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의 비명과 유통재벌의 페니전략 
골목의 비명과 유통재벌의 페니전략 
  • 이윤찬 기자
  • 호수 324
  • 승인 2019.01.31 1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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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년 왜 골목만 죽었나
백화점ㆍ마트는 양적 성장
“푼돈까지 싹싹 끌어모아라”
유통재벌 페니전략의 부메랑
골목상권의 붕괴를 시대적 흐름의 결과물로 보기엔 과한 면이 없지 않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골목상권의 붕괴를 시대적 흐름의 결과물로 보기엔 과한 면이 없지 않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골목상권이 무너지고 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산업통상자원부와 통계청의 데이터를 재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11년 이후 무너진 유통채널은 작은 동네슈퍼(156㎡ 미만) 하나뿐이었다. ‘장사가 안 돼서 죽겠다’면서 우는소리를 늘어놓기 바빴던 백화점‧대형마트‧기업형 슈퍼마켓(SSM)은 점포수는 물론 매출도 늘었다. 유통공룡의 탐욕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각종 규제들이 시장에서 제역할을 못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시대적 흐름의 결과물”이라고 말한다. 무너질 때가 됐으니 무너졌다는 거다. 유통재벌의 수장들도 “우리가 골목상권을 잠식하지 않았더라도 동네슈퍼는 죽었을 것”이라고 목청을 높인다. 과연 그럴까. 유통재벌이 ‘푼돈까지 긁어모으겠다(페니전략)’면서 골목까지 탐한 결과는 아닐까. 골목상권은 이렇게 와르르 무너져도 괜찮은 걸까. 더스쿠프가 골목의 비명과 페니전략의 부메랑을 취재했다.


#1. 언제부터…

대체 언제부터였는지 잘 모르겠다. 골목 구석구석까지 ‘대기업 간판’을 매단 편의점이 파고들었는지 말이다. 인구 1322명당 1개 꼴이라니, 많기도 참 많다. [※ 참고: ‘편의점 천국’ 일본의 편의점 수는 인구 2226명당 1개다.]

한편에선 정감 넘치던 골목까지 ‘대기업 플랫폼’이 장악했다면서 목소리를 높인다. 반론의 기세도 만만찮다. “편의점이 대기업 플랫폼인 건 사실이지만 그건 프레임 논쟁일 뿐이다. 편의점주도 엄연히 소상공인이지 않은가. 편의점은 골목침투의 결과물이 아니다.” 누가 진실을 말하고 있는 걸까. 답을 찾기 위해선 자본의 민낯을 먼저 살펴봐야 한다. 

# 2. 자본과 승자독식

거대자본은 승자독식의 훌륭한 도구다. 돈만 맘놓고 뿌려댈 수 있다면 골목 따위를 접수하는 건 일도 아니다. 재벌이 시장을 쉬이 장악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론 ‘독식과정’이 순탄치 않을 순 있다. 골목을 지키려는 여론과 상인이 집단반발할 가능성이 높아서다. 논리는 대략 이렇다. “아름다운 골목을 돈으로 물들이려 하는가. 영세상인은 어찌 살란 말인가.”  

문제는 이런 반발이 오래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반발의 원심력은 자본이 만들어낸 ‘편의성(배달ㆍ할인ㆍ마케팅)’ 앞에서 조금씩 무기력해진다. ‘골목침투는 소비자를 위한 것’이라는 거대자본의 논리에도 힘을 빼앗기기 일쑤다. 

“신세계는 모든 국민에게 기업형 유통의 혜택을 주고 싶다(2009년 5월 이마트 소형점포 확대 관련ㆍ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기업형 슈퍼마켓을 규제하는 건 질 좋고 값싼 제품을 구입할 수 있는 소비자의 권익을 빼앗는 것이다(이승한 전 삼성테스코 회장ㆍ2009년 6월).” 

반발을 약화시키는 건 또 있다. 망각과 무관심이다. 자기 일이 아니라면 골목이 무너지든 말든 별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들이 절대다수다. ‘저기에 할머니가 운영하던 슈퍼가 있었는데…’라는 생각에 휩싸일 순 있겠지만 그건 덧없는 향수일 뿐 어떤 부가가치도 없다.

당신은 어떤가. 거대자본이 언제부터 골목을 잠식했는지 기억 나는가. 자! 시계추를 거꾸로 돌려보자. 

#3. 페니전략과 푼돈 

글로벌투자은행 ‘리먼’이 속절없이 무너진 2008년. 한국에선 대형마트의 폭발적인 성장세가 한풀 꺾였다. 새로운 금맥을 찾아 헤매던 유통공룡은 작은 가게들이 옹기종기 장사를 하던 골목을 점찍었다.

주말엔 대형마트에서 소비자를 붙잡고, 평일엔 가까운 곳에서 장을 보는 이들을 끌어모으겠다는 계산에서였다. 푼돈까지 싹싹 긁어모으자는 것, 이를테면 ‘페니(Penny) 전략’이었다. 골목 사람들은 반기를 들었다. 거대자본이 굳이 골목을 탐하는 이유가 무어냐는 항변이었다. 

불만이 눈덩이처럼 커지자 이리저리 눈치를 보던 금배지들이 ‘반反자본 대열’에 합류했고, 각종 규제 법안들을 쏟아냈다. ▲대형마트 등 대규모점포 의무휴업 ▲영업시간 제한 ▲전통시장 등 전통상업보존구역 1㎞ 내 출점 제한 ▲유통업상생발전협의회 설치 ▲상권영향평가서 ▲지역협력계획서 제출…. 

그럼에도 자본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규제법안의 숱한 사각지대를 조롱하듯 파고들었다. 기업형 슈퍼마켓(SSM) 등 변종 플랫폼을 속속 선보였다. 규제에 살짝 비켜있던 편의점은 골목전쟁의 선봉에 세웠다. 골목은 그렇게 유린되기 시작했다. 결과는 참혹했다.  


#4. 동네슈퍼의 몰락 

골목은 대체 얼마나 무너진 걸까. 먼저 통계를 보자. [※ 참고: 이 자료는 최인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산자부로부터 받은 자료와 통계청 자료를 재해석한 데이터다. 자세한 데이터는 커버 파트1에서 공개한다.] 

골목을 침투했던 SSM의 점포수는 2011년 1201곳에서 2017년 1610곳으로 409곳 늘었다. 선봉 역할을 맡았던 편의점은 골목의 지배자로 거듭났다. 점포수와 매출액이 6년새 87.5%, 141.3% 치솟은 결과다. “바닥이 어딘지조차 모르겠다”면서 우는소리를 작작 늘어놓던 백화점과 대형마트도 점포수ㆍ매출 면에서 모두 ‘증가세’를 기록했다. 

쪼그라든 업태는 156㎡(약 47평) 미만의 동네슈퍼(2011년 7만6043개→2017년 5만8463개) 하나뿐이었다. “10년 후엔 작은 동네슈퍼가 완전히 사라질 수 있다”는 무서운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5. 독과점과 방어막 

누군가는 이렇게 반론을 펼 것이다. “동네슈퍼 소멸이 왜 무서운 일인가. 경쟁에서 밀렸으니 사라지는 게 당연하다. 보호할 필요도 없다.” 일견 타당한 말이다. 동네슈퍼가 ‘오로지’ 거대자본 탓에 무너졌다고 보기엔 과한 면도 없지 않다.

그럼에도 동네슈퍼를 지켜야 할 이유는 분명하다. 돈도 없고 배경도 없는 동네슈퍼 사장들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쟁하고 있다. 상대가 하필 재벌이니, 이보다 더 잔인한 ‘달걀로 바위치기’가 어디 있겠는가. 

골목상권이 무너지고 있다. 이대로라면 동네슈퍼의 씨가 싹 말라버릴지 모른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골목상권이 무너지고 있다. 이대로라면 동네슈퍼의 씨가 싹 말라버릴지 모른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이런 시장에선 불공정을 바로 잡을 룰을 만드는 게 정의다. 더구나 사회적 안전망이 부실한 상태에서 동네슈퍼를 비롯한 골목상권이 쇠락하면 사회적 비용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거대자본이 주장하는 ‘소비자 편익 향상’을 위해서라도 동네슈퍼 같은 유통채널이 필요하다. 소비자의 선택처가 다양해야 독과점의 횡포를 제어할 수 있어서다. 

「우리가 경제다」의 저자 김의철 네이처인터내셔널 상무(경제칼럼니스트)는 이렇게 꼬집었다. “건강한 생태계를 나누는 기준은 다양성이다. 생물종이 다양하면 생태계가 건강하단 평가를 받는다. 경제도 생태계다. 다양한 업태가 공정한 경쟁을 벌일 수 있는 시장을 만들어 줘야 한다.” 


#6 편편한 세상과 해답   

경제학자 로버트 프랭크과 필립 쿡은 자신들의 저서 「승자독식사회」에서 “승자가 모든 걸 차지한 시장에서의 경쟁은 비생산적인 소비와 투자를 초래한다”고 말했다. 그래, 거대자본이 할퀴고 간 우리 골목은 ‘비생산적인 곳’이 됐다. 작은 동네슈퍼는 몰락했고, 사회적 비용은 늘어났다. 이제 무얼 할 것인가. 아직도 답을 찾지 못했는가.   
이윤찬 더스쿠프 기자
chan4877@thescoop.co.kr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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