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양재찬의 프리즘
2022년 4분기 출산율 0.65명
0.7명대로 떨어진 지 2년여 만
16년간 280조원 쏟아부었지만
타성 젖은 저출산 정책 효과 없어
치솟은 집값, 사교육 과열과 얽혀
이런저런 장려금 지급 한계 뚜렷
주거 · 교육 · 복지 · 노동 함께 풀어야

‘저출산’ 대책은 효과가 곧바로 나타나지 않는다. 정부가 나서 저출산 대책의 시야를 주거와 교육, 복지, 노동 등 정책의 전반으로 확장해야 한다.[사진=뉴시스]
‘저출산’ 대책은 효과가 곧바로 나타나지 않는다. 정부가 나서 저출산 대책의 시야를 주거와 교육, 복지, 노동 등 정책의 전반으로 확장해야 한다.[사진=뉴시스]

2023년 4분기 합계출산율이 0.65명으로 내려갔다. 출산율 0.6명대는 사상 처음이다. 지난해 연간 출산율은 0.72명으로 0.7명대에 턱걸이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출산율이 1.0명에 못 미치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세계적으로 0.7명대 출산율을 기록한 국가는 한국 외에 2년째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뿐이다.

한국은 2020년 세계 최초로 출산율 0.8명대에 진입했다. 그로부터 2년 만에 0.7명대로 떨어진 출산율은 다시 2년 만인 올해 0.6명대로 추락할 전망이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저출산국으로 기록된 한국은 출산율이 과연 어느 수준까지 내려갈지에 대한 세계적 연구 대상이 됐다. 

지난해 해외 언론과 학자들이 “한국은 망했다” “중세 흑사병보다 더한 인구 격감”이라고 분석 평가했다. 2월 28일 통계청의 지난해 4분기 출산율 발표에 맞춰 영국 공영방송 BBC는 ‘한국 여성들은 왜 아이를 낳지 않나’라는 제목의 기사를 웹사이트에 실었다. 아사히·요미우리·닛케이 등 일본 신문들도 ‘급속한 저출산, 일본의 미래인가’ 등 제목으로 다뤘다.

정부는 2006년부터 5년 단위로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계획을 내놓았다. 16년 동안 280조원을 쏟아부었지만 출산율 하락을 막지 못한 현실은 그동안 역대 정부가 타성에 젖어 취해온 저출산 정책의 반성과 점검을 요구한다. 

우리는 저출산의 배경과 원인을 익히 알고 있다. 대학을 나와도 일자리가 마땅치 않아 취업하기 힘들다. 집값이 너무 비싸 내집 마련은커녕 전셋집 구하기도 버겁다. 결혼해 아이를 낳을 경우 보육과 가사 부담이 여성에게 치우쳐 육아와 일을 병행하기 힘들다. 

직장에 다니며 출산휴가를 쓰거나 육아휴직을 하는 게 눈치 보인다. 경력이 단절되며 보직과 승진 등에 불이익을 받는다. 아이를 낳으면 그만둬야 한다는 암묵적 압박이 있는 직장도 부지기수다. 

장시간 노동 끝에 밤에 귀가하면 파김치가 돼 아이 돌보기가 힘들다. 게다가 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과도한 사교육 부담에 허리가 휜다. 상황이 이러니 젊은이들은 아예 결혼을 하지 않거나, 결혼해도 아이를 낳지 않으려 든다.

국회 예산정책처 분석에 따르면 기혼여성의 노동시간이 주당 1시간 늘면 1년 안에 임신할 확률이 0.3%포인트 낮아진다. 또한 미혼여성이 근무시간 외에 일을 하면 1년 안에 결혼할 확률이 3.7%포인트 떨어진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세계 146개국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성 평등 수준이 높을수록 출산율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저출산 대책은 효과가 곧바로 나타나지 않는다. 지속적으로 실행해야 시간이 경과하며 점차 빛을 볼 수 있다. 일본은 중앙정부와 지자체 차원에서 다양한 저출산 극복 아이디어를 실천하고 있다.

‘아이 한명을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인구 5700명의 오카야마현 나기마을은 2007년 무료 육아시설 ‘나기 차일드 홈’을 만들었다. 육아 어드바이저 6명이 상주하며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아이를 함께 돌보거나 맡기고 외출할 수 있도록 했다. 꾸준히 ‘무료 공동육아’를 실천한 결과 2005년 1.41명이었던 출산율이 2019년 2.95명으로 올라갔다.

일본 정부는 육아수당 등 지원금 지급 외에 의식개혁 차원에서 어린이 패스트트랙 제도를 도입했다. 박물관이나 공항, 관공서를 이용할 때 어린이 동반 가족이나 임산부를 기존 대기자보다 먼저 입장하도록 했다.  

우리도 단순 ‘저출산’ 대책에서 벗어나 시야를 주거와 교육, 복지, 노동 등 정책 전반으로 확장해야 할 것이다. 비싼 집값과 사교육 과열 등 저출산과 얽힌 고차 방정식을 외면하고선 출산율 끌어올리기가 가능하지 않다. 이런저런 장려금 지급으로는 출산율을 올려도 오래 가지 못한다.

‘아이를 낳으면 얼마 지원한다’는 식의 접근은 한계가 있다. 결혼과 출산을 선택한 국민의 삶의 질을 보장하는 접근 방식이 요구된다. 비싼 주거비와 과도한 사교육비 부담을 줄일 부동산 대책과 대학입시 정책이 절실하다. 감소하는 노동력을 메우고 생산성을 끌어올릴 정년 연장과 노동개혁이 필요하다. 노인부양 부담을 줄이기 위한 연금개혁도 뒤따라야 한다.

2023년 4분기 합계출산율이 0.65명으로 내려갔다. 사진은 학령인구 감소로 폐교가 결정된 서울 성동구 성수공업고등학교.[사진=뉴시스]
2023년 4분기 합계출산율이 0.65명으로 내려갔다. 사진은 학령인구 감소로 폐교가 결정된 서울 성동구 성수공업고등학교.[사진=뉴시스]

경제·사회 분야를 망라한 대부분 국가 정책을 출생친화적 관점에서 재설계해야 할 것이다. 연금·노동·교육 등 3대 개혁을 단계적으로 이뤄냄으로써 청년세대가 미래를 기대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저출산은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 대부분 선진국에서 진행형이다. 기존 저출산 추세를 반등시킬 대책과 함께 저출산 상황에 적응하는 것도 필요하다. 선진국들은 국제통화기금(IMF)이 경고한 슈링코노믹스(Shrink+Economics·축소경제) 시대 적응에 부심하고 있다. 저출산 대책 효과가 쉬이 나지 않는 만큼 ‘저출산 연착륙’에도 신경 쓸 필요가 있다. ​ 

양재찬 더스쿠프 편집인
jayang@thescoop.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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