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시 투기에 ‘직장 찬스’ 썼나
부동산 투자 서민에겐 언감생심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들의 신도시 투기 의혹이 일파만파로 확산하고 있다. LH 임직원들은 개발 호재로 돈을 벌기 위해 미공개 정보를 활용했다. LH를 해체하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이유다. 그럼에도 LH 내부에선 여전히 “우리가 뭘 잘못했는가”“LH 직원은 부동산에 투자하면 안 되나”란 말이 새어나온다. 과연 이래도 되는 걸까. 더스쿠프(The SCOOP)가 LH 신도시 투기와 기울어진 운동장을 취재했다.

소득이 적고 정보가 없는 서민에겐 부동산 투자는 그림의 떡이다.[사진=뉴시스]
소득이 적고 정보가 없는 서민에겐 부동산 투자는 그림의 떡이다.[사진=뉴시스]

‘아빠 찬스’ ‘엄마 찬스’에 이어 이번엔 ‘직장 찬스’ 논란이 일고 있다. 신도시 개발 정보를 활용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이 한둘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고 있어서다. 이들은 신도시 지정 발표가 이뤄지기 전에 줄줄이 땅을 사들였다. 차명거래도 서슴지 않았다. 그런데도 ‘뭐가 문제냐’고 되묻는 LH 관계자는 여전히 적지 않다. 

“LH 직원이라고 부동산 투자하지 마란 법이 있냐”는 불만을 내부게시판에 올린 직원까지 나왔을 정도다. 이들의 주장처럼 정말 LH 직원들의 신도시 투기 행위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걸까. 우리가 LH 직원의 한평과 일반인의 한평을 비교해본 이유가 여기에 있다. 

■LH 직원의 한평 = 장석범(가명ㆍ45)씨는 LH에서 16년째 일하고 있다. 장씨의 연봉은 8100만원(2020년 알리오 공시 기준)이다. LH 남자 직원 1인당 평균 연봉인 8630만원보다 조금 적지만 다른 직장인과 비교하면 그렇지 않다. 고용노동부의 ‘2019년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 자료에 따르면 직장인 상위 10%의 연봉 하한선은 6950만원이다. 장씨의 연봉이 상위 10% 수준인 셈이다. 

장씨는 560만원의 월급을 받아 290만원을 소비로 지출한다. 여유자금은 270만원이다.[※참고 : 월 소비지출은 지난해 4분기 가계동향 조사 결과의 ‘소득 5분위별 소득 및 소비지출’ 전체 평균을 적용했다. 지난해 4분기 소득 5분위의 소득과 지출 평균은 각각 516만원, 290만원이다.] 여윳돈이 많으니 투자를 할 때도 부담이 덜했다. 

장씨에게 첫 기회가 찾아 온 건 2014년이다. 당시 아파트 공급과잉을 우려한 정부는 부동산 규제를 줄줄이 풀었다. 수도권의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기존 50%에서 70%로 완화한 건 대표적 사례다. LH 내부에도 “공급이 넘치기 때문에 당분간 대규모 개발 계획은 없을 것”이란 말이 공공연하게 떠돌았다. 

장씨는 그해 9월 회사에서 가까운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있는 A아파트를 3억8000만원에 매입했다. 이중 1억3000만원은 기존에 살고 있던 전셋집 보증금으로 마련했고, 은행에서 2억원(30년 만기ㆍ이자율 3.6%)을 빌렸다. 나머지는 여유자금 5000만원을 활용했다.

 

매월 갚아야 할 원리금이 90만원에 이르지만 장씨에겐 부담스러운 수준이 아니다. 원리금(90만원)을 빼더라도 180만원이 남기 때문이다. 장씨의 집은 예상대로 가파르게 상승했다. 2018년 A아파트의 매매 가격은 7억8000만원을 호가했다. 아파트를 산지 4년 만에 가격이 두배로 뛰었다.

아파트 투자에 성공한 장씨는 다음 투자대상을 물색했다. 그러다 2018년 정부가 3기 신도시 개발에 나선다는 걸 알게 됐다. 신도시 개발 소식에 대상지였던 경기도 광명ㆍ시흥, 김포, 고양, 하남 등의 땅값이 들썩였다. 하지만 그해 12월 정부가 발표한 3기 신도시에서 광명ㆍ시흥이 탈락하면서 장씨는 고민을 시작했다. 

부동산 가격이 크게 오른 탓에 신도시 지정 지역에 투자해도 큰 이익을 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이때 장씨에게 ‘직장 찬스’가 날아왔다. 장씨는 ‘돌고 돌아 다시 시흥이 신도시 개발지가 될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고, 곧장 시흥시에 베팅했다. 

2019년 6월 경기도 시흥에 있는 땅 1001.6㎡(약 303평)를 3억8000만원에 사들였다. 3.3㎡(1평)당 가격은 125만원이었다. 이중 2억원을 은행(이자율 3.5%ㆍ만기일시상환)에서 빌려 60만원의 이자가 추가로 발생했다. 하지만 장씨는 신경 쓰지 않았다. 이자를 내고도 여전히 120만원의 여유가 있었다. 

장씨가 산 땅이 신도시 개발 구역으로 지정될 것이라는 확실한 정보도 있으니 걱정따윈 붙들어 매도 괜찮았다. 장씨는 토지 보상액을 높이기 위해 희귀 품종의 나무를 심는 수고스러움도 마다하지 않았다. 3.3㎡당 200만원의 보상만 받아도 2억2000만원(200만원-125만원×303평)이 넘는 차익을 남길 수 있으니 그 정도는 수고도 아니었다. LH 직원 장씨 베팅을 투자가 아닌 투기로 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서민의 한평 = 경기도 시흥시 은행동에 거주 중인 김광민(가명ㆍ45)씨는 올해로 근속 16년을 맞은 중소기업 과장이다. 9년 전 결혼해 토끼 같은 딸 하나를 두고 있다. 나고 자란 서울을 떠나 시흥으로 이사 온 건 결혼하고 나서다. 전세금 1억6000만원을 대출받아 71.9㎡(약 22평)짜리 아파트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LH 직원들의 3기 신도시 땅 투기 의혹이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다.[사진=뉴시스]
LH 직원들의 3기 신도시 땅 투기 의혹이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다.[사진=뉴시스]

누구나 그렇듯 김씨도 어엿한 내집을 마련하는 게 가장 큰 목표였다. 주변에선 투자를 권했지만 그 방면에 남다른 재주가 없던 김씨에겐 그저 알뜰하게 돈을 모으는 게 재테크의 전부였다. 쉽지만은 않았다. 330만원이 조금 넘는 김씨 월급에 가계지출로 250만원가량을 쓰고 나면 매달 저축할 수 있는 돈은 100만원도 채 되지 않았다. 결혼 초만 해도 간호사인 아내가 벌어오는 돈이 있었지만, 아이를 가진 뒤론 그마저도 뚝 끊겼다.

2014년 8월께, 내집 마련의 기회는 뜬금없이 찾아왔다. 당시 정부가 대출규제를 완화하면서 자금 부담이 줄었다. 서울ㆍ수도권의 LTV는 기존 50%에서 70%로 높아졌다. 딸을 낳고 내집 욕심이 커지던 시기였기 때문인지 생각이 복잡해졌다. 마침 이듬해 4월 공공주택지구였던 시흥이 특별관리지역으로 지정됐다는 소식이 김씨를 자극했다. 각종 미디어에서 “개발 호재가 불 것”이라고 연신 떠든 탓이었다. 잘만하면 집값 상승을 기대해볼 수도 있었다.

당시 김씨가 알아본 은행동의 84.7㎡(약 26평)짜리 B아파트 매매가격은 3억3200만원. 2억원가량은 주택을 담보로 대출받고 남은 1억원 남짓은 모아둔 목돈과 여기저기서 끌어모으면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고민 끝에 김씨는 집을 사지 않기로 결정했다. 돈을 마련하는 것까진 어렵지 않았지만, 막상 매달 상환해야 할 원리금을 생각하니 생활이 너무 빠듯할 것 같았다. 당시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평균 금리는 3%대, 신용대출 금리는 4%대였다. 매달 대출이자로만 70만~80만원을 내고 나면 김씨가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극히 적었다. “차라리 여유 있게 살면서 몇 년만 돈을 더 모은 다음에 집을 장만하자”는 게 김씨의 판단이었다. 

그로부터 4년 뒤인 2019년 2월, 또 한번 기회가 찾아왔다. 이번엔 시흥이 3기 신도시로 선정될 가능성이 높다는 소문이 돌았다. 정보가 확실하다면 아직 집값이 많이 뛰지 않은 지금이 집을 구입할 적기였다. 주변에서도 김씨의 욕구를 부채질했다. 

하지만 김씨는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2018년에도 시흥이 유력 후보지라는 말이 있었지만 그해 12월 발표된 3기 신도시 명단엔 빠졌기 때문이다. 평생의 목표인 내집마련을 출처 모를 불확실한 정보 하나로 결정할 순 없었다. 실제로 2019년 5월 발표된 3기 신도시 명단에서도 시흥은 제외됐고, 김씨는 “결정이 틀리지 않았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시흥이 3기 신도시로 선정될 거란 첩보는 틀리지 않았다. 지난 2월 24일 시흥은 결국 3기 신도시 지구로 최종 선정됐다. 김씨가 거주 중인 은행동이 신도시 지구에 포함된 건 아니지만 불과 4㎞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간접이익을 누릴 게 분명했다. 

실제로 김씨가 사려던 B아파트의 매매가는 줄곧 3억원 초중반대를 머물다 3기 신도시 발표 이후 5억2000만원으로 무려 2억원가량 껑충 뛰었다. 3.3㎡(1평)당 1277만원이었던 아파트 값이 2000만원으로 치솟은 것이다. 평당 723만원이 뛴 셈이다. 

김씨는 “지금 모아둔 돈이 1억원 남짓인데, 대출규제까지 강화된 터라 이제는 구매 엄두를 내볼 수도 없는 수준이 됐다”면서 “이럴 줄 알았으면 5년 전에 무리를 하더라도 집을 샀을 것”이라고 낙담했다. LH 직원 장씨의 한평과 서민 김씨의 한평은 이처럼 격차가 크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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