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의 진실➋
헌법에 노동3권 보장했지만
진짜 사장 아니면 교섭 불가능
진짜 사장들은 여전히 뒷짐만
법원은 원청의 사용자성 인정
제도 정비는 혼란 부를 수 없어

노동조합법 개정안은 다양한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진짜 사장을 찾아주는 도구다.[사진=뉴시스]
노동조합법 개정안은 다양한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진짜 사장을 찾아주는 도구다.[사진=뉴시스]

“심각한 사회 혼란을 야기할 것이다.” 야당이 추진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법률안’의 내용 중 ‘사용자’를 다시 정의한 걸 두고 이런 비판이 나온다. 사용자 범위를 넓히면 노조의 교섭 요구도 늘고, 기업의 책임도 늘어나지 않겠냐는 거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미 올해 1월 법원은 사용자 정의를 확대 해석하는 판결을 내려서다. 이미 나온 판결을 뒷받침하는 법이 과연 그렇게 큰 혼란으로 이어질까.

우리는 1편에서 노동조합법 개정안(일명 노란봉투법)에 쏟아지는 비판에 오류가 있다는 점을 짚었다. 노조의 쟁의행위로 인해 손해가 발생했을 때는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은 수정안을 거치면서 죄다 삭제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란봉투법이 아니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그렇다면 이번 노동조합법 개정안의 핵심은 뭘까. 그건 바로 사용자를 재정의再定義해서 노동자의 ‘진짜 사장(사용자)’을 찾아주는 거다. 1편에서 언급한 것처럼 개정안은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ㆍ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는 사용자’로 규정하고 있다. 원안에서 바뀌지 않은 내용도 바로 이 부분이다. 사용자의 범위를 좀 더 넓힌 거다. 

물론 정부와 여당, 재계는 이를 두고도 무분별한 교섭 요구가 일어날 것이라면서 심각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지나친 걱정이라는 반론이 나온다. 먼저 개정안에 지금과 같은 사용자 규정이 포함된 사회적인 배경부터 살펴보자. 

헌법 제33조는 노동3권(단결권ㆍ단체교섭권ㆍ단체행동권)을 명시하고 있다. 노동자가 사용자와 대등한 관계에서 교섭을 통해 자신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 법조항을 근거로 노동자는 얼마든지 노조를 만들 수 있고, 불법적인 행위만 아니라면 얼마든지 정당한 쟁의행위를 통한 노조 활동이 가능하다. 

문제는 자신의 ‘노동조건을 개선해 줄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용자’와 ‘근로계약을 맺은 사용자’가 다른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이런 경우엔 노조가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사용자와 교섭을 하려 해도 제대로 된 교섭을 할 수 없다.  

예컨대 하청업체 노동자의 경우, 임금협상을 하려 해도 원청업체의 대금 지불 능력과 떼어놓고 볼 수 없다. 심지어 작업장 내에 휴게공간을 마련하는 것도 원청업체와의 협의가 없으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근로계약을 맺고 있는 사용자들 역시 “원청이 들어주지 않는 요구는 들어줄 수 없다”고 말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화물차주나 보험설계사, 학습지교사, 자동차판매원 등과 같은 특수고용노동자도 마찬가지다. 하청업체 노동자나 특수고용노동자들이 툭하면 원청업체에 “진짜 사장 나와라”라고 요구하는 건 그래서다.

그동안 이런 목소리를 낸 노조는 한두 개가 아니다. 각종 하청업체 노조와 비정규직 노조, 공공기관 자회사 노조, 택배노조를 비롯한 특수고용직 노조 등 숱하다. 그만큼 이중적인 노사관계로 인해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지 못한 노동자들이 많았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이런 요구에 응하는 원청업체는 거의 없다. 자신들이 하청업체 노동자나 특수고용노동자와 교섭테이블에 앉는다는 건 사용자로서 져야 할 다양한 책임(고용이나 복지 등)을 떠안는다는 것과 다름없어서다. 

여기서 주목할 건 최근 법원이 이런 경우 원청업체가 교섭에 나서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는 점이다. 바로 CJ대한통운과 택배노동자의 사례인데, 잠깐 이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CJ대한통운은 하청인 대리점과 위ㆍ수탁계약을 맺고 택배 물량을 보낸다. 하청인 대리점은 개별로 택배노동자와 배송 위탁계약을 맺어 이를 통해 택배를 배송한다. 택배노동자와 CJ대한통운은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그런데 택배노동자들이 하나둘 과로사하면서 택배노동자들 사이에선 노동조건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고, 그 결과 택배노조가 조직됐다. 

다만 대리점이 택배노동자의 노동조건을 개선해줄 수 없다는 게 문제였다. 택배노조는 CJ대한통운의 경영방침에 따라 업무 강도가 결정된다는 점을 들어 2015년 이후 수년간 CJ대한통운이 단체교섭에 나설 것을 주장했다. CJ대한통운 측은 “계약관계가 없다”는 이유로 단체교섭에 응하지 않았다.

택배노조는 중앙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 구제를 신청했고, 2021년 6월 중노위는 “CJ대한통운이 단체교섭을 거부한 건 부당노동행위”라고 판정했다. 그럼에도 CJ대한통운은 자신이 택배노동자의 사용자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CJ대한통운은 중노위 판정에 불복해 2021년 7월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올해 1월 12일 서울행정법원(1심)은 CJ대한통운의 부당노동행위구제 재심판정 취소청구를 기각했다. 교섭을 거부한 게 부당노동행위라면서 택배노조의 손을 들어준 거다. 아직은 1심 결과일 뿐이지만,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교섭에는 ‘진짜 사장’이 나서야 한다는 게 판결의 골자란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있다. 

이렇게 보면 야당이 밀어붙이고 있는 노동조합법 개정안은 오히려 법원 판결보다 뒤처진 제도적 정비로 봐야 한다. 법원이 이미 노동조합법 개정안의 취지와 걸맞은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과연 현실보다 뒤처진 법이 현실을 혼란스럽게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아 보인다. 

김은정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정부와 여당, 재계는 이번 노동조합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불법파업이 판칠 것처럼 주장하는데 이는 기우에 불과하다”면서 이렇게 주장했다.

“폭력이나 기물파손 등을 제외한 파업의 불법성은 사실 ‘진짜 사장’을 찾는 과정에서 부여된 측면이 있다.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 역시 ‘진짜 사장’에 교섭을 요구하느라 독(dock)을 점거한 것 아니겠는가. 애초에 ‘진짜 사장’이 노조와 적극적인 교섭에 나선다면 불법성이 있는 파업도 없었을지 모른다. 따라서 이번 개정안 통과로 불법파업이 늘고 쟁의도 늘어나 사회가 혼란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는 과도하다. ‘진짜 사장’에게 당연히 주어졌어야 하는 역할이 부여되는 것일 뿐이다. 오히려 현장이 좀 더 정리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노조를 만들고도 ‘진짜 사장’을 찾지 못해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지 못하는 이들은 숱하다. 일례로 자동차판매원들의 ‘진짜 사장’은 자동차 제조사인데 제조사가 교섭에 나서지 않아 근무여건 개선을 요구하지 못하고 있다.

학습지 교사들은 노동자로 인정받았어도 노조를 바라보는 기업의 태도에 따라 교섭을 하기도, 못하기도 한다. 똑같은 일을 하는데도 법의 보호를 받는 노동자와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뒤섞여 있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을 정리하는 게 바로 ‘진짜 사장 찾기’인 셈이다. 

물론 이번 노동조합법 개정으로 노동자들이 ‘진짜 사장’을 찾는 일이 무조건 쉬워지는 건 아니다.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노동조건을 지배ㆍ결정’하느냐의 여부를 따져봐야 해서다.

예컨대 노동조건을 지배ㆍ결정하는 사용자가 두곳일 경우 서로 책임을 떠넘길 수도 있고, ‘진짜 사장’이라고 생각되는 원청업체가 노동조건을 지배하거나 결정하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노동조합법 개정안이 지금의 내용대로 통과하더라도 제자리를 잡기까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거란 얘기다. 그런데도 정부와 여당, 재계는 노동조합법 개정안을 무조건 비판만 하고 있다. 이 비판은 과연 더 합리적인 대안을 만들어내는 데 필요한 건전한 논쟁일까.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