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문 닫는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임대 계약 종료로 갈 곳 없어
3년간의 공백기 가질 수밖에
3만권 만화책 보관 장소 없고
창작중심지 육성계획 흐릿해져
하루빨리 대체 공간 마련해야

2024년 3월 31일 서울애니메이션센터가 문을 닫는다. 예산이 부족해서도, 방문자가 적어서도 아니다. 임대 계약 종료로 ‘갈 곳이 없어서’란 납득 못할 이유 때문이다. 2027년 다시 개관한다곤 하지만 3년간 공백기를 가질 수밖에 없다. 센터에 있는 3만~4만권의 만화책을 보관할 장소를 찾지 못한 것도 문제다. 서울시의 오락가락 정책도 논쟁의 도마에 올려야 할 이슈다.

서울애니메이션센터가 3월 31일에 운영을 종료한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서울애니메이션센터가 3월 31일에 운영을 종료한다.[사진=더스쿠프 포토]

10일 오후 3시, 서울 중구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앞. 1층에 있는 ‘만화의 집’은 초등학생 저학년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의 사람으로 북적였다. ‘만화의 집’에는 1990년대 만화 열혈강호부터 포켓몬스터, 안녕 자두야, 최신 만화 진격의 거인까지 3만~4만권의 만화책이 꽂혀있다. 2층에는 뽀로로, 타요 등의 애니메이션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 ‘애니소풍’이 있다. 센터 관계자는 “주말에는 하루에 1000여명 이상 방문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만화의 집’과 ‘애니소풍’은 곧 문을 닫는다.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입구에도 “2024년 3월 31일 운영을 종료합니다”란 안내문이 붙어 있다.

대학생 때부터 서울애니메이션센터를 찾았다는 김지희(48)씨는 “서울 근교에 무료로 만화를 볼 수 있는 곳이 여기 말곤 없는데... 문을 닫는다니 너무 서운하다”라고 말했다. 그럼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서울애니메이션센터는 왜 문을 닫는 걸까. 이 질문을 풀려면 서울애니메이션센터의 역사를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

1995년 개장한 서울애니메이션센터는 원래 남산에 있었다. 1대 조선총독부가 있었던 자리였는데, 그곳에서 2018년 8월까지 운영했다. 서울애니메이션센터의 재건축이 결정된 탓이었다.

서울애니메이션센터를 관리하는 서울시 산하 공공기관 서울경제진흥원(SBA)은 재건축 기간 핵심 기능을 대신할 대체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우리금융디지털타워의 1~2층을 2022년 3월까지 사용하기로 계약했다. 서울 중구에 있는 지금의 서울애니메이션센터는 2019년 3월 문을 열었다.

하지만 남산 서울애니메이션센터를 재건축하던 2019년 4월 1대 조선총독부의 유구遺構(옛날 건축 양식을 볼 수 있는 흔적)와 매장돼 있던 문화재가 발견됐다. 이 때문에 공사가 한동안 멈췄고, 2023년 6월에야 다시 공사를 진행할 수 있었다.

국내외 만화의 역사가 담겨 있는 3만~4만권의 만화책을 보관할 장소가 사라진다.[사진=더스쿠프 포토]
국내외 만화의 역사가 담겨 있는 3만~4만권의 만화책을 보관할 장소가 사라진다.[사진=더스쿠프 포토]

그 과정에서 준공(서울창조산업허브)이 2027년으로 밀리면서, 서울애니메이션센터의 입주일도 그때로 연기됐다. 문제는 우리금융디지털타워와의 계약기간이 2022년 3월까지였다는 점이다. SBA는 우리금융디지털타워와의 계약을 2022년 3월에서 2024년 3월까지 2년 연장했지만 그후 재계약엔 실패했고, 결국 폐관을 결정했다.

다시 말해, ‘입주할 곳이 없어서’ 서울애니메이션센터의 폐관을 결정했다는 거다. 2027년 준공하는 서울창조산업허브에서 재개관한다곤 하지만, 납득하기 힘든 이유로 3년간 공백기를 가질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폐관 결정이 신중하지 않았다고 입을 모은다. 김진각 성신여대(문화예술경영학) 교수는 “잠정 폐관을 통해 공백기를 갖는 것보단 대체공간을 마련하는 게 옳았다”면서 “여러 사람에게 사랑받았던 공간인 만큼 그들의 니즈를 충족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섣부른 폐관 결정이 초래한 문제는 숱하다. 3만~4만권의 만화책을 보관할 장소를 아직까지 찾지 못했다. SBA 측은 “만화책을 보관할 장소를 찾기 위해 여러 곳과 협의를 진행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면서 “만화책이라는 특성상 기증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2018년 서울시가 발표한 ‘서울미래 혁신성장 프로젝트’의 전략적 거점이 일정 기간 ‘붕’ 뜬다는 점도 문제다. 당시 남산 애니타운 일대를 문화ㆍ디지털 콘텐츠 창작 중심지로 육성할 계획을 세웠던 서울시는 그 중심에 ‘서울애니메이션센터’를 뒀다.

2022년 서울애니메이션센터의 재건축이 끝나면 이곳을 ▲전시ㆍ회의 등을 포함한 유통플랫폼, ▲콘텐츠 창작ㆍ협업이 가능한 창작지원 공간, ▲시민체험공간과 기업의 문화 콘텐츠 홍보공간으로 조성한다는 게 서울시의 빅픽처였다.

하지만 서울시의 태도는 어느 순간 달라졌다. 서울시 관계자는 “2027년도에 개관하는 ‘서울창조산업허브’에 서울애니메이션센터에 있던 ‘만화의 집’ 기능을 담을지는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결정된 건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이어 “시가 지도감독하고 있긴 하지만 서울애니메이션센터는 SBA의 고유사업”이라며 발을 완전히 뺐다.

이 때문인지 애니메이션ㆍ만화ㆍ웹툰 관계자들은 대안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서범강 한국웹툰산업협회 회장은 “대중들이 만화와 웹툰을 쉽게 접할 수 있는 공간이 공백기를 가져 아쉽다”며 “예기치 않은 공백이 생긴 만큼 손놓고 있기보단 대안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SBA는 “만화책 보관을 포함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논의 중”이라고 답했다. 갈 곳이 없다는 이유로 잠정적 폐관이 결정된 서울애니메이션센터는 ‘갈 곳’을 찾을 수 있을까.


홍승주 더스쿠프 기자
hongsam@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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