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2019~2023년 예타 분석
예타 사업 통과율 89.8% 
기준점 미달 사업도 통과
예타 대상보다 면제 많아

서울지하철 5호선을 김포까지 연장하는 사업이 22대 총선을 앞두고 여야의 선심성 정책으로 떠오르고 있다. 서로 자신들의 공으로 돌리고 싶은 거다. 주목할 건 수조원의 예산을 투입해야 할 이 사업이 예비타당성조사를 받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방법론의 차이만 있을 뿐, 여야 모두 예타 면제에 동의하고 있어서다. 정치권이 예타 제도를 유명무실하게 운영하고 있다는 건데, 그 실태는 더 갑갑하다.

정치권이 지하철 5호선 연장 사업을 예타 없이 진행할 방침을 세웠다.[사진=뉴시스]
정치권이 지하철 5호선 연장 사업을 예타 없이 진행할 방침을 세웠다.[사진=뉴시스]

“기획재정부 장관은 ‘총사업비가 500억원 이상이고, 국가의 재정지원 규모가 300억원 이상인 신규 사업 중 ▲건설공사가 포함된 사업, ▲지능정보화 사업, ▲국가연구개발사업과 중기재정지출이 500억원 이상인 사회복지, 보건, 교육, 노동, 문화ㆍ관광, 환경 보호, 농림해양수산, 산업ㆍ중소기업 분야 사업의 예산을 편성하려면 미리 예비타당성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요약해서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제출해야 한다.” 

예비타당성조사(이하 예타)의 법적 근거인 국가재정법 제38조의 내용을 간추린 거다. ‘신규 재정사업의 투자 우선순위를 투명하고 공정하게 결정해 예산 낭비를 방지하고, 재정운영 효율성을 재고한다’는 취지에서 도입한 제도다.[※참고: 다만 국가연구개발사업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에게 위탁할 수 있다. 이 경우 예타 세부사항은 과기정통부장관이 별도로 정한다.]

예타는 사업 진행을 신중하게 하는 게 취지인 만큼 다양한 방법으로 분석한다. 크게 경제성 분석, 정책성 분석, 지역균형발전 분석으로 나누고, 그 분석 결과를 종합적으로 반영해 결과를 도출한다.

예컨대, 건설사업의 경우 수도권에선 지역균형발전 분석이 없고, 경제성(60~70%)과 정책성(30~40%)만 있으면 추진할 수 있다. 반면 비수도권에선 경제성(30~45%)과 정책성(25~40%)은 물론, 지역균형발전(30~40%) 분석을 함께 고려한다.

지능정보화 사업이나 기타 재정사업의 경우 비용편익분석(B/C)을 하느냐 비용효과분석(E/C)을 하느냐에 따라 경제성이나 정책성의 반영 비율이 조금씩 달라진다. 천편일률적 분석이 아니라는 얘기다.

[※참고: B/C분석은 여러 대안의 비용과 편익을 비교ㆍ분석하는 것이고, E/C분석은 비용과 산출효과를 비교ㆍ분석한다. E/C분석은 산출물을 금전적 가치로 환산하기 어려운 경우에 주로 활용한다.] 

그럼 예타를 통해 불필요한 사업이나 낭비성 사업이 잘 걸러지고 있을까. 나라살림연구소와 장혜영 녹색정의당 의원실이 예타 현황 분석을 통해 제도의 실효성을 따져 본 결과는 그렇지 않아 보인다. 제도를 도입한 당초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어서다. 

우선 예타 통과율이 너무 높다. 지난 5년간(2019~2023년) 예타 대상 사업은 108건이었는데, 검증대를 넘은 사업은 97건이다. 통과율이 89.8%다.

같은 기간 정부 부처별 예타 통과 현황을 보면 국토교통부가 31건(32.0%ㆍ이하 비중)으로 가장 많았다. 해양수산부는 13건(13.4%), 농림축산식품부는 8건(8.2%), 환경부는 7건(7.2%), 보건복지부ㆍ산업통상자원부ㆍ문화체육관광부는 각각 6건(각 6.2%)이었다. 

예타 조사는 일정한 조건을 충족하면 반드시 해야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사진=뉴시스]
예타 조사는 일정한 조건을 충족하면 반드시 해야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사진=뉴시스]

그렇다면 같은 기간 예타를 통과하지 못한 11개 사업은 대체 어떤 사업들이었을까. ▲서도 연도교 건설, ▲KIST 연구동 환경개선 ▲부산항 제2신항 건설, ▲부산 도시철도 하단~녹산선 건설, ▲과천선 급행화, ▲인천도시철도 2호선 검단 연장, ▲중규모 LPG 배관망 구축, ▲효창독립100년 공원 조성, ▲서산 군비행장 민항시설 설치, ▲유성대로~화산교 도로 개설, ▲신분당선 서북부연장(용산~삼송) 건설 등이다. 

이중 ‘부산항 제2신항 건설’ 사업은 2021년에 ‘부산항 진해신항(1단계) 건설’ 사업으로 사업명과 사업비를 변경해 예타를 통과했다. ‘부산 도시철도 하단~녹산선 건설’ 사업은 2022년 사업비를 증액해 통과했다. 지난 5년간 실질적인 예타 통과 건수는 99건(91.7%), 미통과 건수는 9건(8.3%)에 불과한 셈이다.

눈여겨볼 점은 경제성 분석에서 ‘사업을 추진해도 괜찮은 기준점’인 1보다 낮아도 예타를 통과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거다. 지난 5년간 경제성이 1보다 낮아도 예타를 통과한 사업은 모두 43건(44.3%)이었다.

물론 언급한 것처럼 예타는 다양한 분석 내용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기 때문에 경제성이 없다고 판단한 사업이 예타를 통과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은 아니다. 다만 경제성이 낮아도 통과했다는 건 지역균형발전 분석이나 정책적 분석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는 것이니까, 비수도권 지방자치단체들이 진행하는 사업이라 해도 무방하다.

그런데 비수도권 지자체들의 재정자립도는 대체로 낮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성이 없는 사업을 진행한다는 건 예타 제도의 당초 목적(세금 낭비 방지)과는 거리가 있다. 

더 이상한 건 예타를 면제받은 사업이 숱하다는 점이다. 지난 5년간 원래는 예타 대상 사업에 속하지만, 예타를 면제받아 진행한 사업은 163건이었다. 이는 전체 예타 대상 사업(108건)보다도 훨씬 많은 수치다. 사업비를 기준으로 보면 106조원으로, 같은 기간 전체 예타 통과 사업비(80조원)보다도 26조원이 더 많다. 

면제 사유는 적절했을까. 아니다. 일례로 국토부 소관으로 2조9000억원을 투자한 ‘동해북부선 강릉~제진 철도건설’ 사업의 예타 면제 사유는 ‘공공청사, 재난복구 등’이었다. 엉뚱한 사유를 제시했는데도 면제가 됐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일부 건설사업의 경우엔 ‘국가정책적 추진’이라는 사유로 면제됐는데, 이는 행정부의 자의적 판단이 개입할 수 있다는 방증이다. 

이처럼 예타 면제 사업이 넘쳐난 데는 금배지들의 잘못도 없지 않다. 금배지들은 툭하면 ‘지역발전’이라는 명목으로 특별법을 만들어 예타 면제를 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이런 면제 요구가 타당한지 의문이다.

예타는 2019년 제도 개선을 통해 경제성뿐만 아니라 지역 낙후도, 지역경제 파급 효과, 고용유발 효과 등을 분석에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제도 자체를 유명무실화하는 면제를 요구하는 건 타당하지 않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통과율이 낮지도 않다는 걸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다. 

이런 맥락에서 예타 제도를 이대로 둬선 안 된다. 예타 제도의 유명무실화는 예산 낭비와 비효율적 재정운영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특히 예타를 면제하면 해당 사업이 당초 목적을 제대로 달성했는지 제대로 평가하기도 어렵다.

어떻게 해야 할까. 예타 면제부터 최소화할 장치가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행정부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예타를 면제하는 사유를 제한할 법률 정비가 필요하다.

손종필 나라살림연구소 전문위원
sonjongpil@gmail.com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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