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웨이 변수와 국내 반도체의 미래

지난 5월 15일 미국 상무부가 ‘화웨이 제재안’을 꺼내들었다. 미국 기술을 사용 중인 기업은 그 누구라도 화웨이에 반도체를 공급해선 안 된다는 거다. 당장 화웨이의 반도체 제품을 수탁생산하고 있는 TSMC에 이목이 집중됐다. 일부에선 TSMC를 뒤쫓고 있는 삼성전자가 반사이익을 볼 거란 전망도 내놨다. 과연 그럴까. 더스쿠프(The SCOOP)가 미국의 화웨이 제재가 불러올 나비효과를 분석했다.

국내 반도체 업계가 미국의 화웨이 제재로 인한 반사이익을 얻을 거란 전망이 많다. 하지만 실제로 그럴 가능성은 낮다.[사진=뉴시스]
국내 반도체 업계가 미국의 화웨이 제재로 인한 반사이익을 얻을 거란 전망이 많다. 하지만 실제로 그럴 가능성은 낮다.[사진=뉴시스]

잠잠했던 반도체 시장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미국이 중국의 통신장비업체 화웨이를 향해 규제의 칼날을 뽑아든 게 발단이 됐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 5월 15일 화웨이를 겨냥한 제재안을 발표했다. “미국 기술을 이용해 제작한 반도체를 화웨이에 공급하려면 미국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얼핏 간단한 절차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어느 국가의 어떤 기업이든 미국 기술을 사용하고 있으면 화웨이에 제품을 공급해선 안 된다”는 엄포에 가까웠다.

미국이 화웨이를 겨냥해 제재 카드를 꺼내든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미국은 지난해 5월 화웨이를 블랙리스트에 올렸다. 화웨이가 미국 기업들과 거래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화웨이로선 치명적일 수 있는 제재였다. 화웨이는 세계 1위의 통신장비업체이자, 세계 2위의 스마트폰 제조업체다.

하지만 통신장비와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통신칩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등 핵심 반도체를 미국 기업인 인텔과 퀄컴으로부터 공급받았다. 미국 기업들과의 거래가 끊기면 통신장비와 스마트폰을 생산하지 못한다는 얘기였다.

[※참고 : 미국이 화웨이를 제재하는 표면적인 이유는 화웨이의 통신장비가 국가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점 때문이다. 하지만 속내엔 차세대 기술의 패권 경쟁에서 우위에 서기 위한 전략과 미중 무역전쟁을 둘러싼 정치적 문제 등이 얽혀 있다.]

하지만 미국의 첫번째 제재는 화웨이를 무너뜨리지 못했다. 화웨이가 자회사 하이실리콘을 통해 통신칩과 AP를 설계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화웨이는 세계 통신장비 시장에서 점유율 26.2%를 기록해 1위 자리를 지켰고,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세계 2위(15.6%)를 유지했다.

다만, 하이실리콘은 설계만 하는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업체ㆍFabless)다. 반도체를 생산하려면 설계도를 기반으로 반도체를 만들어주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ㆍFoundry) 업체가 필요하다. 미국 상무부가 지난 5월 추가 제재안을 꺼내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이실리콘이 개발한 설계로 화웨이에 반도체를 만들어준 건 세계 1위 파운드리 업체인 대만의 TSMC였다. 하지만 TSMC의 반도체 생산장비에는 미국산도 있다. TSMC가 미국의 제재를 따르면 화웨이는 반도체를 공급받을 수 없다는 얘기다. 

TSMC로선 미국의 경고를 무시하긴 어려울 공산이 크다. TSMC의 고객사 가운데 화웨이가 전체 매출의 14%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건 사실이지만, 미국엔 애플ㆍ엔비디아ㆍ퀄컴ㆍ브로드컴ㆍAMD 등 유수의 기업들이 고객사로 있기 때문이다. 

이들 기업이 TSMC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60%에 육박한다. TSMC가 미국 정부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게 실리적인 선택인 셈이다. 일부 외신에서 “TSMC가 화웨이로부터 더 이상 수주를 받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내용을 보도했는데, 충분히 가능성이 높은 얘기다.

문제는 미국의 화웨이 제재가 TSMC에만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란 점이다. 이어지는 연쇄 작용이 반도체 시장 전체를 뒤흔들어 놓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우리가 따져봐야 할 건 ‘화웨이 변수’가 국내 반도체 업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다. 전문가들은 대부분 ‘긍정론’에 무게를 싣는다. 화웨이가 TSMC를 대체할 만한 곳이 삼성전자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일견 일리 있는 주장이다. 화웨이가 원하는 반도체를 만들려면 7나노미터(㎚) 이하의 미세공정이 필요한데, 이정도 기술력을 가진 곳은 TSMC와 삼성전자뿐이다. 파운드리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힘을 쏟고 있는 삼성전자도 화웨이 물량을 확보하는 건 상당한 이득이다. TSMC와의 시장점유율 차이를 좁히고,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발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호재가 현실에서 나타날 가능성은 낮다. 삼성전자 역시 미국 기술을 활용하고 있어 제재로부터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구체적인 건 말할 수 없지만 반도체 업계에서 미국 기술을 쓰지 않는 곳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눈을 돌려 메모리반도체만 따져보면 ‘화웨이 변수’가 삼성전자에 손해일 수도 있다. 화웨이의 반도체 공급로가 막혀 스마트폰ㆍ통신장비 생산에 차질을 빚으면 메모리반도체 실적이 줄어들 수밖에 없어서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메모리반도체는 우리 표준으로 만든 제품이기 때문에 화웨이에 공급해도 문제가 없다”면서도 “다만, 이번 미국 제재가 제대로 먹혀서 화웨이가 제품 생산을 못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메모리반도체 매출이 단기적으로 감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화웨이가 생산에 차질을 빚어도 스마트폰ㆍ통신장비의 총 수요가 변하지 않으면 메모리반도체가 받는 영향은 단기적일 공산이 크다. 하지만 지금처럼 경기침체가 장기화한 상황에선 일시적인 손해도 아쉬울 수 있다.

김양팽 연구위원은 “화웨이 제품은 결국 다른 기업들의 제품으로 대체될 것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메모리반도체 매출에 변함이 없을 것”이라면서 “삼성전자의 경우 반도체 외에 스마트폰이나 통신장비 사업에선 되레 매출이 오를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화웨이 제재가 국내 반도체 업계엔 호재로 작용할 거란 전망이 많지만, 설득력이 떨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삼성전자도 미국 장비를 사용하고 있어 미국 제재로부터 자유롭지 않다.[사진=뉴시스]
삼성전자도 미국 장비를 사용하고 있어 미국 제재로부터 자유롭지 않다.[사진=뉴시스]

우리나라가 우려해야 할 건 또 있다. 이번 미국의 제재가 중국의 자급력을 높이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중국의 파운드리 업체 SMIC는 세계시장 점유율이 4.5%(2020년 1분기)에 불과하다. 미세공정 기술력도 떨어져 당장 화웨이가 원하는 반도체를 생산할 수도 없다. 하지만 지난해 미국의 1차 제재를 받은 이후 화웨이가 AP와 통신칩을 자체 설계한 이력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이번에도 그러지 못할 거란 보장은 없다.

업계 관계자들은 “중국이 외국기업으로부터 반도체를 공급받지 못하면 필사적으로 기술을 확보하려고 할 것”이라면서 “언젠가 자국 파운드리를 쓰는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우려가 현실이 되면 국내 기업들엔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미국의 화웨이 제재가 불러올 나비효과를 섣불리 여겨선 안 된다는 얘기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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