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 전 대출 충분히 고려해 이사 준비
가계약 석달 만에 정책 바뀌며 대출 막혀
이자 오르고 대출액 줄어 계약 파기 위기

정부의 대출규제 조치가 부동산 시장을 흔들고 있다. 정부는 “실수요자의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지만 불만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온다. 실수요자들의 피해가 전세대출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피해 유형이 다양하다 보니 정부의 대응에도 한계가 있다. 일부에선 부동산 규제 자체를 원점 재검토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더스쿠프(The SCOOP)가 ‘준비 없는 정책’의 문제점을 취재했다.

정부의 대출규제로 인해 실수요자들이 다양한 피해를 입고 있다.[사진=뉴시스]
정부의 대출규제로 인해 실수요자들이 다양한 피해를 입고 있다.[사진=뉴시스]

경기도 용인에 사는 직장인 나정민(가명ㆍ46)씨는 지난 6월 자녀가 성장해 활동공간이 넓어지면서 기존 아파트를 팔고 좀 더 넓은 아파트로 이사를 하면 어떨지를 고민했다. 기존 아파트의 대출금이 남아 있고, 평수가 클수록 추가 대출을 받아야 해서 부담은 더 커질 게 뻔했다.

하지만 지금 옮기지 않으면 기회가 없을 수 있다는 생각에 나씨는 이사를 결심했다. 현재 살고 있는 동네가 만족스러웠기에 멀리 가지 않고 자녀의 학교가 좀 더 가까운 곳으로 알아봤는데, 마침 적당한 곳이 있었다. 

관건은 대출이었다. 몇몇 대출상담사를 통해 상담을 받았다. 상담사들은 해당 지역이 투기과열지구로 묶여 있긴 하지만 가격이 9억원 이하이고, 기존 아파트를 처분하면 무주택 실수요자에 해당한다는 점, 신용도가 높다는 점 등을 감안할 때 최대 4억원까지는 가능할 것이라는 답을 내놨다.

[※참고: 규제지역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은 아파트 가격(KB부동산 시세 기준)의 40% 수준으로 결정된다. 하지만 무주택 실수요자의 경우 LTV 비율을 조금 더 높게(10%포인트) 인정해준다.] 

나씨에게 필요한 금액은 대략 3억6000만원이었다. 충분히 대출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해 지난 8월초 매도ㆍ매수 가계약을 맺었다. 계산해보니 현재 부담하고 있는 월 상환액과도 큰 차이가 없었다. 기존에 상환기간을 15년으로 설정했기 때문에 상환기간을 늘리면 월 상환액이 10만원 증가하는 선에서 추가대출 절차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다만, 기존 아파트 매입자가 갭투자자여서 전세자를 구해야 하니 계약 시점을 12월로 해줄 것을 요청했고, 나씨는 몇달 사이에 크게 달라질 게 있겠나 싶어 이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8월 이후 상황이 빠르게 변하면서다. 우선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하자 시중금리가 상승했다. 3%대 초반이었던 시중은행 금리는 현재 4%대를 넘어섰다. 고작 몇달 새 1%포인트나 올랐다. 

금융당국(금융위원회)의 은행권 가계대출 증가율 관리도 본격화됐다. 이미 7월에 가계대출 증가율 관리(5~6%대)를 거론한 바 있지만, 그때만 해도 시그널일 뿐이었다. 하지만 8월 이후에도 가계대출 증가율이 관리 수준을 웃돌자 금융당국은 시중은행을 향해 강력한 대출 총량 관리를 요구했고, 이로 인해 일부 은행이 대출을 중단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대출규제에 이사 계획 엉망진창

하지만 대출 수요는 더 몰렸다. 금융위원회가 내년 1월부터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확대 적용하기로 했기 때문이다.[※참고: DSR은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 카드대출 등 모든 대출을 합산하고, 연간 갚아야 할 원리금을 연소득으로 나눈 비율을 말한다. 총 대출 금액을 제한하는 장치다. 정부는 지난 7월 이후 규제지역 내 6억원 초과 주택담보대출과 연 1억원 초과 신용대출에 한해 ‘DSR 40% 제한’을 적용했다.] 

내년에 변경될 DSR 제도에 따르면, 총 대출이 2억원을 넘으면 ‘DSR 40% 제한’이 적용된다. 쉽게 말해 대출액이 2억원 이상이면 원리금이 연소득의 40%를 넘지 않는 선에서만 대출을 해주겠다는 거다. 허리띠를 더 조여 대출금을 갚겠다고 해도 그 이상은 대출이 안 된다. 

일찌감치 가계약을 맺어놓고 대출받을 날을 기다리고 있던 나씨는 DSR 확대적용 등 대출규제정책에 직격탄을 맞았다. 우선 대출을 해줄 은행을 찾는 것부터 쉽지 않다. 은행들은 “현재 대출 가능 액수가 매월 달라지고 있어 확답을 할 수가 없다”면서 “12월 대출 가능 여부는 11월 말이나 돼야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금액도 문제다.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는 바람에 무주택 실수요자로 인정받는다고 해도 당초 예상했던 대출금을 다 받기는 어렵다. 갚아야 할 돈이 늘어나면서 ‘DSR 40% 제한’에 묶여버렸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남은 기간 대출을 구하지 못하면 계약금을 떼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나씨는 “대출 규제를 올해 초나 내년 초부터 했다면 대출 한도와 상환 능력 등을 고려해서 대응을 할 텐데, 하반기에 이렇게 갑자기 대출 옥죄기가 이어지니까 어떻게 할 수가 없다”면서 “정부는 실수요자가 피해 보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고 하는데, 현실에선 이렇게 피해를 보고 있으니 답답할 뿐”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이번 대출규제 조치로 인해 인생에 자괴감이 든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은행들은 신용카드 사용액을 소득으로 인정할 수도 있기 때문에 신용카드 사용액이 많을수록 대출을 더 해줄 수도 있다더라. 하지만 지금껏 신용카드를 빚이라 생각해 최대한 사용을 자제해 온 나로선 그마저도 해당사항이 안 된다. 지금 상황에서 득을 보는 건 현금 많은 부자들뿐인 것 같다. 도대체 누굴 위한 조치인지 모르겠다.”

현재 정부가 가계의 대출을 옥죄는 명분은 가계부채 증가율 관리다. 사실 가계부채 증가율 관리는 중요한 문제다. 가계부채가 늘면 빚을 갚느라 소비가 줄고, 그러면 경기 회복이 느려질 가능성이 높아서다. 

전세대출자들의 피해가 속출하면서 정부 대출규제 조치도 수정됐는데, 이는 정책 준비가 부족했다는 방증이다.[사진=뉴시스]
전세대출자들의 피해가 속출하면서 정부 대출규제 조치도 수정됐는데, 이는 정책 준비가 부족했다는 방증이다.[사진=뉴시스]

하지만 정부의 급작스러운 대출 규제는 뒷말이 많다. 앞뒤 고려하지 않고 밀어붙이기식으로 진행하고 있어서다. 대출규제로 전세대출 실수요자들까지 피해를 입게 되자 지난 10월 금융당국이 한발 물러선 건 단적인 예다. [※참고: 금융당국은 전세대출 증가 탓에 가계대출 증가율이 목표치(5~6% 수준)를 초과하더라도 용인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를 바꿔 말하면 당초 실수요자들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대출규제에만 집중했다는 거다.] 

‘부동산 규제 전면 재검토’ 주장도… 

어쨌거나 전세대출 피해 논란 이후 정부는 실수요 피해를 줄이기 위한 보완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청약에 당첨됐다가 중도금 대출이 막혀 발을 동동 구르는 사례까지 나오자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 “전세대출이나 잔금대출에 지장이 없도록 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맹점은 실수요자에 전세대출자나 잔금대출자, 혹은 신혼부부만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가계약을 맺은 후 시작된 정부의 집중적인 대출규제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씨와 같은 처지의 이들도 있다. 실수요자들이 겪을 수 있는 피해의 유형이 그만큼 다양하다는 거다. 

더 위험한 건 대출규제로 인한 실수요자들의 피해가 속출하자 야권에서는 아예 대출규제를 완전히 풀어줘야 한다거나 각종 부동산 관련 규제들을 ‘원점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는 거다. 정책의 연결성이 사라질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준비되지 않은 정책이 위험한 이유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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