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방비 대책 일환 석유부과금
정유업계 주장 수렴한 정부
업계 주장에 빈틈 적지 않아
국내외 석유가격 차이 없나

“에너지 고물가 국면에서 정부의 지원책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하던 더불어민주당이 최근 ‘석유부과금’으로 논쟁의 관점을 돌렸다. 횡재세를 부과하는 법률을 만들지 않아도 현행 법테두리 안에서 정유업계에 횡재세와 비슷한 부담금을 부과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인 듯하다. 어쨌거나 정유업계에 ‘석유부과금’을 부과하자는 건데, 정부와 정유업계는 ‘설득력 없는 주장’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반박 논리는 타당한 걸까. 

에너지 고물가 대책의 일환으로 정유사에 석유부과금을 부과하자는 주장이 나왔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에너지 고물가 대책의 일환으로 정유사에 석유부과금을 부과하자는 주장이 나왔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국민이 난방비 폭탄을 맞고 있다. 횡재세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월 25일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한 내용이다.

26일에는 ‘난방비 폭탄 민주당 지방정부ㆍ의회 긴급 대책회의’를 열고, 난방비로 어려움을 겪는 취약계층을 지원하기 위한 대책으로 7조2000억원 규모의 ‘에너지 고물가 지원금’ 지급을 정부에 제안했다. 재원 확보 마련 방안으로는 “에너지 관련 기업들의 과도한 영업이익에 전 세계가 횡재세를 부과하는 것처럼 부담금을 부과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27일에는 전북 익산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를 통해 “천문학적 영업이익을 거둔 초거대 기업이 위기 극복에 동참할 길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횡재세든 연대 기여금이든 국회와 기업이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에너지 고물가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에너지 관련 기업(특히 정유업계)의 고통 분담이 필요하다는 점을 연이어 강조한 거다. 

사실 이재명 대표의 횡재세 주장이 갑작스럽게 나온 건 아니다. 지난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는 ‘2022 국정감사 이슈 분석’ 보고서에서 국내 정유 4사의 영업이익이 크게 증가했다는 점을 들어 “세계 각국이 횡재세 도입을 논의하는 것처럼 국내에서도 이를 공론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제언했다. 이후 같은당 이성만 의원과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횡재세를 도입한다는 건 생각처럼 쉽지 않다. 횡재세를 부과하려면 새로운 법을 만들어야 하는데, 여당과 기업들의 반발이 적지 않아서다. 최근 국제유가가 안정세로 접어들고 있고, 일부에선 올해 정유산업이 쪼그라들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면서 횡재세 논의가 탄력을 잃은 것도 사실이다. 

■ 석유부과금 논쟁➊ 찬성론 = 그럼에도 더불어민주당이 거듭 횡재세를 거론하는 배경은 뭘까. 그건 바로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석유사업법)’에 근거해 석유사업자(정제ㆍ수출입ㆍ판매)들에 부담금의 일종인 ‘석유부과금’을 물리면 횡재세 관련 법을 만들지 않고도 횡재세나 다름없는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현행 석유사업법(제18조)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석유 수급과 석유가격의 안정을 위해 ▲석유를 수입하거나 석유제품을 판매하는 석유정제업자ㆍ석유수출입업자ㆍ석유판매업자나 ▲국제 석유가격의 현저한 등락으로 지나치게 많은 이윤을 얻는 석유정제업자ㆍ석유수출입업자에 부과금을 부과할 수 있다. 둘째 조항의 경우, ‘수입 석유가격과 국내 석유가격과의 차액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 부과하는 게 가능하다.

첫번째를 대상으로 삼은 부과금은 이미 ‘석유수입ㆍ판매부과금’이라는 명목으로 부과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주목하는 건 바로 두번째를 대상으로 한 부과금이다.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는 “석유부과금 부과는 난방비 폭탄으로 인한 국민의 고충을 해소할 방안을 찾는 과정에서 나온 대안 중 하나”라면서 “정부가 의지를 갖고 있다면 더 많은 이를 지원할 방법이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정유업계의 주장을 근거로 석유부과금 부과에 반대하는 입장을 내놨다.[사진=뉴시스]
정부는 정유업계의 주장을 근거로 석유부과금 부과에 반대하는 입장을 내놨다.[사진=뉴시스]

■ 석유부과금 논쟁➋ 반대론 = 이런 주장에 정부(산자부)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산자부 석유산업과 관계자는 “더불어민주당에서 말하는 부과금은 ‘수입 석유가격과 국내 석유가격의 차액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부과할 수 있다”면서 “석유를 자유롭게 수입할 수 없었던 과거엔 이런 차액이 발생했을 수 있지만, 지금은 국내 석유제품 가격은 싱가포르 국제가격을 기준으로 삼고 있어 차액이 거의 발생하지 않아 부과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주장에 설득력이 없다”고 설명했다. 

정유업계도 반발하기는 마찬가지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석유부과금은 ‘석유 수급과 석유가격의 안정을 위한 것’인데, 지금은 국제유가가 안정세에 접어들었다”면서 “석유부과금 원인이 사라진 마당에 석유부과금을 걷겠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 석유부과금 논쟁➌ 반박론 = 문제는 산자부와 정유업계의 반박 논리에는 중요한 맹점이 있다는 점이다. 우선 “국내 석유제품 가격이 국제가격과 연동돼 있어 차액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는 산자부의 주장은 정유업계의 일방적 주장일 뿐인 데다, 객관적으로 증명된 적도 없다.

오히려 지금까진 국내 석유제품 가격이 국제가격과 연동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더 많았다. 오죽하면 ‘내릴 땐 천천히 오를 땐 빠르게’가 정유사의 가격정책이란 우스갯소리를 소비자들이 정설로 여길 정도다. 

E컨슈머(에너지석유시장감시단) 관계자는 “횡재세가 거론되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최근 몇달간 정유사들의 석유제품 공급가격은 국제가격을 상당히 많이 반영하거나 오히려 국제가격보다도 낮은 때도 종종 있었다”면서도 “하지만 그동안 E컨슈머가 조사해온 데이터들을 보면 대부분의 경우 정유사들은 국제가격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E컨슈머는 2010년부터 지금까지 주기적으로 석유제품의 가격을 집중적으로 조사해온 민간기관이다. 정부는 석유제품 가격을 모니터링할 때 종종 E컨슈머의 의견을 참고한다.

숨은 맹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석유부과금은 법 취지상 석유 수급과 석유가격 안정을 위해 사용해야 하는데, 지금은 국제유가가 안정세여서 별도의 부과금을 부과할 근거가 없다”는 정유업계의 주장에도 모순이 있다. 

현재 정유사들은 앞서 언급한 석유사업법에 따라 이미 ‘석유수입ㆍ판매부과금’을 내고 있다. 석유사업법과 정유업계의 주장대로라면 이 부과금 역시 ‘석유 수급과 석유가격의 안정을 위해서’ 쓰여야 한다.

하지만 기획재정부의 ‘부담금 운용 종합보고서’에 따르면 석유수입ㆍ판매부과금은 ‘석유 수급과 석유가격 안정’이란 목적뿐만 아니라 에너지자원정책이나 재생에너지와 같은 에너지신산업 활성화 등에 골고루 사용되고 있다. 이미 내고 있는 부과금의 목적은 고려하지 않은 채 새롭게 부과하려는 부과금의 목적만 문제 삼고 있다는 얘기다.

■ 석유부과금 논쟁➍ 또다른 의문 = 그럼 정유업계가 기존의 석유수입ㆍ판매부과금에 큰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 물론 정유업계는 틈날 때마다 이 부과금을 없애 달라고 요구해왔다. 하지만 정부 입장에서 이 부과금은 중요한 재원이었고, 석유가격 안정화를 위한 비상 대책도 필요한 만큼 정유업계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이 부과금을 정유업계가 석유제품을 수출할 때 상당 부분 돌려받았다는 점이다. 일례로 2021년 기준 산자부가 거둔 석유수입부과금 징수액은 1조4849억원이었고, 환급금은 2조2319억원이었다. 당초 3조7168억원(징수액+환급금)을 부과했다가 60.0%를 환급한 셈이다. 

정유사에 횡재세를 부과하는 게 타당한 것인지는 더 논의해 볼 문제다. 하지만 논의 과정에서 편향된 시각이 있어선 곤란하다. 횡재세 부과를 막기 위해 정유업계의 주장을 대변하고 국민의 고통을 모르는 척하는 게 윤석열 정부의 목표는 아니지 않은가.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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