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비흡연자 혐연권 보장 위해
‘공동주택 금연구역제도’ 시행
국민건강증진법 근거로 삼아
그러나 아파트 내 흡연자 숱해
법으로 지정한 금연구역 4곳뿐
흡연구역이 금연구역보다 넓어
비흡연자·흡연자 모두에게 불편
금연아파트란 이름값은 어디로

‘금연아파트’에 거주하는 A씨. 당연히 아파트 단지 전체가 금연구역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흡연자들은 어찌 된 일인지 아파트 입구, 화단, 분리수거장 근처, 쉼터 가는 길에서도 버젓이 담배를 피운다. 이유는 간단하다. 금연구역보다 흡연구역이 훨씬 더 넓어서다. 더스쿠프가 이름값 못하는 금연아파트의 모순을 취재했다.

‘공동주택 금연구역 제도’는 2016년 9월 3일부터 시행됐다.[사진=뉴시스]
‘공동주택 금연구역 제도’는 2016년 9월 3일부터 시행됐다.[사진=뉴시스]

아파트 단지를 드나들 때 어디선가 담배 냄새가 밀려온다. 단지 내 갓길이나 분리수거장 근처, 쉼터ㆍ화단 등 여기저기엔 담배꽁초가 떨어져 있다. 흡연자도 쉽게 볼 수 있다. 비非흡연자뿐만 아니라 어린아이들도 담배 연기와 냄새에 고스란히 노출될 수밖에 없다. 가장 안락해야 할 주거공간에서 ‘혐연권嫌煙權’을 침해당하고 있는 셈이다. 혐연권이란 비흡연자가 공공장소나 생활공간에서 담배연기를 거부할 권리다.

우리나라에선 이런 혐연권을 보장하기 위해 ‘금연아파트’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른바 금연아파트라 불리는 ‘공동주택 금연구역제도’는 2016년 9월부터 시행했다.

국민건강증진법(제9조 제5항)을 근거로 공동주택 거주세대 중 2분의 1 이상이 금연구역 지정을 신청하면 지자체가 해당 공동주택을 금연구역으로 지정한다. 지정 후엔 이를 알리는 안내표지를 공공주택 곳곳에 설치해야 하고, 공동주택 내에서 흡연할 경우 5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에 따르면 전국 공동주택 중 금연아파트의 비중은 10% 안팎으로 2022년 기준 2681개다. [※참고: 건축법은 공동주택의 범위를 아파트뿐만 아니라 연립주택ㆍ다세대주택ㆍ기숙사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기사에선 편의상 ‘금연아파트’로 표기했다.]

문제는 금연아파트에서조차 간접흡연 피해가 숱하다는 점이다. 서울 마포구 A아파트에 거주하는 직장인 김유현(가명)씨는 “단지 내에서 흡연하는 사람들을 보면 아무래도 불편하다”고 털어놨다. 아이의 하원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또다른 주민 이성경(가명)씨는 “어린아이를 키우고 있다 보니 아이가 담배연기를 맡을까 봐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걸까. ‘공동주택 금연구역 제도’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덴 이유가 있다. 국민건강증진법이 규정하고 있는 금연구역이 아파트 단지 전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법적 금연구역은 공동주택의 복도ㆍ계단ㆍ엘리베이터ㆍ지하주차장 등 4곳 또는 4곳 중 일부만 해당한다. 4곳을 제외한 곳에서는 담배를 피워도 법적 문제가 없다는 거다. 특히 누구나 이용하는 보행로가 금연구역에서 빠져 있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보행로는 등ㆍ하교, 출퇴근할 때는 물론 집 앞을 잠시 오갈 때조차 피할 수 없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공동주택 금연구역 제도’의 한계는 이뿐만이 아니다. 층간흡연을 유발하는 발코니ㆍ화장실 등은 금연구역이 아닌 금연권고구역이다. 공동주택관리법(제20조의2)은 ‘공동주택의 입주자 등은 발코니ㆍ화장실을 포함한 세대 내에서 흡연으로 다른 입주자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권고적 내용만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누군가 발코니나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워서 간접흡연 피해를 입히더라도 ‘법적 제재’를 가할 길이 없다.

서울 마포구 A아파트 관리실 관계자는 이렇게 토로했다. “민원 신고가 들어왔을 때 관리실에서 할 수 있는 건 고작 방송하는 것뿐이에요. 흡연을 자제해 달라고 승강기를 비롯한 복도 곳곳에 안내문을 게시하고 있지만 더 할 수 있는 조치는 사실 없어요. 층간흡연의 경우 정확히 어느 집인지 골라내는 것도 어렵고요.”

그렇다고 모든 피해가 비흡연자에게만 돌아가는 건 아니다. 흡연자도 흡연자대로 고충이 있다. 법이 지정한 금연구역 4곳을 피해서 담배를 피우더라도 사람들의 눈총과 민원신고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비흡연자의 혐연권뿐만 아니라 흡연자의 흡연권도 헌법에서 보장하는 기본권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금연아파트의 문제점은 복합적이다. 금연아파트가 비흡연자와 흡연자 모두에게 불편한 제도로 전락한 건 “흡연부스 등 별도의 흡연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명시적 지침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법적 규정이 없는 상황에서 아파트 주민끼리 협의를 통해 흡연부스를 설치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흡연부스 설치비용을 누가 부담할지’ ‘추가관리비는 또 누가 부담할지’ 등 합의점을 찾기 어려운 이슈가 숱해서다. 더구나 아파트가 아닌 연립주택ㆍ다세대주택 등의 공동주택은 흡연부스를 설치할 공간이 없는 경우도 많다.

[그래픽=더스쿠프, 사진=뉴시스]
[그래픽=더스쿠프, 사진=뉴시스]

국회 입법조사처 보건복지여성팀 관계자는 “아파트의 경우 입주자 단체가 자치적으로 관리 규약을 신설해 일정 장소를 금연구역으로 지정할 수 있다”면서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실행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말했다. 법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제는 법적 공백을 메워야 하는 국회가 ‘더딘 발걸음’을 떼고 있다는 점이다. 2022년 김예지(국민의힘) 의원은 ▲거주세대 중 3분의 1(현행 2분의 1) 찬성 시 금연구역 지정, ▲지상주차장ㆍ필로티(Pilotiㆍ기둥)를 비롯한 지정 금연구역 확대 등의 내용을 담은 ‘국민건강증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하지만 이 개정안은 2년이 흐른 지금까지 소관위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금연아파트는 언제쯤 이름값을 할 수 있을까.

김하나 더스쿠프 기자
nayaa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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