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up 앵커로직스의 도전❷] “일어서면 비틀” 아픈 아내를 위한 남편의 조끼
[Start-up 앵커로직스의 도전❷] “일어서면 비틀” 아픈 아내를 위한 남편의 조끼
  • 김미란 기자
  • 호수 416
  • 승인 2020.11.27 18: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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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넬슨 안 앵커로직스 대표

인생이 계획대로 흘러가면 좋겠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게 또 인생이다. 넬슨 안(Nelson An·48) 앵커로직스 대표의 인생도 그렇다. 어느 날 아내가 듣도 보도 못한 희귀병에 걸렸고, 그런 아내를 위해 그는 낯선 세계에 발을 들였다. 아내를 위해 시작한 일이지만 이제는 더 많은 이들에게 힘을 보태고 싶다는 그의 창업기를 들어봤다. 

넬슨 안 대표는 “척수소뇌실조증 환우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말했다.[사진=천막사진관]
넬슨 안 대표는 “척수소뇌실조증 환우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말했다.[사진=천막사진관]

아내는 특수학교 교사였다. 아픈 아이들과 함께하는 그 일을 누구보다 사랑했다. 그런 아내가 언젠가부터 이상해졌다. 걸음걸이가 느려지고, 걸을 때마다 온몸이 비틀거렸다. 처음엔 이석증인 줄만 알았다. 치료만 잘하면 다시 좋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석증 전문의사의 말은 달랐다. “더 큰 병원에 가보세요.” 

얼마 후 아내는 한 대학병원에서 ‘척수소뇌실조증(SCA)’ 진단을 받았다. [※참고: 척수소뇌실조증은 신경퇴행성 질환이다. 점점 운동능력이 저하되고 발음이 부정확해지며 씹거나 삼키는 게 어려워진다. 유전성 질환으로 현재까지 확실한 치료법이 없다.] 운동실조증 테스트(SARA test)에서 7점(걷기가 불가능할 땐 10점)을 받은 아내에게 의사는 “곧 휠체어에 의지하게 될 것”이란 진단을 내렸다.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이토록 심성이 착한 사람에게 왜 이런 병이 생겼을까.” 하루하루 고통이 더해지는 아내를 위해 추나·한방치료 등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지만 도통 듣질 않았다. 수소문 끝에 퇴행성 뇌질환 환자들을 위해 만들었다는 밸런스웨어(조끼)를 알게 됐다. 

하지만 아내에겐 그 밸런스웨어를 착용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그걸 착용하기 위해선 제품을 개발한 물리치료사에게 진단과 처방을 받아야 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전화연락조차 닿지 않았어요.” 무기력하게 아내의 고통을 지켜봐야 하다는 사실에 절망하던 어느 날, 중학생 아들이 그의 손을 잡았다. “아빠, 우리가 만들어 봐요.”

아내의 몸에 맞는 균형조끼를 만들기 위해 아들과 차고에서 몇번의 계절을 보냈다. 근육과 뼈의 구조를 공부하면서 수많은 테스트를 거친 끝에 아내만을 위한 균형조끼를 만들어냈다. 결과는 기적에 가까웠다. 몇걸음만 걸으면 이내 비틀거리던 아내는 이제 혼자서도 일상생활이 가능하다. 쇼핑을 하고 운동도 한다. “아내가 그간 이상한 균형조끼를 많이도 입고 다녔습니다. 처음엔 생고무로 만들어서 고무냄새가 진동했는데도 남편과 아들의 선물이라며 열심히 입고 다녔죠.” 운동실조증 테스트 점수도 7점에서 4점, 그리고 지금은 2점까지 내려왔다. 아내의 얼굴에도 다시 미소가 번졌다. 

“균형조끼로 퇴행성 질환을 완전히 치료할 순 없습니다. 아내도 조끼를 입지 않으면 여전히 비틀거립니다. 하지만 일상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보행 장애인들에겐 큰 희망이죠. 더 많은 분들이 그 희망을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넬슨 안 앵커로직스 대표가 보행 장애인을 위한 균형조끼 제조업체를 창업한 이유다.

✚ 미국에서 균형조끼를 개발하셨다고요?
“몇년 전에 미국으로 이주해 현재 가족들과 살고 있습니다. 몇년 지내다 돌아올 생각이었는데 예상보다 오래 있게 됐네요.”

✚ 아내의 척수소뇌실조증도 미국에서 처음 발병한 건가요?
“네. 아내가 한국에서 특수교사로 일했는데 그 일을 무척 좋아했어요. 미국에서도 그 일을 계속하고 싶어 해 거기서 초등학교 특수교사 자격증을 땄거든요. 대학원에도 진학해 특수교육을 전공하고 있었는데 1년 만에 척수소뇌실조증이 발병해서 그만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휴직하고 갔던 한국 학교에서도 이후에 퇴직을 했고요.”

✚ 많이 놀라셨겠어요.
“아내가 앓고 있는 병은 소뇌의 기능이 점점 퇴행해 몸이 균형을 잃는 게 가장 큰 특징입니다. 처음엔 비틀거리며 걷다가 이내 지팡이에 의존하고, 결국엔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되죠. 그 흔들림을 잡아보기 위해 아들과 함께 균형조끼를 개발했어요.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지난해 프로토타입 균형조끼가 나왔고요.”

✚ 균형조끼는 어떤 원리인가요?
“현재 만들고 있는 제품은 모션센서를 몸에 부착하면 컴퓨터 프로그램이 몸의 흔들림을 측정해 그걸 토대로 각자에 맞는 조끼를 제작하는 시스템입니다. 쉽게 말하면 벨크로 조끼(일명 찍찍이 조끼)에 인체에 무해한 고무를 달아 몸의 균형을 맞추는 거죠. 착용하는 사람에 따라 붙여야 하는 고무의 무게와 위치가 달라서 주문제작 시스템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 미국에서 균형조끼를 개발했는데, 창업을 한국에서 진행한 이유가 있나요?
“미국에 있을 때 균형조끼를 개발하게 된 사연과 그간의 과정들을 영상으로 만들어서 유튜브에 올렸거든요. 그걸 보신 분들이 하루에도 몇통씩 메일을 보내셨어요. ‘언제 제품을 만드느냐’ ‘언제 한국에 올 거냐’고요. 그걸 보고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을 주고 싶어 창업을 마음먹었습니다. 현실적인 이유도 좀 있었고요.”

✚ 현실적인 이유요?
“제가 개발한 균형조끼가 보행 장애인을 위한 제품이거든요. 미국에서 이 제품으로 창업을 하려니까 물리치료사 자격증이 있어야 하는 등 조건이 꽤 까다롭더라고요. 혹시나 한국에선 가능할지 궁금해서 식약처와 보건복지부에 문의해봤는데, ‘공산품으로 판매할 수 있다’는 답을 받아 한국에서 창업하게 됐습니다. 한국 정부가 스타트업에 지원해주는 많은 제도들도 매력적으로 느껴졌고요.”

그는 한국에서부터 줄곧 특허컨설턴트로 일했다. 기업이 특허를 출원하거나 소송이나 분쟁에 휘말렸을 때 컨설팅을 해주는 일이었다. 그는 아내 발병 후 잠시 본업을 놓고 앵커로직스를 창업했다.

✚ 지원을 좀 받으셨나요?
“초기창업 지원금을 최대 1억원까지 지원해주는 제도가 있다기에 신청했는데 서류심사에서 탈락했습니다.”

✚ 이유는요?
“사업성이 없대요.”

✚ 사업성이요?
“네. 대다수의 사람을 위한 건 아니니까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싶으면서도 단순히 사업적인 측면으로만 평가하는 게 아쉽더라고요. 척수소뇌실조증은 알고 보면 무척 잔인한 병이에요. 몸의 균형은 무너지는데 정신은 말짱하거든요. 자신의 몸이 뜻대로 컨트롤되지 않아 괴로워하는 분들이 많아요. 그래서인지 자살률이 꽤 높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도움이 돼주고 싶어서 창업을 했는데, 저도 사람인지라 사업성만으로 평가할 땐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네요.”

✚ 지난해에 임상실험을 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네. 원주 세브란스병원에서 임상실험을 했어요. 다행히 결과가 괜찮아서 관련 논문도 발표됐고요. 하지만 어디까지나 척수소뇌실조증에만 해당하는 거잖아요. 다른 질환에는 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거 같습니다. 우선은 데이터를 더 많이 쌓는 게 목표입니다. 그렇게 되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클라우드 시스템을 만들 생각입니다.”

✚ 클라우드 시스템이요?
“균형조끼 만드는 덴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아요. 컴퓨터 프로그램을 몇 시간만 공부하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제 아내 조끼는 요즘 딸아이가 만들어주고 있기도 하고요. 지금은 데이터가 많이 쌓이지 않아서 힘들겠지만 나중에 데이터가 훨씬 더 쌓이면 클라우드 시스템으로 만들 겁니다. 사용료를 내면 누구나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입력해 균형조끼를 만들 수 있도록 말이에요. 그렇게만 된다면 전 세계 어느 누구에게나 보급할 수 있게 되겠죠. 더 많은 분들이 앵커로직스의 프로그램을 활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바로 제가 창업한 이유니까요.”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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