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원초적 질문
홍석구의 稅務와 世務
전국민 고용보험 로드맵 따라
세금 납부에 필요한 비용 증가
간이지급명세서에 숨은 모순들
단순 협조 의무인데도 가산세 부과
비용 줄일 수 있는 합리적 대안 필요

납세협력비용은 세금을 내기 위해 쓰는 돈이다. 아깝기 짝이 없으니 절감할수록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줄이는 게 쉽지 않다. 요샌 자영업계 사이에서 ‘간이지급명세서 제출 의무 확대’가 논란이다. ‘전국민 고용보험 로드맵’을 실현 중인 정부가 국세청을 통해 실시간 소득 파악 업무를 영세 사업자에게 떠넘겼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납세협력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전국민 고용보험 로드맵은 좋은 취지의 정책이지만, 납세협력비용 부담을 늘리는 부작용이 있다.[사진=뉴시스]
전국민 고용보험 로드맵은 좋은 취지의 정책이지만, 납세협력비용 부담을 늘리는 부작용이 있다.[사진=뉴시스]

“세금비서를 통해 납세자는 복잡한 신고서식이나 세무 전문용어를 몰라도 손쉽게 신고를 마칠 수 있다. 서비스 이용자의 96%가 만족할 정도다.” 지난해 말 국세청이 내놓은 보도자료다. 전자세금 서비스 ‘세금비서’가 호평을 받고 있다는 게 골자다. 

이 서비스의 취지는 납세자의 신고서 작성을 돕는 거다. 납세자는 몇몇 항목만 대화형으로 입력하면 복잡한 절차를 생략하고 신고서를 작성할 수 있다. 전자세금계산서ㆍ신용카드내역 등 국세청이 보유한 자료를 대신 채워주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국세청은 세금을 징수하는 세정기관이다. 그러면서도 납세자인 국민의 편의를 도와주는 행정기관이기도 하다. 세금비서는 ‘납세협력비용(Tax Compliance Costs)’을 획기적으로 줄이면서 행정기관의 역할을 강조한 서비스다. 납세협력비용이란 세금을 신고ㆍ납부하는 과정에서 납세자가 부담하는 경제적ㆍ시간적 비용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국민이 ‘세금을 내기 위해 쓰는 돈’인 셈이다.

세금을 줄이는 감세는 국가재정 부담으로 이어지지만, 납세협력비용은 줄어들더라도 국가재정과 무관하다. 그래서 줄이면 줄일수록 유익하다. 국세청 역시 이 비용을 줄이기 위해 힘을 쏟아왔다. 수많은 근로자의 서류 부담을 완화한 연말정산 간소화 제도, 간편하면서도 직관적인 전자세금계산서 제도가 대표 사례다. 

그럼에도 납세협력비용은 2007년 7조140억원에서 2016년엔 11조1179억원으로 큰 폭으로 늘었다. 2016년 이후엔 관련 비용을 따로 추산한 적은 없지만, 세무업계에선 20 16년 조사한 비용보다 당연히 더 증가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참고: 2022년 납세협력비용을 조사하기 위한 예산이 책정돼 조만간 관련 통계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국세청은 불필요하게 납세협력비용을 늘리는 요인이 없는지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그중 살펴봐야 할 건 ‘간이지급명세서 제출 의무 확대’ 문제다. 

간이지급명세서 제출 의무는 ‘전국민 고용보험 로드맵’에 따라 강화됐다. 전국민 고용보험 로드맵은 2020년 문재인 정부가 팬데믹을 계기로 발표한 정책이다. 2025년까지 전국민 고용보험을 완성하겠다는 거다. ‘사회보험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예술인, 특수고용직, 플랫폼 노동자, 자영업자 등에게 순차적으로 고용보험을 확대하겠다는 내용이다.

국세청은 납세협력비용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사진=뉴시스]
국세청은 납세협력비용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사진=뉴시스]

실제로 고용보험 가입자 수는 2019년 1367만명에서 2023년 1518만명(6월 기준)으로 늘었다. 불안정 취업자의 사회적 안전망을 단단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전국민 고용보험은 이롭지만, 문제는 과정이었다. 

고용보험 울타리 밖에 있던 노동자의 실업급여 수급요건을 확인하기 위해 필요한 건 ‘실시간 소득 정보’다. 일반 직장인은 원천징수가 있으니 소득을 파악하는 게 쉽지만, 일주일ㆍ한달 단위로 일터가 바뀌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국세청은 소득을 지급하는 사업주에게 실시간 소득 파악 업무를 맡겼다. 이에 따라 사업주는 ‘간이지급명세서’를 제출하고 있다. 간이지급명세서란 소득을 지급하는 사업주가 소득종류별로 소득을 지급받는 자의 인적사항, 소득금액 등을 기재하는 서식이다. 단순히 이름과 금액만 적어내는 수준이 아니다. 소득 종류별로 구분해서 명세서를 올바르게 작성해야 한다. 

영세 사업주 입장에선 이것부터가 난관이다. 내가 지급하는 인건비가 사업소득인지 근로소득인지 기타소득인지 구분하는 게 쉽지 않아서다. 

실시간으로 소득을 파악해야 하는 국세청은 제출 주기도 짧게 했다. 원래 분기별 제출이던 일용근로소득 간이지급명세서와 1년에 두번씩 내던 사업소득 간이지급명세서의 제출 주기를 매월로 줄였다. 단순하게 계산해도 1년에 두번 내던 명세서를 매월 내면 납세협력비용이 6배 늘어난다. 

올해부턴 기존에 제출하지 않았던 기타소득 간이지급명세서까지 매월 내야 한다. “사업주가 직접 하는 게 아니라 세무사가 대신 하니까 상관없다”는 주장도 있는데, 이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세무대리인의 업무가 증가하면 납세협력비용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납세협력비용엔 외부 용역비도 포함된다. 

더구나 간이지급명세서 제출 의무는 ‘납세 의무’와도 무관하다. ‘단순 협조 의무’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가산세란 불이익을 준다. 최근 몇년간 제출 주기가 자주 바뀐 탓에 가산세를 부담한 영세 사업자들이 적지 않았다.

이렇게 부담한 가산세 역시 납세협력비용의 일종인데, 그래서인지 논란도 있었다. 2020년 간이지급명세서 미제출 문제로 가산세를 부과당한 일부 중소기업 경영진이 회계ㆍ세무 담당 직원에게 가산세를 직접 부담하라고 요구했다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통해 논란이 확산한 적이 있었다.

문제점을 간파한 조세재정연구원은 ‘2021년 세법개정안 평가보고서’를 통해 “정부의 세법개정안에 담긴 각종 소득파악 제도가 납세협력비용을 과도하게 높일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고 지적했다. 새로운 제도는 필시 업무의 증가를 초래한다. 특히 상대적으로 전문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은 대기업에 비해 ‘불편한 비용’을 더 많이 치러야 할 공산이 크다. 

복지 시스템을 구축하는 건 옳은 방향이지만, 그 과정에서 영세 납세자의 물질적ㆍ정신적 부담이 커져선 안 된다. 이런 맥락에서 납세협력비용 부담을 줄이는 방향으로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 정책당국의 현명한 정책 입안을 기대한다. 

홍석구 세무사 | 더스쿠프
seokgu1026@jungyul.co.kr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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