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뱅크-ARM 현재와 미래 1편
실적발표 현장 불참한 손정의 회장
위기의 소프트뱅크 살릴 ARM 누구
M&A 무산 이후 이목 집중 됐지만
‘설계강자’ ARM 둘러싼 눈치게임
탐나지만 꺼려지는 ARM 아이러니

독보적인 설계자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 ARM의 시장 가치를 높임과 동시에 인수를 가로막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ㆍ더스쿠프 포토]
독보적인 설계자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 ARM의 시장 가치를 높임과 동시에 인수를 가로막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ㆍ더스쿠프 포토]

# 투자업계의 ‘큰손’ 일본 소프트뱅크그룹이 지난해 약 8조원 규모의 손실을 입었다. 비전펀드가 잇따른 투자 실패로 4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한 탓이 크다. 사태의 심각성 때문일까. 손정의 회장은 사상 처음으로 실적발표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 소프트뱅크그룹은 과연 이 위기를 어떻게 타개할까. 반전의 기회를 만들 가장 유력한 돌파구는 ‘ARM’이 될 가능성이 높다. 소프트뱅크그룹이 소유한 반도체 기업 ARM을 상장해 자금을 융통하면 숨통을 트일 수 있다는 거다. 손 회장 역시 ARM 상장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 그렇다면 ARM은 과연 어떤 기업이기에 소프트뱅크그룹의 돌파구로 떠오른 걸까. 소프트뱅크그룹은 ARM을 통해 기사회생할 수 있을까. ARM과 소프트뱅크의 현재와 미래, 그 첫번째 편이다.


■ 반도체 업계 ‘그림의 떡’ = 지난해 10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의 회동이 있었다. 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두 거대 기업 수장의 만남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당연히 회동 이유에 관심이 쏠렸고, 그 중심에 한 기업의 이름이 거론됐다.

소프트뱅크의 자회사이자, 영국 반도체 설계회사 ARM이었다. 이재용 회장과 손정의 회장은 삼성전자와 ARM의 전략적 협력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고, 한편에선 두 기업 간의 인수ㆍ합병(M&A) 가능성에 불을 지폈다. 

사실 반도체 업계에서 ARM에 이목을 집중하기 시작한 건 두 회장의 회동이 있기 훨씬 전부터다. 지난해 초 미국의 ‘그래픽카드(그래픽처리장치ㆍGPU)’ 강자 엔비디아가 ARM을 인수하는 데 실패하자 반도체 업계가 뜨겁게 달궈졌다. 명함만 내밀면 누구나 알 만한 기업들이 인수후보자 명단에 오를 만큼 ARM에 눈독을 들이는 곳이 적지 않았다. 

당연히 몸값도 치솟았다. 시장에서 추정한 ARM의 가격은 600억 달러(약 82조원)에 이른다. 연간 매출액이 27억 달러(2021년 기준) 수준인 기업 치고는 비싼 편이다. 엔비디아가 인수를 시도했던 2020년 ARM의 몸값이 400억 달러였으니, 불과 2년여 만에 몸값이 1.5배나 뛰어오른 셈이었다. ARM을 두고 ‘그림의 떡’이란 평가가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누구나 탐을 내지만 아무나 가질 수는 없다”는 거다. 

실제로 ARM은 삼성전자에도 부담스러울 만한 몸값이다. 지금까지 삼성전자가 M&A 시장에서 가장 크게 지불한 비용은 2017년 하만을 인수할 때 투입한 80억 달러다. 하지만 ARM을 쉽게 인수하기 힘든 이유가 비싼 몸값에만 있는 건 아니다. 왜 그런 걸까. 오늘은 이 복잡한 질문을 풀어보려 한다. 
 

지난해 10월 이재용 회장과 손정의 회장이 만나 ARM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사진은 2019년 회동 당시.[사진=뉴시스]
지난해 10월 이재용 회장과 손정의 회장이 만나 ARM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사진은 2019년 회동 당시.[사진=뉴시스]

사실 ARM이 누구에게나 익숙한 기업은 아니다. 반도체 업계 밖에선 다소 생소한 이름인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ARM은 인텔이나 삼성전자ㆍ퀄컴 등 일반인에게 잘 알려진 반도체 회사와 달리 ‘눈에 보이는 상품’을 제조ㆍ판매하는 곳이 아니다. ARM이 판매하는 건 ‘설계자산(IP)’이다. IP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라이선스 비용과 로열티 수익을 받는다. 여기서 ARM이 판매하는 IP란 반도체의 ‘설계도(아키텍처ㆍArchitecture)’를 말한다. 

이 지점에서 한가지 의문이 생긴다. ‘반도체 설계’는 퀄컴ㆍ엔비디아 등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팹리스(반도체 설계회사ㆍFabless)의 영역이기 때문이다.[※참고: 팹리스는 공장이 없는 회사를 지칭하는 용어다.] 


■ 팹리스의 팹리스 = 그럼 ARM의 설계는 뭐가 다를까. 이해를 돕기 위해 반도체 칩셋을 블록 장난감(레고)이라고 가정해보자. 여기서 ARM의 설계도는 블록이다. 팹리스나 빅테크 기업들은 이 블록으로 모형을 설계하는데, 그게 곧 반도체 칩셋이다. 어찌 보면 ARM은 팹리스의 팹리스인 셈이다. 

물론 이런 블록(설계도)을 만드는 기업이 ARM만 있는 건 아니다. 인텔도 만든다. PCㆍ서버용 중앙처리장치(CPU)에서 주로 쓰이는 ‘X86’이 인텔의 설계도다. 하지만 주목해야 할 건 ARM의 영향력과 성장속도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시스템 반도체 시장에서 ARM의 설계도를 기반으로 만드는 반도체 칩셋의 비율은 60~70% 수준이다.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차량용 반도체, 통신칩 등 ARM 설계도로 만들지 않는 반도체가 없을 정도인데, 그중에서도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곳이 모바일의 두뇌에 해당하는 모바일 AP 시장이다. 


소프트뱅크에 따르면 ARM 설계도로 만든 모바일 AP는 전체의 90%(2019년 기준)를 차지하고 있다. 일례로, 삼성전자의 ‘엑시노스 시리즈’, 퀄컴의 ‘스냅드래곤 시리즈’, 애플의 ‘A 시리즈’, 미디어텍의 ‘디멘시티 시리즈’ 등 모바일 AP 시장을 거머쥐고 있는 제품들은 모두 ARM 설계도로 만든다.

그뿐만이 아니다. 영토를 확장하는 ARM의 거침없는 행보도 눈여겨봐야 한다. 무엇보다 전통적으로 인텔이 압도적인 영향력을 과시해왔던 PCㆍ서버용 CPU 시장에서 ARM은 무섭게 세勢를 넓혀가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머큐리리서치에 따르면 2020년 3분기 2%대에 그쳤던 ARM의 PC용 CPU 시장점유율은 1년 만인 2021년 3분기 8%로 4배가량 뛰어올랐다. 

변곡점을 만든 건 흥미롭게도 애플이었다. 인텔과 15년간 동맹관계를 유지해온 애플이 2020년 말 결별을 선언했고, 인텔의 CPU 대신 ARM 설계도 기반의 CPU를 탑재했다. 애플의 선택이 시장에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온 셈인데, 주목할 건 서버용 CPU 시장에서도 유사한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ㆍ알리바바 등 ARM 설계도를 기반으로 서버용 반도체를 개발하는 빅테크 기업들이 점차 늘고 있어서다. 

실제로 시장의 전망도 이런 흐름과 궤를 함께한다. 대만의 IT전문매체 디지타임스는 “2020년 3% 안팎이었던 ARM의 서버용 CPU 시장점유율이 2024년 10%대로 오를 것”이라면서 “반면, 인텔의 시장점유율은 같은 기간 87%에서 70%대로 낮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참고: 인텔과 ARM의 설계도엔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 인텔의 설계도는 ‘복합명령어집합컴퓨터(CISCㆍComplex Instruction Set Computer)’ 방식을 쓴다. CISC의 장점은 복잡한 데이터를 처리하기에 용이하고 호환성이 높다는 점이다. 하지만 전력 소모가 많고 속도가 다소 느린 게 단점이다.

반면, ARM의 설계도는 ‘축소명령어집합컴퓨터(RISCㆍReduced Instruction Set Computer)’ 방식을 기반으로 한다. RISC는 복잡한 명령을 수행하기엔 부적합하지만 전력 소모가 적고 속도가 빠르며 경량화에 용이하다. 당초 ARM의 RISC 방식 아키텍처는 복잡한 데이터 처리를 요구하는 PC용 CPU에는 적합하지 않을 거란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애플이 ARM 설계도로 고성능 CPU를 만들어내면서 시장의 평가를 뒤바꿨다. 다만, 요즘은 CISC와 RISC의 특징이 뒤섞이면서 정확한 구분이 무의미해지고 있는 추세다.]

지금까지의 상황만 살펴봐도 ARM의 기술력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상당하다. 하지만 더 주목해야 할 건 머지않은 미래에 그 영향력이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무슨 이유에서일까. 2편에선 그 답을 찾아볼 예정이다. 그와 함께 소프트뱅크의 미래도 전망해보도록 하자.

고준영 더스쿠프 경영전문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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