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뱅-ARM 현재와 미래 2편
사실상 물 건너간 ARM 매각 플랜
‘플랜B’ 기업공개 순탄하지 않아
세계 증시 악화, ARM 평가절하
삼성전자 인수 가능성 재조명돼
ARM에 좌우될 소프트뱅크 미래

ARM은 반도체 기초 설계 분야에서 사실상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사진=뉴시스]
ARM은 반도체 기초 설계 분야에서 사실상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사진=뉴시스]

# ARM은 ‘팹리스의 팹리스’로 통한다.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업체ㆍfabless)가 반도체 칩셋을 설계할 수 있도록 설계자산(IP)을 제공한다는 의미에서다. 이렇듯 이름도, 사업분야도 생소한 ARM이지만 반도체 시장에서 미치는 영향력은 상당하다. 반도체 시장에서 ARM의 설계자산을 기반으로 만드는 칩셋의 비율이 절반을 웃돌 정도다. 

#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영향력이 되레 ARM의 발목을 잡았다. 누구나 탐낼 만한 독점적 시장 지위를 갖고 있어서인지 누구도 ARM이 매각되길 원치 않는다. ARM을 매각해 투자금을 회수하려던 소프트뱅크가 기업공개(IPO)로 방향을 튼 이유도 여기에 있다.

# 문제는 ARM의 상장도 여의치 않다는 점이다. 일부에선 벌써부터 소프트뱅크가 ARM의 매각도, 상장도 실패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소프트뱅크와 ARM은 과연 어떤 결말을 맞이할까. ARM과 소프트뱅크의 현재와 미래, 그 두번째 편이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인텔, 퀄컴, 엔비디아…. 명함만 내밀면 누구나 알 만한 반도체 명가들이 눈독을 들이는 기업이 있다. ARM이다. 지난해 10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ARM을 소유한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이 회동한 건 우연이 아니다. 그만큼 ARM이 반도체 시장에서 미치는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ARM의 ‘설계도(아키텍처ㆍArchitecture)’를 기반으로 만드는 반도체 칩셋의 비율은 전체의 60~70%에 이른다. 그중에서도 모바일의 두뇌에 해당하는 모바일 AP 시장에선 90% 이상이 ARM의 설계도를 기반으로 설계된다.[※참고: 구체적인 내용은 지난 1편 ‘손정의 반전 카드, ARM의 현재와 미래’에서 다뤘다.]


■ ARM의 미래 가치 = 현 시점에서만 살펴봐도 ARM의 영향력은 분명 상당하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그 영향력은 더욱 커질 공산이 크다.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로봇 등 첨단기술이 선도하는 미래 산업에선 반도체 설계기술의 중요성이 더욱 높아질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종환 상명대(시스템반도체공학) 교수는 “팹리스는 대부분 ARM의 설계기술을 활용하는데,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선 반도체 설계를 하기 위해 피할 수 없는 부분”이라면서 “AI, 로봇, IoT 등의 개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일 공산이 크고, 그로 인해 ARM의 위상은 점점 커질 게 분명하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영향력이 확대할수록 리스크도 커진다는 점이다. 앞서 말했듯 현재 시스템 반도체 산업에서 ARM 설계도를 기반으로 만드는 반도체는 60~70%에 달한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ARM이 서비스를 중단할 경우 전체의 60~70%에 해당하는 반도체를 설계할 수 없다는 얘기다.

또는 ARM이 갑자기 라이선스 비용을 훌쩍 올려 몽니를 부릴 수도 있다. 극단적인 예이긴 하지만 불가능한 가정도 아니다. 실제로 최근 ARM은 ‘ARM 설계도 기반 기술의 사용ㆍ개발 제한’을 이유로 퀄컴을 제소한 바 있다.

소프트뱅크그룹은 ARM의 매각이 여의치 않자 기업공개로 방향을 틀었다.[사진=뉴시스]
소프트뱅크그룹은 ARM의 매각이 여의치 않자 기업공개로 방향을 틀었다.[사진=뉴시스]

그럼에도 ARM의 설계도를 포기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반도체 설계도’를 그리는 기초 설계 기술을 축적하는 게 어렵다는 걸 차치하고서도 ‘호환’ 문제가 발목을 잡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반도체 설계도(아키텍처)는 마치 언어와 같아서다. 가령, 10개 반도체 설계기업이 각자의 설계도로 반도체를 만들었다고 치자. 이는 서로 다른 10개국 사람들이 각자의 언어로 소통하는 것과 같다. 

각각의 반도체가 탑재된 PCㆍ모바일에서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데이터를 처리하려면 그에 맞게 번역을 해야 하는데 이는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그 때문에 필요한 게 공용어다. 현재로선 ARM의 설계도가 공용어의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참고: 현재 ARM의 대안으로 오픈소스 설계도인 RISC-V(리스크파이브)가 떠오르고 있다. 리스크파이브는 오픈소스인 만큼 라이선스 비용이 들지 않고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성능ㆍ검증ㆍ보안 등의 문제가 걸림돌로 남아있다.] 

■ IPO로 돌파구 마련할까 = 이쯤에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보자. 왜 ARM은 누구나 탐을 내지만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걸까. 세계 시장에서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ARM을 눈독 들일 만한 이유는 분명하다. 설계 기술을 바탕으로 다양한 반도체 분야로 사업 다각화를 꾀할 수 있는 데다, 미래 산업을 둘러싼 경쟁에서 한발 앞서 나갈 수 있어서다.

파운드리ㆍ팹리스와의 시너지는 물론 경쟁업체들을 견제하는 것도 가능하다. 특히 우리나라로선 국내 반도체 산업의 약점인 ‘설계 분야’의 빈틈을 메울 수 있는 매력적인 카드다. 

하지만 ARM이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독보적인 설계자산을 보유한 기업이라는 점이 ARM의 시장 가치를 높임과 동시에 인수를 가로막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반도체 설계도 시장에서 사실상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는 ARM을 특정 기업(특히 반도체ㆍ빅테크 기업)이 소유하게 놔둘 리 없어서다.

실제로 지난 2년간 ARM을 인수하기 위해 공을 들인 엔비디아가 실패한 것도 독점 우려와 경쟁기업들의 견제 때문이었다.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ARM 인수전에서 한발 물러선 것도 이런 현실적 어려움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ARM의 인수는) 결국 현실 가능성이 없다”면서 “ARM의 설계자산을 독점 소유할 수 있다면 인수하는 의미가 있겠지만 그게 불가능하다면 ARM을 인수할 필요성을 찾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M&A가 어려워지자 소프트뱅크는 기업공개(IPO)로 노선을 튼 것으로 보인다. 이르면 오는 3월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와 영국 런던증권거래소 등 세계 주요 증권시장에 상장하는 게 소프트뱅크의 목표다. 상장을 통해 투자금을 회수하면 당장의 위기를 넘길 수 있을 거란 계산이지만, 이마저도 순탄치 않을 수 있다.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단독 상장을 원하는 소프트뱅크와 영국 런던증권거래소 동시 상장을 원하는 영국 정부와의 의견 차이를 좁혀야 하는 것은 물론, 세계 증시 분위기가 좋지 않아 ARM의 기업가치를 온전히 인정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서다. 일부에선 소프트뱅크의 ARM 상장 계획이 무산될 수 있다는 의견도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소프트뱅크가 원하는 바를 100% 이루지 못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ARM의 M&A는 사실상 물 건너 갔고, 소프트뱅크는 유례 없는 위기를 맞았다. 과연 소프트뱅크는 ARM을 통해 반전의 기회를 만들 수 있을까.

고준영 더스쿠프 경영전문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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