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차 도약 조건

프리미엄 완성차 브랜드들은 좋은 품질의 차를 내놓는다. 물론 품질이 프리미엄 브랜드 조건의 전부는 아니다. 브랜드의 개성을 드러내는 디자인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촌스러운 엠블럼을 달고 있으면, 제아무리 첨단기술을 탑재해도 소비자의 외면을 받기 마련이다. 기아차가 그렇다.

기아차에 지금 필요한 건 디자인 혁신이다.[사진=뉴시스]
기아차에 지금 필요한 건 디자인 혁신이다.[사진=뉴시스]

1998년 부실이 눈덩이처럼 커진 기아차는 현대차에 인수됐다. 이후 자동차를 이루는 뼈대는 한 형제가 된 현대차의 플랫폼을 썼지만 기아차는 나름대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구축하고 독자적인 노선을 걸었다. 속은 같지만 겉으로는 전혀 다른 특성을 유지하면서 브랜드성을 유지하겠다는 전략이었다.

형님보다 잘난 아우는 없다 했는가. 기아차에 역경이 없던 건 아니었다. 같은 차종인 데도 현대차보다 늦게 출시되는 등 그룹 내에서 알게 모르게 차별대우를 받았다. 동일 차종간 ‘피 튀기는 형제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런 치열한 경쟁이 글로벌 시장에서 약이 됐다. 기아차의 색은 점점 강해졌다. 그룹이라는 같은 뿌리에서도 기아차만의 시스템이 구현됐다. 현대차그룹이 글로벌 완성차 업체로 발돋움하는 데는 이런 기아차의 성장이 크게 작용했다.

이렇게 탄생한 대표적인 차가 ‘카니발’과 ‘쏘렌토’다. 동급에서 경쟁자가 없는 최고의 차종으로 군림하고 있다. 과거 ‘익스플로러 밴’이나 ‘스타크래프트 밴’을 타고 다니던 국내 연예인도 최근엔 ‘카니발 리무진’을 타고 다닐 정도로 인기가 뜨겁다. 쏘렌토는 중형급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의 대명사다. 국내에선 팬덤이 형성될 정도다.

그런데 최근 기아차 움직임은 성장곡선을 그렸던 과거와는 다르다. 기아차만의 색깔이 흐려졌고, 현대차와 겹치는 요소는 많아졌다. 플랫폼을 현대차와 공유하기 때문에 속은 어쩔 수 없다고 치지만 문제는 디자인이다.
차 디자인에서 브랜드의 독립성을 강조할 수 있는 건 엠블럼이다. 브랜드의 이름인 만큼 가장 중요한 표현 수단이다. 가령, 삼각별이 달린 엠블럼을 보면 사람들은 벤츠를 떠올린다. 이렇듯 엠블럼엔 직관적으로 브랜드를 떠올리게 하는 힘이 있다. 역사가 깊은 프리미엄 브랜드의 경우, 차 엠블럼을 떼어가거나 이를 모으는 마니아가 있을 정도다.

사람 얼굴로 치면 코에 해당하는 라디에이터 그릴도 중요한 요소다. 수많은 브랜드가 서로 다른 차종에도 유사한 그릴 형태를 유지한다. 멀리서 봐도 브랜드의 특징을 알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사람 콩팥처럼 둘로 나눠진 BMW의 ‘키드니 그릴’이 대표적이다. 굳이 로고를 보지 않더라도 BMW 차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업계에선 이런 걸 ‘패밀리룩’이라고 부른다. 회사 고유의 자동차 디자인 특징을 표현하는 것이다. 낯설지도, 매우 새롭지도 않는 익숙함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이제 기아차 엠블럼을 보자. 차종에 구분 없이 타원형에 ‘KIA’라는 고딕체를 써넣었다. “아 기아차가 만든 차구나” 이상의 감흥이 없다. 세련된 멋도 없다. 이 엠블럼이 어울리는 차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차도 많다. 주변 기아차 오너들 중에선 따로 엠블럼을 제작해 붙이고 다니는 이들이 있을 정도다. 이번엔 라디에이터 그릴이다. 기아차 그릴 디자인은 입을 앙 다문 호랑이의 다부진 모습을 모티브로 삼았다. 부분이 오목하게 들어가 이빨을 드러낸 호랑이 코가 연상된다는 거다. 문제는 이 역시도 어울리지 않는 차종이 있다는 거다. 차종을 여러 방향으로 차별화하는 추세인 데도, 그릴이 그대로라 디자인 균형이 깨지는 느낌이다.

매년 실적이 악화하는 기아차는 이제 디자인 혁명이 필요한 때다. 늘어난 차종에 맞게 소비자 감성을 자극할 수 있는 엠블럼과 패밀리룩을 구축하는 게 시급하다. 여기에 기아차만의 개성 있는 알루미늄 휠을 추가한다면, 더 멋진 브랜드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높다. 좋은 차를 만들고도 엠블럼과 디자인 때문에 소비자의 외면을 받아선 안 될 일이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 autoculture@hanmail.net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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