2억3480만 시간)’ ‘닥터차정숙(25위ㆍ1억9470만 시간)’ 등이 글로벌 시청시간 기준 상위권에 오르면서 넷플릭스의 호실적을 이끌었다.

■ K-콘텐츠의 호재와 악재 = 넷플릭스의 데이터 공개는 여러모로 의미가 깊다. 무엇보다 한국의 콘텐츠 제작사가 제작 역량을 증명하면서 향후 투자를 받을 때 좀 더 유리한 조건을 획득할 기반이 생겼다. 

최용현 KB증권 애널리스트는 “그간 국내 콘텐츠는 글로벌에서 높은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었는데도 그 영향력을 데이터 기반으로 주장하기 어려웠다”면서 “이번 넷플릭스 데이터 공개를 통해 국내 제작사는 콘텐츠의 영향력을 데이터화하는 게 가능해졌고, 콘텐츠가 플랫폼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콘텐츠 데이터를 콘텐츠 가치 인상의 근거로 이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근거를 내세우기 좋은 회사가 바로 ‘K-드라마 명가’로 꼽히는 스튜디오드래곤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상반기 넷플릭스에 무려 98개의 콘텐츠를 공급했다. 한국 콘텐츠 제작사 중에선 가장 많은 작품 수다. 

넷플릭스가 할리우드 파업 여파로 시청시간 데이터를 공개하기로 했다.[사진=연합뉴스]
넷플릭스가 할리우드 파업 여파로 시청시간 데이터를 공개하기로 했다.[사진=연합뉴스]

전 세계 넷플릭스 가입자는 스튜디오드래곤이 만든 드라마를 보는 데 27억3710만 시간을 썼고, 전체 시청시간 대비 비중은 2.9%에 달했다. 상위권에 랭크된 ‘더글로리 시즌1(3위)’과 ‘일타스캔들(16위)’뿐만 아니라 ‘환혼: 파트1(41위)’ ‘철인왕후(45위)’ ‘환혼: 파트2(47위)’ ‘사랑의 불시착(73위)’ 등이 호평을 받았다.

100위권 내 포진한 한국 콘텐츠는 총 15개였는데 이중 6개가 스튜디오드래곤이 제작한 작품이었다. 넷플릭스 고객의 시간을 점령할 만큼 남다른 제작 경쟁력을 증명한 스튜디오드래곤 입장에선 차기 콘텐츠 계약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개연성이 높다. 

이렇듯 넷플릭스의 데이터 공개로 한국 제작사는 의도치 않게 ‘부산물’을 얻었다.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더 우수한 협상력을 갖췄다는 거다. 데이터를 근거로 K-콘텐츠는 더 높은 몸값을 받고, 넷플릭스는 K-콘텐츠 산업에 투자 비용을 늘리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질 가능성도 충분하다. 

다만, 이런 현상이 전체 콘텐츠 생태계에 이로운 일인지는 따져볼 문제다. 우리나라가 넷플릭스의 ‘하청기지’로 전락할 것이란 우려가 남아 있어서다. 이 이야기는 視리즈 ‘넷플릭스 데이터 공개 빛과 그림자’ 두번째 편에서 자세히 살펴보자.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