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마트에서 울다」
엄마의 음식이 남긴 사랑, 나의 정체성

저자는 엄마가 자신의 미각에 강렬하게 새긴 맛을 되찾으며 가슴의 상흔을 회복해 간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저자는 엄마가 자신의 미각에 강렬하게 새긴 맛을 되찾으며 가슴의 상흔을 회복해 간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미국 14개주 70여곳에 있는 H마트는 아시아 식재료를 파는 대형 식료품 할인점이다. H마트에서 H는 ‘두 팔로 감싸 안을 만큼의 크기’라는 의미인 ‘한 아름’의 줄임말이다. 그곳엔 만두피, 김, 뻥튀기, 죠리퐁, 갖가지 밑반찬 등 한국 먹거리가 풍성하다. 

H마트는 한국계 미국인에게 ‘고향의 맛’을 떠올리게 해주는 보물창고와도 같다. 식당가에는 뚝배기에 찌개가 담겨 나오고 떡볶이를 파는 한국 음식 전문점과 탕수육, 짜장면을 파는 한국식 중국 음식점도 있다.

많은 한국인이 저마다의 추억과 사연을 안고 이곳을 찾는다. 「H마트에서 울다」는 인디 팝 밴드 재패니즈 브렉퍼스트의 보컬인 한국계 미국인 미셸 자우너가 엄마를 잃고 쓴 가슴 찡한 성장기다.

상실과 회복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로 출간 직후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미 전역을 사로잡았다. 뉴욕타임스 등 유수의 언론매체와 아마존에서 2021년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고 버락 오바마 추천도서에 꼽히기도 했다.

모녀는 누구보다 애틋했지만 누구보다 애증이 강했다. 한살짜리 아기를 데리고 한국인이 드문 미국 오리건주 유진으로 이민 온 엄마는 딸을 엄하게 키웠다. 딸의 외모, 화장, 옷차림, 공부 등 매사에 간섭했다. 저자가 흐느낄 때면 “왜 울어. 엄마가 죽은 것도 아닌데”라며 단호하고 매정한 말들을 하는, 이해할 수 없는 엄마였다. 

그랬던 엄마가 갑자기 암 투병을 시작한다. 저자가 스물다섯살 되던 해였다. 저자는 이제야 엄마를 이해할 것 같았고, 엄마 역시 그제야 예술가의 길을 걷는 딸을 조금씩 응원하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저자는 절박한 마음에 매일 엄마가 복용하는 약과 먹은 음식을 기록하고, 살아생전 엄마를 기쁘게 해주고 싶어 남자친구와 결혼식도 올린다. 기적적으로 잘 버텨준 엄마는 결혼식이 끝나고 얼마 후 세상을 떠나고 만다. 

엄마를 잃고 한국인으로서 정체성마저 희미해지던 어느날, 저자는 H마트에 식재료를 사러 간다. 그곳에서 딸과 함께 식사하는 할머니를 보곤 울컥한다. H마트 곳곳에 엄마가 있어서다.

비빔밥에 고추장 많이 넣지 말라던 엄마의 잔소리도, 짱구 과자를 손가락에 끼고 흔들던 엄마의 모습도, 함께 베어 물던 뻥튀기의 추억도 H마트에선 생생하기만 하다. 그렇게 그곳에서 저자는 엄마가 자신의 미각에 강렬하게 새긴 맛을 되찾으며 가슴속 상흔을 회복해 간다.

“음식은 엄마가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었다. 엄마는 말 대신 음식으로 사랑을 보여줬다.” 엄마는 없지만 엄마가 해주던 음식의 기억만은 생생히 남아 저자를 위로한다. 저자는 인터넷과 유튜브를 찾아 된장찌개, 잣죽, 김치를 직접 만들어 먹으며 엄마의 한국 음식을 통해 그리움을 달랜다. 

어릴 때부터 엄마가 2년에 한번씩 자신을 데리고 갔던 한국으로 신혼여행을 떠난 저자는 엄마가 자신에게 한국 문화를 알려줬듯 남편과 함께 한국을 경험한다. 생일날 이모가 끓여준 미역국을 먹고, 엄마와의 추억을 친척들과 공유하며 슬픔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젠 엄마가 없어도 내가 한국인일 수 있다”며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 간다. 

세 가지 스토리 

「나는, 휴먼」
주디스 휴먼·크리스틴 조이너 지음|사계절 펴냄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는 단체와 한 정치인의 설전이 뜨겁다. 장애인이 기본권조차 보장받기 쉽지 않은 건 한국만의 일은 아니다. 지하철 역의 엘리베이터, 방송의 수어 통역은 수많은 장애인과 운동가들이 자신의 삶을 걸고 싸워 얻어낸 결과물이다. 이 책의 저자는 미국의 1970년대 재활법 504조 투쟁부터 1990년 장애인법 제정에 이르기까지 최전선에서 싸워온 운동가다. 그가 자신의 일대기를 정리했다.

「가난한 미국 부유한 중국」
김연규 지음|라의눈 펴냄


이 책의 제목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무리가 있다. 하지만 지금 미국과 중국이 빚고 있는 갈등을 ‘자원 전쟁’이라는 프레임에서 바라본다면 영 틀린 말은 아니다. 중국이 보유한 희토류와 희소금속 없이는 전기자동차도, 재생에너지도, 첨단 무기체계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중국이 어떻게 희토류 강국이 됐는지, 미국은 어쩌다 자원 빈국으로 전락했는지 설명한다. 수많은 데이터와 비하인드 스토리를 동원해 흥미롭게 보여준다.

「최전선의 사람들」
가티야마 나쓰코 지음|푸른숲 펴냄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지 10여년이 훌쩍 지났지만, 제대로 해결된 건 없다. 일본 정부는 사고를 축소·은폐하고, 국민들은 점차 사고의 악몽을 잊어가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2011년 3월 지진 발생 직후부터 2019년까지 원전 현장에 잠입해 숨은 진실을 파헤쳐 왔다. 특히 사고 수습 현장에서 일회용처럼 쓰다가 버려지는 노동자의 현실을 기록함으로써 원전 사고의 진실을 복원해 나간다. 

이지은 더스쿠프 기자 
suujuu@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