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우 랩장의 1인칭 책읽기
김시덕 작가의 「철거되는 기억」
공간은 사라져도 남는 기억
클라이맥스 숨어 있는 이 공간

건물은 사라져도 사람의 기억 속에서는 철거되지 않는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건물은 사라져도 사람의 기억 속에서는 철거되지 않는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광주문학관에서 작은 발표를 연다고 해서 광주광역시에 방문했다. 광주에서 업무를 볼 때는 일종의 루틴이 있다. 오전에 KTX를 타고 점심시간에 송정역에서 내려 바로 앞에 있는 영명국밥집에 들르는 것이다. 항상 그러했듯 살코기 국밥을 시켰다. 그리고 깨달았다. 광주문학관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는 걸. 광주문학관이 지난 6월 개관했기 때문이었다.

광주문학관 앞에 섰다. 넓은 부지와 큰 건물 앞에 서자, 어째서인지 이곳에 와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광주 각화동에 있는 광주문학관 자리는 과거 시화마을이 있던 공간이다. 문학관 뒤 벽화들을 보고서야 시화마을이었던 시절 이곳을 몇번 찾았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

대학 시절의 난 필름 카메라로 이곳을 기록하기 위해 왔었고, 친구들과 함께 놀러 오기도 했다. 그곳에 낯설고 거대한 171억원짜리 건물이 생겼다. 문학을 위한 공간이라고 했지만 나에게 이곳은 아직도 시화마을로 들 어가는 골목일 뿐이었다. 공간은 변해도 자신에게는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박관서 시인을 만나 “여기 옛날에 컨테이너로 만들어진 게 있지 않았나요”라고 묻자 그는 “멋있어졌죠”라고 답변했다. 진짜 하려던 말은 아니었지만 난 “참 좋은 곳이네요”라고 맞장구쳤다.

기억이 있는 공간을 떠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기억이 있는 공간을 떠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뉴스페이퍼 사무실은 2015년, 내가 막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생겼다. 신도림역에서 걸어서 10여분. 25살이었던 나와 문우들은 도박장으로 사용했다던 공간을 개조해 언론사와 아이들을 가르치는 강의실을 만들었다. 직접 벽을 세웠다. 에어컨을 설치했고 방음 벽지를 붙였다.

에어컨 냉각수가 빠져나가는 호스 구멍은 제대로 막지 못해 종종 쥐가 들어오기도 했다. 우리는 구멍을 막지 않았다. 대신 물그릇과 간식을 놓았다. 막상 검고 작은 그 친구를 만날 때면 비명을 지르고는 했다. 코로나19를 거치며 집합 금지 조치가 떨어지자 강의실로 사용하던 공간은 버려지다시피 했다.

부동산 계약을 연장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공간을 놓을 수 없었다. 코로나19가 금세 끝날 것이란 낙관적인 생각도 있었지만, 이 공간을 향한 애정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글을 함께 쓰던 친구들은 그사이 모두 떠났다. 새끼까지 낳은 ‘쥐 3세들’도 이곳을 떠났다. 하지만 이 공간의 기억은 변하지도 떠나지도 않았다.

지난해 11월 출판사 ‘열린책들’이 도시 답사가 김시덕의 책 「철거되는 기억」을 출간했다. 「철거되는 기억」은 175개의 철거되는 건물과 철거되지 못한 기록을 담고 있다. 김시덕 작가는 사람들이 떠나면서 버려진 오브제에 주목한다.

책을 훑어보다가 강원 삼척시 근덕면 상맹방리에 있는 버려진 승공마을의 옛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은 유채꽃이 가득 찬 이곳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지나갔을지 상상할 수 있을 정도로 거긴 ‘참 좋은 곳’이었다.

[사진 | 열린책들 제공]
[사진 | 열린책들 제공]

사무실을 옮길 생각을 하고 있다. 이제는 이곳을 찾아 에어컨 구멍을 드나드는 쥐도, 처음 언론사를 만들었을 때 함께했던 문우들도 없다. 하지만 오전 10시가 되면 나는 항상 그렇듯 습관처럼 책상에 앉는다. 도시 문헌학자인 김시덕 작가는 ‘답사 책’을 쓰는 건 일종의 스토리텔링 작업이라고 이야기한다. 도시와 오브제에도 스토리가 있고 클라이맥스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광주 시화마을의 클라이맥스는 무엇이었을까. 거대한 문학관이 만들어진 후 그 공간은 무엇으로 기억될까. 뉴스페이퍼가 처음 시작한 공간의 클라이맥스는 무엇일까.

이민우 더스쿠프 기자
 lmw@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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