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현의 컴플라이언스 경영

골드만삭스는 컴플라이언스 시스템이 잘 갖춰진 것으로 유명하다. 사업 전반의 리스크를 관리하는 글로벌 컴플라이언스 부서도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골드만삭스는 지난 10월 미국 해외부패방지법(FCPA) 최고 벌금액의 주인공이 됐다. 왜일까. 

골드만삭스는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FCPA 최고 벌금액을 갈아치웠다.[사진=연합뉴스]
골드만삭스는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FCPA 최고 벌금액을 갈아치웠다.[사진=연합뉴스]

월스트리트는 미국 뉴욕시 맨해튼 남부에 있는 거리다. 뉴욕증권거래소(NYSE)와 대형 금융기관이 몰려 있어 세계 금융시장의 중심지로 불린다.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 본사도 이곳에 있다. 1896년 작은 가족기업으로 출발한 골드만삭스는 세계를 움직이는 최대 금융회사로 성장했다. 미국 50대 경영대학원 졸업생들이 가장 입사하고 싶은 기업으로도 손꼽힌다. 

골드만삭스는 뉴욕 본사 외에도 런던ㆍ홍콩ㆍ말레이시아 등 세계 곳곳에 거점을 두고 있다. 지난해 기준 자산 총액이 9920억 달러(약 1103조원)에 달할 정도다. 코로나19도 골드만삭스의 위용을 꺾지 못했다. 올해 2분기에 24억2000만 달러의 순이익을 벌어들였는데, 1년 전과 비교했을 때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잘나가는 골드만삭스도 피하지 못한 게 있다. 바로 해외부패방지법(FCPA)이다. 말레이시아에서 부패 스캔들에 가담한 혐의를 받은 골드만삭스는 지난 10월 FCPA 위반 사실을 인정하며 33억 달러(약 3조6666억원)의 벌금을 내기로 미국 정부와 합의했다. 여기엔 미국 법무부가 부과한 형사벌금 23억 달러, 미국 증권거래위원회가 매긴 민사벌금 4억 달러, 그리고 추징금 6억680만 달러가 포함돼 있다. 

이는 FCPA 역대 최고 벌금액이다. 독일 전기ㆍ전자기업 지멘스가 2008년 이후 8억 달러로 벌금 순위 1위를 유지해왔는데, 최근 3년간 최고 벌금액이 연신 뒤바뀌고 있다. 특히 프랑스 항공기 제조기업 에어버스가 지난 1월 기록한 20억 달러는 좀처럼 깨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지만 골드만삭스가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갈아치웠다. 

더구나 골드만삭스가 지급해야 할 벌금은 그뿐만이 아니다. 말레이시아 정부에 내야 할 벌금 39억 달러, 영국ㆍ싱가포르ㆍ홍콩에 지급해야 하는 합의금 6억 달러까지 합하면 총 벌금이 78억 달러(약 8조6665억원)에 달한다.

그렇다면 코로나19에도 꿈쩍 않던 골드만삭스가 막대한 벌금을 물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말레이시아 최악의 부패 스캔들로 불리는 ‘1MDB 스캔들’에 연루됐기 때문이다. 1MDB를 풀어쓰면 ‘말레이시아 개발 유한회사’라는 뜻이다. 나집 라작 전 말레이시아 총리가 경제개발 사업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며 2009년에 설립한 국영 투자기업이다. 

하지만 실상은 정부의 공적자금을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하는 통로였다. 골드만삭스는 이 회사를 설립하는 과정에 참여했고, 1MDB의 채권 발행과 판매를 위한 자문을 제공했다. 

문제는 나집 전 총리가 45억 달러가 넘는 돈을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기소되면서 발생했다. 말레이시아 법원은 지난 7월 1MDB 스캔들과 관련, 나집 전 총리의 부패 혐의를 인정해 징역 12년형을 선고했다. 후폭풍은 골드만삭스에도 몰아쳤다. 골드만삭스는 2012년부터 5년간 제3중개인을 통해 말레이시아와 아부다비 측 고위 관료들에게 16억 달러가량의 뇌물을 뿌렸기 때문이다. 

아울러 1MDB가 조달한 자금이 유용될 것을 알면서도 채권 발행을 대행하고 6억 달러의 수수료를 챙긴 혐의도 받았다. 결과적으로 보면 골드만삭스는 6억 달러의 수수료를 챙기고서 78억 달러의 벌금을 토해내게 된 셈이다.

컴플라이언스(complianceㆍ기업의 능동적인 준법ㆍ윤리경영 활동) 시스템이 여느 회사 못지않게 잘 구축된 것으로 알려진 골드만삭스에선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답은 ‘컴플라이언스 사각지대’에 있다. 통상 기업의 고위 경영자나 인사팀, 감사팀은 통제가 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번 사건도 마찬가지다. 1MDB 스캔들의 중심엔 팀 라이스너 골드만삭스 동남아 사업부 대표와 응 총 화 골드만삭스 말레이시아 투자은행 대표가 있었다. 

특히 팀 라이스너 대표는 골드만삭스의 ‘슈퍼스타 트레이더’로 불렸던 인물이다. 그만큼 컴플라이언스의 통제에서 쉽게 벗어났을 가능성이 높다. 골드만삭스의 전 아시아 최고 은행가는 “팀 라이스너가 컴플라이언스 부서 모르게 부정행위를 은폐할 수 있었던 데는 투자은행의 비밀유지 문화가 한몫했다”고 지적했다. 골드만삭스 사건은 고위 임원들로부터 발생하는 리스크를 통제할 장치를 갖추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미국 법무부의 집행 형태는 ‘선先직원 기소, 후後법인 합의’다. 우선 부정행위를 한 임직원을 기소한다. 그 이후 법인과 별도로 합의해 막대한 벌금을 부과한다. 미국 FCPA가 제정된 1977년부터 지금까지 쌓인 벌금이 200억 달러를 훌쩍 넘는 이유다.

게다가 그중 90%는 최근 10년간 집행됐다. 최고 벌금 기록 역시 지난 3년간 계속해서 경신되고 있다. 갈수록 벌금액이 높아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FCPA를 위반해 처벌받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통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다.  

골드만삭스는 이사회를 통해 전현직 고위 경영진의 급여를 회수하기로 결정했다. 돌려받는 급여를 모두 합하면 1억7400만 달러에 이른다. 천문학적 규모의 벌금을 내기로 합의한 데 따른 내부징계인 셈이다. 결국 컴플라이언스 실패는 경영자의 책임으로 돌아간다. 탐욕의 종착역은 가혹한 처벌뿐이다. 

장대현 한국컴플라이언스아카데미㈜ 대표
changandcompany@gmail.com | 더스쿠프

정리=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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