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up 앵커로직스의 도전❶] “치료제 기다릴 수 없었다” 남편이 창업한 이유
[Start-up 앵커로직스의 도전❶] “치료제 기다릴 수 없었다” 남편이 창업한 이유
  • 김미란 기자
  • 호수 416
  • 승인 2020.11.26 12: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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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질환과 스타트업

6000여종. 희귀질환의 종류다. 이유를 모른 채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 문제는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는 한 희귀질환은 한사람의 일생을 송두리째 빼앗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희귀질환에 걸린 아내를 위해 ‘균형조끼’를 개발한 넬슨 안 앵커로직스 대표도 이런 이유로 스타트업 창업을 결정했다. 바이러스 치료제(코로나19 백신)가 없어 일상생활이 완전히 바뀌어버린 요즘, 시사하는 바가 많은 이야기다. 

국내 희귀질환 환자가 80만명에 이른다. 현재로썬 치료제가 없는 희귀질환 역시 많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국내 희귀질환 환자가 80만명에 이른다. 현재로썬 치료제가 없는 희귀질환 역시 많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유병有病인구(환자)가 2만명 이하이거나 진단이 어려워 유병인구를 알 수 없는 질환.” 희귀질환에 대한 정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국내 희귀난치질환 환자는 80만여명인데, 밝혀진 것만 6000여종에 달한다. 

낯선 질환이 자꾸 나타나고, 이로 인해 고통받는 환자와 가족들이 증가하자 국회는 2015년 12월 ‘희귀질환관리법’을 제정했다. 이듬해 12월부터 시행 중인 이 법의 목적은 ‘희귀질환으로 인한 개인적·사회적 부담을 줄이고, 국민의 건강 증진과 복지 향상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법에 따르면 정부는 5년마다 희귀질환관리를 위한 종합계획을 수립해야 하고, 예방·진단·치료를 위해 연구·개발사업을 수행해야 한다. 국가와 지자체는 희귀질환자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진단·치료에 드는 비용을 예산 또는 국민건강증진기금에서 지원할 수 있다. 

하지만 관련법이 버젓이 존재함에도 희귀질환 관리체계가 미흡하다는 지적은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그러자 정부는 2018년 “희귀질환자를 지원하는 시스템을 강화하겠다”며 희귀질환 927개를 국가관리대상으로 지정했다. 아울러 ‘희귀질환 지원대책’도 발표했는데, 이로 인해 외래시 30~60%, 입원시 20%였던 건강보험 요양급여 본인부담금이 10%로 경감됐다. 일정 소득(중위소득 120%) 기준 이하의 희귀질환자(건강보험가입자)에겐 의료비 본인부담금도 지원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2600여명의 희귀질환자가 본인부담금 없이도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됐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치료법과 치료제가 있을 때의 얘기다. 희귀질환 중엔 아직까지 치료제를 개발하지 못한 것도 많다. 희귀질환의 제도적 사각지대가 태생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건데, 넬슨 안(Nelson An) 앵커로직스(Anchor Logics) 대표가 스타트업을 창업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의 아내는 2017년 미국의 UCLA대학병원에서 ‘척수소뇌실조증(SCA·Spinocerebe llar Ataxia)’ 진단을 받았다. “곧 휠체어에 의지하게 될 것”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아든 남편 안 대표는 백방으로 수소문했지만 아내의 병을 치료할 방법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내의 병은 희귀질환으로 현재 확실한 치료법이 없다.

“척수소뇌실조증은 여러 가지 증상이 나타납니다. 일단 몸의 균형이 무너져 반듯하게 걷질 못합니다. 그러다보면 넘어져서 부상도 많이 당하고요. 언어 장애도 옵니다. 제 아내 같은 경우엔 복시(물체가 이중으로 보이는 것) 때문에도 많이 힘들어했어요.”

한 업체에서 퇴행성 뇌질환 환자들을 위한 밸런스웨어(조끼)를 만들었지만 그에겐 차례가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안 대표는 어떻게든 아픈 아내에게 조끼를 입혀주겠다는 생각 하나로 균형조끼를 만들었다. 모든 과정이 시행착오였다. 처음 만든 조끼는 아내의 몸에도 맞지 않았다. 생고무를 잘라 균형을 맞추는 무게추를 만든 탓에 역한 냄새까지 났다. 환자인 아내를 오랜 시간 세워놓고 테스트하는 것도 곤혹스러웠다. 아내는 때때로 “힘들다”며 손사래를 쳤다. 

임상실험으로 효과 입증

그러던 어느 날 거짓말처럼 ‘센서로 움직임을 측정해보자’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처음엔 서 있는 상태에서 로드셀 센서(하중을 측정하는 센서)로 균형을 측정했어요. 그런데 아들이 ‘걷는 사람 균형을 잡아주는 조끼인데 왜 서서 측정을 하느냐’고 하더라고요. 아차 싶었죠. 방법이 없을까 고심하던 차에 ‘모션센서’가 떠올랐습니다.”

이후 몇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모션센서를 활용하는 균형조끼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불편한 조끼 대신 몸에 맞는 균형조끼를 입게 된 아내의 움직임은 자유로워졌다. 그런 아내를 보고 안 대표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창업을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정말 쉽지 않은 과정이었어요. 균형조끼가 보행 장애에 효과가 있다는 걸 알게 됐지만 대상이 아내 한명이었기 때문이죠. 좀 더 많은 시험을 해보면 어떨까란 생각을 하던 중 기회가 왔어요.” 안 대표는 지난해 6월과 8월 두차례에 걸쳐 균형조끼의 효과를 가늠해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당시 연세대 원주의과대학에서는 척수소뇌실조증 환자 6명을 대상으로 균형조끼 효과 임상실험을 했는데, 놀랍게도 결과는 ‘긍정적’이었다. “균형조끼가 척수소뇌실조증 환자의 균형을 개선하는 데 긍정적인 효과를 보였다(연세대 원주의과대학 홍지선 외 7명 논문·2020).” 

“당시 임상실험에 참여한 교수님께서 ‘내가 의사로서 척수소뇌실조증 환자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는데 결과가 좋으니 한번 판매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창업하게 됐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지난해 12월 창업한 앵커로직스가 제작·판매하고 있는 균형조끼는 모션센서를 이용하는 시스템이다. 몸에 센서를 부착하고 걸으면 앵커로직스가 개발한 소프트웨어(Propriologics)가 보행 데이터를 바탕으로 균형조끼의 어느 위치에 어느 정도의 무게감이 필요한지를 알려준다. 그럼 그걸 토대로 조끼에 메탈 재질의 고무 조각을 배치하면 된다. 스판덱스 소재(안감은 벨크로)로 만들어 몸에 밀착돼 속옷처럼 입고 일상생활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더 많은 사례를 쌓아야 한다. “앵커로직스 창업 이후에 100명 정도 테스트를 했고, 그중 60명이 균형조끼를 구매했습니다. 착용해보고 싶다는 분들은 그보다 훨씬 더 많아요. 테스트 영상이나 후기를 보고 파킨슨병 등 보행 장애를 겪고 있는 분들이 구매 문의를 해오시거든요. 하지만 아직까진 척수소뇌실조증 환자로만 한정하고 있습니다. 다른 질환 환자들에게도 도움이 될지 확신이 서질 않거든요. 괜히 그분들에게 헛된 희망만 안겨드릴 순 없잖아요.”

사실 안 대표의 목표는 ‘균형조끼를 입을 일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건 다른 의미로 척수소뇌실조증을 치료할 수 있는 치료제가 개발됐다는 말이기도 하다. “치료제가 개발되기 전까진 열심히 이 일을 해야죠. 다만 하루라도 빨리 치료제가 개발됐으면 좋겠습니다. 아픈 사람들을 위해 균형조끼를 만들고 있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아픔’이 해소돼야 한다는 겁니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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