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덩이처럼 불어난 가계부채
저축은행, 대부업체 연체율 상승

국내 금융회사의 대출 연체율이 꿈틀거리고 있다. 코로나19로 불어난 가계부채가 한국경제에 부메랑을 날리기 시작했다는 방증이다. 더 큰 문제는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없다는 것이다. 빚을 갚으려면 소득이 증가해야 하지만 경기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어서다. 한국경제의 고질병인 가계부채의 뇌관에 또 불이 붙었다.

올 1분기 우리나라의 가계부채가 1611조3000억원을 기록했다.[사진=뉴시스] 

2015년 6월 11일 한국은행이 1.75%였던 기준금리를 1.5%로 0.25%포인트 인하했다.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MERS)의 유행으로 경기침체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었다. 메르스가 몰고온 소비 감소세 등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금리인하였다.

문제는 금리인하로 인한 부작용이었다. 역시 가계부채가 문제였다. 2015년 1분기 국내 가계부채 총액이 1099조3000억원으로 늘어난 탓이었다. 전문가들은 가계부채가 금리 인상기에 경기 회복을 가로막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의 전망은 틀리지 않았다. 2016년 1342조5000억원, 2017년 1450조8000억원, 2019년 1536조7000억원으로 증가한 가계부채는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불리며 위기 때마다 경제를 괴롭히는 손톱 밑 가시가 됐다.

그로부터 5년여가 흐른 2020년 3월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한은은 이번에도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치인 0.75%로 낮췄다.[※참고 : 한은은 5월 28일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현재의 0.75%에서 0.50%로 하향 조정했다.] 코로나19발 경기침체 가능성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였다. 국내 기준금리가 0%대에 들어서는 것은 사상 처음이었다.

이번에도 문제는 가계부채다. 먼저 가계부채 현황을 살펴보자.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1분기 기준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1611조3000억원을 기록했다. 2015년 1분기와 비교해 512조원(46.5%) 증가한 역대 최대치다. 지난해 말 1600조2000억원보다 11조원 증가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까지 발생하면서 가계부채는 가파르게 증가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실제로 코로나19가 본격화한 3월 은행의 가계대출은 9조6000억원이나 증가했다. 4월에도 4조9000억원 늘어났다. 3·4월 두달 만에 13조원 넘게 빚이 늘어난 셈이다.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의 대출도 크게 증가했다. 4월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금융지원이 집중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 기간 은행의 기업대출은 27조9000억원으로 3월 18조7000억원 대비 9조2000억원이나 증가했다.

당연히 시장에선 가계부채를 걱정의 목소리가 나왔다. 김상봉 한성대(경제학) 교수는 “코로나19 이후 늘어난 빚을 어떻게 해소하느냐가 큰 문제가 될 것”이라며 “한국 경제가 L자형 침체에 빠지면 연체율이 가파르게 상승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빚을 갚기 힘든 상황이 오거나 연체율이 올라가면 부동산 등 자산을 매각할 수밖에 없다”며 “가계부채 문제가 주택시장으로 확산하면 사태는 심각해진다”고 우려했다.

연체율 상승 등 부실의 징조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4월 국내 주요 은행 4곳(신한은행·우리은행·KB국민은행·KEB하나은행)의 개인·중소기업 대출 연체율이 일제히 상승했다. 가계대출 연체율은 3월 0.25%에서 0.27%로 0.02%포인트 상승했고, 중소기업대출 연체율은 0.43%에서 0.47%로 0.04%포인트 높아졌다. 국내 은행의 원화대출 연체율이 2월 0.43%, 3월 0.39%로 안정세를 보였던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코로나19로 대출이 증가하면서 연체율이 상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코로나19의 파급효과가 본격화하는 2~3분기 연체율이 더 높아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소상공인을 시작으로 부실이 커질 수 있다”며 “현재로선 리스크 관리를 통해 부실 가능성에 대비하는 수밖에는 없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저소득·저신용 차주가 몰려있는 저축은행과 대부업체의 연체율이 상승세를 타고 있다는 것이다. 금감원의 ‘2020년 1분기 저축은행 영업실적’에 따르면 저축은행의 1분기 대출 연체율은 4.0%로 지난해 말 기록한 3.7%와 비교해 0.3%포인트 상승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개인사업자의 대출 연체율이 지난해 말 4.3%에서 4.6%로 상승했고, 가계 신용대출 연체율도 3.8%에서 4.1%로 올랐다. 서민들이 마지막으로 문을 두드리는 대부업체의 대출 연체율은 2018년 말 7.3%에서 지난해 6월 8.3%로 1.0%포인트나 증가했다. 저축은행 업계 관계자는 “부실 가능성에 대비해 대손충당금을 쌓고 있는 저축은행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자영업 부진, 서비스업 등 일자리 감소 등이 확산하고 있어 연체율은 오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난제는 또 있다. 가계부채가 증가하고 연체율이 치솟아도 이를 해결할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빚을 갚기 위해서는 소득이 증가해야 하지만 경기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한은은 5월 28일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0.2% 전망했다. 한은의 전망이 현실화하면 외환위기가 발생했던 1998년 이후 22년 만의 마이너스 성장이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일자리까지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사업체 노동력 조사’에 따르면 4월 숙박·음식점업과 교육서비스업 종사자가 각각 전년 동월 대비 16만6000명, 9만3000명 감소했다. 임시일용직 종사자는 지난해 4월 181만9000명에서 167만4000명으로 14만5000명 감소했다. 코로나19의 타격이 취약한 계층에서부터 나타나고 있다는 얘기다.

김영훈 바른사회시민회의 경제실장은 “가계부채와 연체율 문제는 빚을 갚을 수 있는 소득이 늘어나지 않는 이상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라며 “지금은 기준금리가 사상 최저수준을 기록하고 있지만 상승세로 돌아서면 부채 문제는 더 심각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갑작스러운 기준금리 인상을 막고, 정책금융은 상환을 유예하는 식으로 부채 문제가 연착륙할 수 있게 시간을 버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을 것”이라며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돌리는 것과 같은 꼴”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이후 찾아올 부채 문제에 미리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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