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커버스토리
視리즈 : ESG와 기업가 정신
더스쿠프-가톨릭대 공동기획
제1막 건설 변하지 않는 이유➊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도 
노동자 안전사고 줄지 않아 
이익 매몰된 건설사의 패착

# 무더운 여름날, 건설 현장의 노동자들은 폭염에도 제대로 된 노동 환경을 보장받지 못해 늘 생명의 위협에 시달린다. 여름만이 아니다. 겨울 현장에서도 건설 노동자의 안전이 ‘사각지대’에 놓일 때가 빈번하다. 

# 왜일까.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등 법적ㆍ제도적 안전장치를 마련했는데도, 건설현장이 ‘위험한 곳’이란 꼬리표를 떼지 못한 까닭은 뭘까. 더스쿠프가 가톨릭대와 함께 기획한 클래스 ‘ESG와 새로운 기업가 정신’을 통해 이 질문의 답을 찾아봤다. 視리즈 ‘위험한 산업’ 건설이 변하지 않는 이유 첫번째 편이다. 

더스쿠프 취재진은 2023년 2학기 가톨릭대에서 진행한 클래스 ‘ESG와 새로운 기업가 정신(김승균 교수)’의 멘토로 참여해 ESG(환경ㆍ사회ㆍ지배구조) 경영의 현주소를 들여다봤다. 제1막 「위험한 산업: 건설이 변하지 않는 이유」 편에선 최아름 기자와 유지원ㆍ이채원ㆍ권기경 학생이 머리를 맞댔다. 

제2막 「소비자 권리와 기업의 책임: 원동력일까 재앙일까」 편에는 이혁기 기자가 멘토로 참여해 하송민ㆍ박서경ㆍ김지호 학생과 협업했다. 제3막 「기업의 탐욕, 그린워싱의 세계」 편은 이지원 기자와 박채윤ㆍ주민경 학생이 컬래버레이션했다. 

여전히 산업 현장의 사고 대부분은 건설 현장에서 발생한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여전히 산업 현장의 사고 대부분은 건설 현장에서 발생한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 섭씨 30도에 육박했던 2023년 8월 11일 부산 연제구의 한 아파트 재개발 건설 현장에서 20대 하청 노동자 청년이 작열하는 태양 아래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고 있었다. 20m 높이의 아파트 6층에서, 제대로 된 휴식과 안전장비 없이 창호 교체 작업을 진행하던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창호와 함께 1층 바닥으로 추락해 목숨을 잃었다.

# 건설 현장에는 안전관리자도, 안전벨트를 걸 고리나 안전망도 없었다. 노동자의 안전과 생명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기업의 무관심 속에서 20대 청년 노동자는 그렇게 안타까운 죽음을 맞아야만 했다. (보도 종합 후 재구성)


건설현장의 사건ㆍ사고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2023년 8월 11일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하청노동자는 ‘더위’가 아니라 ‘안전’ 때문에 죽었다. 더위만 문제인 것도 아니란 거다. 건설 노동자들이 마주하는 건설 현장의 매일은 늘 위태롭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 발생현황’에 따르면 2023년 3분기(누적) 기준 산업재해 사망자는 459명이었고 그중 건설업에서 발생한 사망자는 240명이었다. 전체 사망자의 절반 이상이 건설업에서 발생한 셈이다. 

특히, 건설 노동자들의 사망사고 요인을 분석하면 절반 이상이 추락사인 것으로 드러났다. 건설 노동자들이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고리 하나에 의존해 발판없이 작업하는 것은 일상이 됐다. 심지어 고층 건설 현장에서도 안전 장비 없이 맨몸으로 작업한다. 

물론 이들을 보호할 법적 근거가 만들어지지 않은 건 아니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관한 규칙’ 42조(추락의 방지)에 따르면, 사업주는 ‘근로자가 추락할 위험이 있는 장소 등에서 작업을 할 때 작업 발판을 설치해야 한다. 발판을 만드는 게 어렵다면 ‘추락 방호망 설치 또는 안전대를 착용하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중소기업ㆍ대기업 건설현장 가릴 것 없이 법과 규칙을 완벽히 지키는 건설사는 현실적으로 손에 꼽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경영난으로 흔들리는 건설사가 이윤 극대화를 위해 공사에 투입하는 시간과 자원을 최대한 아끼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럼 건설사는 왜 ‘이윤과 안전’을 맞바꾸고 있는 걸까. 이 질문을 단계별로 풀어보자. 

■ 건설업계 자화상 = 건설업계는 최근 자금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2023년 10월 기준 수주액은 2022년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다소 늘었지만 건설 시장이 회복세에 접어들었다고 보긴 어렵다.

이를 확인할 수 있는 가장 명확한 지표는 착공 규모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21년 11월 착공 면적은 1155만3841㎡였다. 1년 만인 2022년 11월엔 24.6% 줄어든 870만9537㎡를 기록했고 2023년 11월 착공면적은 927만3830㎡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는 늘었지만 2021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 

공사비 부담도 여전하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 발표하는 2023년 10월 건설공사비지수(2015년 1월 기준 100)는 153.58포인트로 전년 동기보다 4.92포인트 상승했다. 공사비 부담이 꾸준히 커지고 있단 거다.

이런 경우 공사비를 증액해야 하는데 발주처와 협의가 잘 되지 않는다면 원가 상승 부담을 그대로 떠안아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건설사가 생존을 위해 선택한 방법은 인건비를 최소화하는 ‘하도급’이다. 

■ 건설업계 고질병 = 건설사는 크게 두가지 방식으로 돈을 번다. 직접 땅을 사들이고 건물을 올려 분양할 수도 있고 건물을 원하는 ‘땅주인’이나 ‘부동산 사업자’에게 공사를 수주하는 방식도 있다. 이럴 때 ‘땅주인’이나 ‘부동산 사업자’로부터 공사를 수주한 건설사(원청)는 모든 공사를 혼자 하지 않는다. 시공에 필요한 작은 공사들이 워낙 많아서다.

원청은 전기ㆍ배관 공사, 실내 인테리어 등을 전문 건설사에 맡긴다. 이것이 바로 하도급 구조다. 하도급 구조는 악어와 악어새 같은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원청은 공사를 최저가격에 할 수 있는 하도급 업체를 선발한다. 하도급 업체는 담당 공사를 정해진 금액 안에서 어떻게든 해내야 한다. 

그러다보니 비용을 줄여야 하고, 그 과정에서 ‘비생산적 비용처’로 여겨지는 안전 관리는 뒷전으로 밀려난다. 원청업체와 하도급 업체의 안전관리 범위가 모호하다는 점도 문제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은 “건설현장의 전반적인 안전역량을 향상하기 위해 원청업체의 재정적ㆍ관리적 지원이 필수적이지만 매우 미흡한 실정”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하도급 자체가 불법은 아니다. 문제는 불법 하도급이다. 불법 하도급이란 건설업 등록을 하지 않은 자에게 하도급을 주거나, 도급받은 건설 공사의 대부분을 또다시 하도급하는 행위를 말한다.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실행위원인 소현민 변호사는 “공공기관에서는 불법 하도급을 규제할 수 있는데도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며 “미국 같은 곳에서는 하도급을 할 경우 발주자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정작 우리나라에선 발주자가 하도급 문화를 바꾸려는 의지가 없다”고 지적했다.

소 변호사는 이어 “건설산업기본법에서도 불법 하도급을 정의하고 이를 막으려 하고 있지만 국토부가 적발해도 영업 정지 처분은 지자체의 권한이기 때문에 규제 효용성이 떨어진다”고 꼬집었다. 

■ 시대적 변화와 퇴행 = ‘원청-하도급’이란 관행이 지배하던 건설업계에도 최근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다. 건설현장의 꼭짓점인 원청도 더 이상 안전관리 이슈를 두고 볼 수만은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2022년 1월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데다, ESG 공시의무도 조금씩 확산하고 있어서다. 

이런 변화에 발맞춰 원청 건설사들도 ‘노동자의 안전 문제를 철저히 관리하겠다’면서 건설현장 안전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변화에도 안전과 관련된 사건ㆍ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2022년과 2023년 연달아 대형 사고가 터진 DL이앤씨(E&C)가 대표적이다.

DL이앤씨 현장에선 2022년에만 5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단순한 재해災害가 아닌 인재人災 성격이 짙었다. 고용노동부가 2022년 DL이앤씨의 시공 현장 67곳을 감독한 결과에 따르면, 97%에 해당하는 65개 현장에서 위반 사항 459건이 적발됐다. 그중 158건은 사망사고로 이어질 만한 ‘안전 조치 위반 사항’이었다. 

그러자 마창민 DL이앤씨 대표는 2022년 국정감사에서 “안전 대책을 강화해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DL이앤씨는 이듬해인 2023년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하고 산업안전을 준수하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다졌다. 

하지만 그 약속은 또다시 한낱 공염불에 그쳤다. 2023년에도 3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건 2022ㆍ2023년 DL이앤씨 현장에서 사망한 노동자가 모두 하도급 업체 소속이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건설사의 미흡한 안전관리 문제는 DL이앤씨만의 문제일까. 그렇지 않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근로복지공단에서 받은 ‘최근 5년 10대 건설사(2022년 시공능력 순위 기준) 산재 현황’에 따르면, 2022년 중대재해처벌법을 시행했는데도 사고재해자는 되레 늘어났다. 

2018~2022년 주요 건설사의 산재 현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이 기간 재해자는 GS건설이 1609명으로 가장 많았고, 대우건설(1347명), 현대건설(732명)이 뒤를 이었다. 사망자 수는 2020년 이후에 더 늘어났다. 현대건설(23명), 대우건설(20명), 포스코이앤씨(17명ㆍ옛 포스코건설) 순으로 사망자가 많았다. 그중 현대건설ㆍ대우건설 현장에서 2021년에 사망한 노동자는 모두 하도급 소속이었다. 

이같은 현황은 대부분 건설사가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발간하면서 외쳤던 “작업장에 있는 모든 현장 직원을 위한 안전 경영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겠다”는 약속의 진위를 의심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건설사는 지금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우리가 참조할 만한 글로벌 기업의 사례는 없을까. 이 논의는 視리즈 ‘위험한 산업: 건설이 변하지 않는 까닭’ 두번째 편에서 진행해 보자.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권기경 가톨릭대 학생 
0610k3@daum.net

유지원 가톨릭대 학생 
yoojiwon8965@gmail.com

이채원 가톨릭대 학생
lee453007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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