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예비비 편성율은 1% 이내
편성율 어긴 지자체 10곳 중 4곳
81곳 당초 예산보다 예비비 증가
결국 예비비는 잉여금으로 전환
그만큼 대국민 행정서비스 구멍
예비비 탓에 중앙정부 곳간 텅텅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이 남는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그건 애당초 계획한 사업이 불필요했거나, 예산을 과다 책정했거나, 남는 예산을 또다른 사업에 제대로 투입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지자체의 예산이 남는 게 바람직하지 않은 이유다. 하지만 현실에선 지자체에서 예산이 남아도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그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예비비다.

예비비 편성 비율을 어기는 지자체들이 적지 않다.[사진=뉴시스]
예비비 편성 비율을 어기는 지자체들이 적지 않다.[사진=뉴시스]

“지방자치단체는 ‘예측할 수 없는 예산 외의 지출이나 예산 초과 지출’을 충당하기 위해 예비비를 계상할 수 있다. 예비비 편성 비율은 예산 총액의 100분의 1(1%) 이내’다. 재해ㆍ재난 관련 목적 예비비는 별도로 예산에 계상할 수 있다.” 지방재정법 제43조에 담겨 있는 내용이다. 

지방재정법이 예비비의 비율을 제한한 이유는 간단하다. 예산이 남아돌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럼 지자체들은 이런 지방재정법 규정을 잘 지키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나라살림연구소는 2022년(회계연도 말 기준) 전국 243개 지자체의 예산 총액 대비 예비비 편성 비율을 따져 봤다.

그랬더니 통합회계 기준 예산 총액은 555조4591억3600만원이었고, 이 가운데 예비비 총액은 5조2723억7800만원이었다. 예비비 비율이 0.9%를 조금 넘는 수준이니 지방재정법을 충족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243개 지자체 중 94개(38.7%) 지자체의 예비비 편성 비율은 1%를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비율이 10%가 넘는 곳도 있었다. 부산 남구는 예산총액 7919억2400만원 중 869억8700만원(11.0%)을, 울산 울주군은 예산총액 1조5105억3100만원 중 1555억6400만원(10.3%)을 예비비로 편성했다.

그 외에 부산 기장군(9.8%), 서울 중구(8.4%), 부산 동래구(7.5%), 경북 안동시(7.1%), 부산 연제구(6.8%), 부산 수영구(6.7%), 부산 북구(5.9%), 경북 영주시(5.5%) 순으로 예산 총액 대비 예비비 편성 비율이 높았다. 

더 심각한 건 예비비 비율이 예산 수립 당시보다 회계연도 말에 더 높아진 곳이 적지 않았다는 점이다. 예비비 비율이 당초보다 커진 지자체는 81곳에 달했다. 일례로 울산 울주군의 경우, 2022년 예산은 9415억4300만원, 예비비 예산은 171억6900만원(1.8%)이었다. 그런데 회계연도 말 예산현액은 1조5105억3100만원, 예비비 예산은 1555억6400만원(10.3%)이었다. 예비비 예산은 당초의 9배가 됐고, 그 비율은 8.5%포인트 높아졌다. 

행안부의 예비비 현황 자료는 경제적 실질과 큰 차이가 있다. 사진은 이상민 행안부 장관.[사진=뉴시스]
행안부의 예비비 현황 자료는 경제적 실질과 큰 차이가 있다. 사진은 이상민 행안부 장관.[사진=뉴시스]

그 외 예비비 예산 비율이 당초보다 커진 지자체는 부산 기장군(7.2%포인트), 부산 남구(7.0%포인트), 부산 연제구(5.9%포인트), 부산 동래구(5.4%포인트), 부산 북구(4.9%포인트), 경북 안동시(4.9%포인트), 경북 영주시(4.5%포인트), 부산 수영구(4.1%포인트), 경기 성남시(3.6%포인트) 순이었다. 

이렇게 예비비가 늘어나는 건 매우 심각한 문제다. 예컨대 지자체에 예비비가 투입될 일이 발생했다면 예비비는 줄어야 한다. 그런데 예비비가 늘었다는 건 지자체가 사업을 펼치면서 예산이 남아 연말에 예비비를 더 넣었다는 의미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예산이 남을 것 같으면 추경을 통해 해당 사업의 예산을 줄이고, 대신 예산이 모자란 또다른 사업에 예산을 투입하거나 새 사업을 발굴해서 예산을 사용해야 함에도 그렇지 않았다는 거다. 재정을 비효율적으로 운영했다는 방증이다. 

예비비 규정 어기는 지자체들

물론 재해ㆍ재난 관련 목적의 예비비는 ‘예산 총액의 1% 이내’ 제한 규정과는 별도로 예산에 계상할 수 있다. 일부 지자체에선 “우리 예비비는 ‘재해ㆍ재난 관련 목적 예비비’여서 지방재정법을 어긴 게 아니다”고 항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주장을 십분 받아들이더라도 문제가 남는다. 

우선 지자체에 특별한 재해나 재난이 발생하면 정부가 특별교부세를 편성해 각 지자체에 배분하기 때문에 재해ㆍ재난 관련 목적 예비비를 수천억원 혹은 수백원씩 남겨둘 이유가 없다.

이뿐만이 아니다. 상당수의 지자체의 예비비 비율이 당초보다 더 높아졌다는 건 추경 과정에서도 예비비가 줄지 않은 탓에 연말이 돼서야 (남은 예산을) 예비비로 돌렸다는 뜻이다. 연말에 굳이 일어날지도 모를 재해ㆍ재난을 대비해 예비비를 늘렸다는 건 상식적이지 않다. 

더 황당한 건 행정안전부가 예비비를 이상한 방식으로 축적하는 지자체를 통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행안부가 매년 발표하는 지자체별 공시 자료엔 여전히 일반회계 기준 예산 총액과 예비비 편성액만 나온다. 특별회계나 기금에서 나오는 예비비는 빠져 있다.

행안부 자료에 따르면 243개 지자체의 예산 총액은 344조4139억800만원, 예비비 편성액은 3조5094억4700만원이다. 이 수치는 나라살림연구소가 조사한 통합회계 예산 총액(555조4591억3600만원)의 62.0%, 예비비 편성액(5조2723억7800만원)의 66.6%에 불과하다. 나머지 40% 비율만큼 예비비 통계가 왜곡됐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각 지자체가 남긴 수조원의 예비비는 잉여금이 된다. 잉여금을 언제까지 보관할 수 있다는 법적 근거와 기준이 없기 때문에 잉여금은 그저 지자체의 ‘돈’으로 남는다. 2021년 결산 기준 전국 지자체의 잉여금 총액은 68조5000억원에 달한다.

이중 일부는 지자체의 저금통 역할을 하는 재정안정화기금에 쌓인다. 2021년 결산 기준 재정안정화기금 총액은 9조7000억원이었다. 결국 예비비가 지자체 잉여금의 돈줄이라는 얘기다.

이렇게 지자체가 예비비를 통해 잉여금을 쌓아둘 동안 지자체 예산을 지원한 중앙정부의 재정통합수지는 2021년 30조5000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송윤정 나라살림연구소 책임연구원
hyounylee@naver.com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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