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TV 완화로 상황 달라지지 않아
LTV와 함께 DSR 규제도 살펴야 
규제 완화 시 집값 오르면 
악순환의 덫에 빠질 수도 

“주택담보비율(LTV)을 70%까지 상향 조정하겠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이다. 문재인 정부의 대출 규제가 주택 실수요까지 막고 있다는 불만에서 나온 거다. 하지만 단순히 LTV 완화만으로 ‘내집 마련’이 가능해지는 건 아니다. 소득 등 채무자의 능력도 따져 봐야 하고, 상환기간도 살펴야 한다. 대출 규제 완화로 인한 여파도 고려해야 한다. 셈법이 복잡하다는 거다. 윤 당선인은 이런 셈법들을 고려하고 있을까. 

대출 규제 완화가 내집 마련에 얼마나 도움이 될 지는 미지수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대출 규제 완화가 내집 마련에 얼마나 도움이 될 지는 미지수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집을 구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제도들을 제거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대출 없이는 집을 살 수 없다. 대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공약집).” 주택담보대출(주담대)에 관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생각이다. 무턱대고 대출을 막기만 하면 정작 내집 마련이 어려워지니 실수요자 중심으로 주담대 규제를 풀어줘야 하지 않겠냐는 거다. 

실수요자 입장에서 보면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채무자가 빚을 못 갚으면…’이란 전제를 깔면 얘기가 달라진다. 더구나 빚을 갚느라 소비가 줄면 나라경제에도 좋지 않다. 정부가 일정 수준에서만 대출을 받도록 규제를 해온 것도, 윤 당선인이 대출 규제를 풀겠다고 나서자 여기저기서 우려가 쏟아져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중요한 건 정권이 바뀌었고, 차기 정부는 현 정부의 대출 규제 기조를 이어갈 생각이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차기 정부는 대출규제 완화를 어떤 방식으로 펼쳐나갈까. 더스쿠프(The SCOOP)가 가상인물 박정수씨를 중심에 놓고 대출규제 완화의 시나리오별 효과를 따져봤다. 

■시나리오❶ LTV 규제만 완화 = 우선 ‘주담대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윤 당선인 공약의 핵심은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현행 40%에서 70%(최대 80%)로 상향 조정하겠다는 거다.

예컨대 서울에 사는 박정수씨가 9억원짜리 아파트를 산다고 가정해보자. 정수씨의 연봉은 5000만원이고, 연이율 4% 수준에서 원리금균등상환 방식으로 30년간 원리금을 갚아나갈 예정이다. 수중엔 현금 3억원이 있다.

기존 LTV 비율에 따르면 정수씨는 3억6000만원까지만 주담대를 받을 수 있다. 현금 3억원을 보태도 내집 마련은 불가능하다.[※참고: 투기지역이나 투기과열지구의 경우 주택 가격이 9억원 이상이면 9억원까지만 40%, 초과분엔 20%가 적용된다. 15억원을 넘으면 대출이 불가능하다. 윤 당선인의 공약은 LTV 상향 비율을 70%까지 조정하되 생애 첫 주택구입자에겐 80%까지 적용하겠다는 게 골자다.]

그럼 LTV를 70%까지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6억3000만원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실제 구매자금이 2억7000만원만 있으면 9억원짜리 집을 살 수 있는 셈이니, 정수씨도 내집을 마련할 수 있다. 

규제 완화해도 내집 마련 복잡 

하지만 주담대 규제는 LTV만 있는 게 아니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라는 게 또 있다. 채무자가 빚을 갚을 수 있는 정도로만 빌릴 수 있도록 제한한 장치다. 이를테면, 연소득 대비 부채의 원금과 이자상환액 비율이 40%(비은행 50%)를 넘으면 대출을 받지 못한다.

담보가치가 아무리 커도 소득이 적으면 대출액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참고: DSR은 올해 1월부터 정부의 가계부채 관리 강화에 따라 총 대출액이 2억원을 초과하는 채무자에게 적용하고 있다. 7월부터는 1억원 초과 채무자에게 적용된다. DSR 규제가 더 강화되는 셈이다.]  

자! 연소득이 5000만원인 정수씨는 어떨까. 앞서 말했듯 정수씨는 연이율 4% 수준에서 매월 원리금을 갚아나갈 계획이다. 만약 LTV 40%를 기준으로 3억6000만원을 대출 받으면, 그는 연간 2000만원 정도의 원리금(원금+이자)을 부담하면 된다. DSR로 환산하면 40% 수준이어서 40% 제한 규정도 충족한다. 

대출 규제를 완화해서 가계빚이 과도하게 늘면 국가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사진=뉴시스]
대출 규제를 완화해서 가계빚이 과도하게 늘면 국가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사진=뉴시스]

LTV를 70%로 상향 조정하면 대출 한도가 달라질까. 그렇지 않다. LTV 70% 적용만을 놓고 보면 6억3000만원의 돈을 빌릴 수 있지만, 정수씨는 그만큼의 대출을 받는 게 불가능하다. 그만한 돈을 빌리면 매년 3609만원을 원리금으로 상환해야 하는데, 이 원리금이 DSR 40%를 훌쩍 뛰어넘는 70%에 달하기 때문이다. LTV 비율만 높이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걸 잘 보여주는 사례다. 

■시나리오❷ LTV+DSR 동시 완화 = 그래서 DSR도 상향 조정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현실적인 집값을 고려할 때 실수요자가 돈을 더 빌려서 집을 살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겠냐는 거다. 현재 금융감독원도 윤 당선인이 공약한 LTV 상향 조정의 실효성 분석을 위해 DSR 조정에 따른 영향 분석을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DSR을 조정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DSR이 완화되면 정수씨의 주담대 가능액은 얼마나 달라질까. 이 질문의 답은 DSR을 얼마나 상향 조정하느냐에 달렸다. 가령, LTV와 DSR을 동시에 70%로 상향 조정하면, 정수씨가 받을 수 있는 주담대 최대액은 6억1100만원으로 늘어난다.

연간 원리금 상환액이 3500만원으로 연봉의 70%를 넘지 않는다. 현금 3억원을 갖고 있으니, 이 정도면 정수씨가 9억원대 아파트를 구입할 수 있다.[※참고: 혹자는 LTV를 70%로 상향조정하고 DSR도 70%에 맞추면 정수씨가 받을 수 있는 최대금액이 6억3000만원이 아니냐고 물을지 모른다. 이론상으론 이 말이 맞다. 하지만 LTV와 DSR을 같은 비율로 적용해도 원리금을 따지는 DSR을 적용하면 대출액이 조금 더 적어진다. 그래서 6억3000만원에서 1900만원이 빠진 6억1100만원을 최대 금액으로 산정했다.] 

■시나리오❸ 주담대 상환기간 늘리면 = 자! 그럼 LTV와 DSR 비율을 동시에 끌어올리면 정수씨의 고민은 끝나는 걸까. 아쉽게도 그렇지 않다. 또다른 문제가 남는다. 언급한 것처럼 정수씨가 갚아야 할 원리금은 연 3500만원, 월로 계산하면 292만원이다. 정수씨의 월 실질 수령액이 370만원(공과금 등 제외)이라는 걸 감안하면, 월급의 80%가량을 대출 상환에 쏟아부어야 하는 셈이다. 

물론 향후 연봉이 오르면 상황이 나아질 수는 있지만 당장 생활에는 타격을 입는다. 그래서 LTV와 DSR 외에 대출 상환기간을 더 늘려줘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자는 더 늘어나지만 월 상환액 부담은 줄기 때문이다.

A씨의 경우 6억1100만원을 빌렸을 때 상환기간이 30년에서 10년 더 늘어나 40년이 되면 월 상환액은 255만원으로 줄어든다. 20년이 늘면 월 상환액은 236만원이 된다. 정수씨가 40~50년간 고정적으로 빚을 상환할 수 있을 만큼 수입이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허리띠를 졸라매고 지출을 줄인다면 불가능한 건 아니다.

이처럼 대출 규제를 완화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복잡한 과정이 필요하고, 계층별·소득별 시나리오를 모두 검토해야 한다. LTV에 DSR뿐만 아니라 원리금 상환기간까지 감안해야 하는 건 물론이다. 

게다가 대출 규제 완화가 무주택자나 중산층에게 도움을 줄지도 따져봐야 한다. 대출 규제 완화가 부동산 시장에 ‘가격 상승’이란 시그널을 주면, 아파트값이 또다시 춤을 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럼 LTV· DSR 등을 완화해 더 많은 돈을 대출받을 수 있다고 해도 정작 아파트를 사는 게 불가능해진다.

만약 아파트를 산다고 해도 빚이 많아져 생활이 궁핍해지는 ‘악순환의 덫’에 빠져들 가능성도 있다. 이는 윤 당선인이 추진하는 ‘대출 규제’도, 문재인 정부가 추진해온 ‘대출 규제’도 내집 마련을 위한 ‘능사’가 아니라는 걸 잘 보여준다. 

대출 규제 완화에 따른 리스크가 만만치 않다는 점도 생각해봐야 한다. 집값 상승이나 금리 인상에 따른 대출 부실화 등이다. 신동화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간사는 “윤 당선인이 문재인 정부의 대출 규제 기조를 버리겠다면 다양한 리스크를 대비한 정책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럼 어떤 대비책들이 있을까. 신동화 간사가 제시한 대비책은 다음과 같다. 첫째, 고정금리상품의 유도다. 현재 시중의 주담대 상당수는 변동금리 상품이다. 금리가 상승하면 리스크는 커진다. 이에 따라 은행들이 고정금리 상품을 낼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거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LTV를 최대 70%(생애 첫 주택 구입 시 80%)까지 높이겠다고 밝혔다.[사진=뉴시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LTV를 최대 70%(생애 첫 주택 구입 시 80%)까지 높이겠다고 밝혔다.[사진=뉴시스]

둘째, 대출 상환 방법의 제한이다. 신 간사는 “최근 몇몇 은행이 만기 일시상환이나 특정기간을 거치한 뒤 상환하는 상품을 내놓고 있는데, 이들은 집값 상승을 전제로 대출을 받는 방식이어서 위험요인이 크다”고 지적했다. 

대출 부실화 대비해야

셋째는 은행의 담보권 행사를 제한하는 것이다. 대출 규제를 완화하면 은행들은 주담대를 공격적으로 판매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니 은행들이 스스로 제어할 수 있게끔 주담대를 개인회생에 포함하면 어떻겠냐는 거다. 이는 채무자가 극단적인 상황에 처하지 않도록 보호하는 기능도 있다.

신 간사는 “대출 규제 완화는 무리한 대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만큼 부실화에 대비해 여러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출 규제를 완화하더라도 위험을 제거할 만한 대책을 세심하게 마련하라는 조언인데, 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윤 당선인은 모든 사안을 ‘큰 틀’에서 결정하는 성향을 보인다.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으로 이전하는 결정을 할 때도 ‘큰 그림’을 보면서 각론은 배제했다. 대출 규제도 마찬가지다. 윤 당선인의 후보 시절 말을 들어보면, ‘규제를 완화하면 내집 마련이 쉬워진다’는 전제에 천착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 전제는 당위성일 뿐이다. 규제 강화든 완화든 빛과 그림자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윤 당선인은 과연 ‘내집 마련’을 위한 대출 규제 완화책을 얼마나 세심하게 다듬을 수 있을까. 지켜볼 일이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