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걸의 有口有言] 탐욕만 물려준 씁쓸한 대가
[윤영걸의 有口有言] 탐욕만 물려준 씁쓸한 대가
  • 윤영걸 편집인
  • 호수 306
  • 승인 2018.09.18 08: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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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최고 부자들이 상속 대신 기부하는 이유
외국기업엔 왜 갑질이 많지 않은지 그 이유를 따져봐야 한다.[사진=연합뉴스]
외국기업엔 왜 갑질이 많지 않은지 그 이유를 따져봐야 한다.[사진=연합뉴스]

영화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은 아름다운 프랑스 와이너리를 배경으로 삼남매의 갈등과 화해의 과정을 감칠맛나게 담았다. “인생도 와인처럼 숙성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메시지지만 알고 보면 상속에 관한 영화다.

선대부터 포도밭을 운영해온 부르고뉴의 삼남매 중 장남은 아버지의 엄격한 훈육에 반발해 집을 떠난다. 여동생은 고향에 남아 와인을 만들고, 막내아들은 장인의 포도밭에서 일을 하고 있다.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삼남매는 물려받은 포도밭의 처분을 놓고 고민한다. 와이너리를 팔지 않으면 도저히 상속세를 낼 수 없고, 그렇다고 덥석 팔고 떠나기엔 애정과 사연이 많다. 맏아들은 자신의 지분을 동생들에게 넘기되 천천히 상환하라고 한다. 상속세는 맏아들이 빚을 얻어 마련한 호주 와이너리 일부를 팔아 조달하기로 한다. 삼남매의 상속과정은 뒷맛이 혀에 감기는 와인처럼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Chaebol(재벌)’에 이어 세계 경영학 교과서에 또 하나의 한국어가 수록됐다. 바로 ‘Gapjil(갑질)’이다. 광고대행사 직원에게 물컵을 집어 던지고 자신과 함께 근무하는 부하 직원에게 악을 쓴 대한항공 차녀 조현민 전무 문제를 보도한 ‘뉴욕타임스’ 기사에서다. 외국인들은 한국재벌 가족의 일탈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다. 

총수가족이 회사 직원을 괴롭히는 ‘갑질’이 왜 한국 사회에서만 이렇게 자주 등장하는 것일까. 물론 권위적인 조직문화와 공公과 사私를 분명히 구별하지 않는 태도에 일차적인 원인이 있다. 여기에 잘못된 상속이 갑질문화를 확대재생산하게 한다. 

총수는 지분이 10%가 채 안되지만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한다. 능력도 부족하고, 소양이나 인품조차 검증되지 않은 2ㆍ3세는 핏줄이라는 이유만으로 봉건시대 황제처럼 그룹을 물려받는다. 여기에는 가풍도 없고, 사회공헌에 대한 의식은 더욱 없다. 후계자 검증도 소홀하다. 어찌 보면 2ㆍ3세가 개차반으로 행동하는 게 당연하다. 

한국은 재벌총수가 죽어야 상속이 이뤄지는 나라다. 그러다 보니 회사를 물려받는 날 2ㆍ3세들은 언제든지 연산군처럼 폭군으로 변할 수 있다. 험난한 세파와 싸워본 적이 없는 재벌가 후손들은 의심疑心ㆍ변심變心ㆍ욕심欲心이라는 3심을 유전자처럼 지니고 있다. 전문경영인은 총수가족의 비위맞추기에 급급하고, 권력기관 출신에 대한 전관예우는 총수가족 탈선의 훌륭한 방패막이 기능을 한다. 

소탈한 성격의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자 생존 당시만 해도 ‘갑질’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2세인 조양호 회장으로 넘어가면서 4형제간에 골육상쟁이 벌어지는 와중에 그룹의 정신이 피폐해졌다. 조양호 회장은 재물과 경영권만 물려주려고 했을 뿐 자식에 대한 인성 교육을 등한시했다. 한진그룹의 갑질문화는 결국 상속의 문제로 귀착된다. 다른 재벌가문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대체로 이런 과정을 거친다. 

현재 미국의 최고 부자인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 게이츠나 버크셔해서웨이의 워런 버핏,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는 기부에 열을 올린다. 총수의 부인이나 자식이 무슨 사고를 치고, 본인이 어떤 물의를 일으켰다는 소문은 거의 없다. 자식에게 돈만 물려주는 탐욕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알기 때문이다. 

미국 최고의 부자가문이었던 밴더필드 가문이 몰락하는 덴 100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밴더필드 후손들은 가문의 위상을 상징하는 ‘더 브레이커스’라는 대저택의 상속세와 재산세 관리비를 감당하지 못해 ‘뉴포트카운티 보존회’에 겨우 4억원에 넘기고 건물 일부분을 임대해 살고 있다. 회사운영보단 화려한 취미생활에 모든 에너지를 쏟았던 밴더필드 3대 윌리엄 키삼은 생전에 이렇게 한탄했다. “돈이 많으니 내가 애써 찾거나 구해야 할 것이 없었다.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은 것은 행복의 장애물이었다.”

현재 밴더빌트 가문에서 가장 유명한 이는 CNN 앵커인 앤더슨 쿠퍼다. 그의 어머니인 글로리아 밴더빌트는 2000억원대의 자산가이지만 아들에게 한푼도 주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앤더슨 쿠퍼는 당연하다고 맞장구쳤다. “유산을 생각하고 살았으면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을까요?”

영화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의 메시지처럼 인생도 와인처럼 숙성이 필요하다. 재벌가의 황금에 대한 집착은 결국 회사를 망치고, 자녀를 재물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게 할 것이다. 해결방안은 2가지다. 먼저 자식에게 회초리를 들어라. 그리고 자식의 행복을 위한 상속을 지금부터 준비하라.
윤영걸 더스쿠프 편집인 yunyeong0909@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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