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기사취조단 1기 ❿
100일 훌쩍 넘긴 SPC 사태
1000억원 안전 투자 플랜
여전히 밑그림 구체화 작업 중
산재사고 예방할 수 있을까

강동석 SPL 대표는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지만 실제 처벌로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사진=연합뉴스]
강동석 SPL 대표는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지만 실제 처벌로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사진=연합뉴스]

# 2022년 10월 15일 새벽 6시께, 일어나선 안 될 일이 벌어졌다. SPC그룹 계열의 SPL 평택공장에서 일하던 20대 노동자가 소스 배합기에 빨려 들어가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했다. 조사 결과, 해당 배합기엔 뚜껑과 뚜껑을 열면 작동을 멈추는 연동장치가 설치돼 있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 배합기에 뚜껑이 없었던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효율성’ 때문이다. 매번 뚜껑을 여닫으려면 더 많은 시간이 들고, 그만큼 생산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란 거다. 노동자의 안전보다 효율성이 중요했단 방증이다. 

# SPC 측은 잘못을 시인했다.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함과 동시에 재발방지대책을 내놨다. 향후 3년간 1000억원을 투자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그로부터 4개월여가 흐른 지금, SPC에선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을까.

# 한민수 경기대(외식조리학) 학생은 ‘“보상법 있지만 을이 뭘…” SPC 불매와 점주의 눈물(더스쿠프 통권 517호)’ 기사를 읽고, SPC에 정말 쇄신 의지가 있을지 의문을 품었다. 이번엔 사고 발생 130여일이 지난 지금 SPC의 현실을 취재했다. 대학생과 더스쿠프, 온라인 북 제작업체 북팟이 기사의 가치를 같이 만들어가는 ‘대학생 기사취조단’ 열번째 편이다.

“안전하고 신뢰받는 ‘New SPC’로 거듭나겠다.” SPC그룹(이하 SPC)은 지난 1월 ‘안전경영 선포식’을 개최하고 완전히 새로운 SPC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지난해 10월 15일 SPC 계열의 SPL 평택공장에서 노동자 사망사고가 발생한 지 2개월여 만이었다. 

사실 SPL 노동자 사망사고는 유가족이나 동료 직원들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큰 충격과 상처를 남겼다. 새벽근무 중이던 스물세살의 노동자가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없는 샌드위치 소스 배합기에 끼어 사망했기 때문이다. 더욱 안타까운 건 사고 즉시 기계를 멈춰세울 동료도 주위에 없었다는 점이었다. 

국내 제빵업계 1위를 넘어 ‘글로벌 식품 회사’를 꿈꾸는 SPC의 초라한 민낯이 드러난 순간이었다. 이 사고에서 출발한 SPC 불매운동은 파리바게뜨 등 가맹점주에게도 피해를 입혔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10월 28일부터 한달여간 SPC의 18개 계열사 58개 사업장을 감독했는데, 86.5%(산업안전 분야 감독 대상 52개소 중 45개소) 사업장에서 총 277건의 법 위반 사항이 적발됐다. ▲기본 안전 조치 미흡 ▲안전·보건 관리자 미선임 ▲노사 참여 산업안전보건위원회 미구성 ▲산업재해 발생원인 기록 미보존 등 위반 항목도 다양했다. 

근로기준 분야에선 12억원에 달하는 체불임금과 116건의 법 위반사항이 드러났다. 특히 노동자 2만9929명의 연장·야간·휴일 근로수당을 지급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노동자들의 안전은 등한시하고, 정당한 노동의 대가는 지불하지 않은 결과였다.

이 때문인지 SPC 계열사에선 산재사고 발생 건수가 꾸준히 증가해 왔다. 이은주 정의당 의원실에 따르면 SPC 계열사 4곳(파리크라상·PB파트너즈·비알코리아·SPL)에서 발생한 산재사고는 2018년 76건에서 2021년 147건으로 2배가량 늘었다. 지난해엔 SPL 노동자 사망사고가 발생하기 직적인 9월까지 115건의 산재사고가 발생한 바 있다. 

어쨌거나 ‘쇄신’ 의지를 밝힌 SPC는 지난 1월 “고용노동부의 지적 사항을 100% 개선했다”고 밝혔다. SPL 노동자 사망사고를 계기로 출범한 ‘SPC 안전경영위원회’가 주도한 현장점검도 실시했다. 안전경영위원회는 지난해 11월 SPC가 SPL 사고 후속대책으로 출범한 조직이다. 독립성 확보를 위해 외부위원 4명과 내부위원 1명으로 구성했다. 위원장은 정갑영 연세대 명예특임교수·유니세프한국위원회 회장이 맡았다. 

그렇다고 모든 게 끝난 건 아니다. 어쩌면 중요한 건 지금부터다. 사람들의 관심이 사그라들면, 관성대로 돌아가는 게 많은 기업이 보여온 습성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SPL 노동자 사망사고는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다.

강동석 전 SPL 대표 등은 2월 10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검찰 조사 결과가 어떻게 나오는지도 지켜봐야 한다. 우리가 지금 SPL 노동자 사망사고를 다시 짚어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참고: SPC는 지난 2월 22일 박원호 SPC 전 부사장을 SPL 대표로 선임했다. 박 대표는 2021년부터 SPC 안전경영본부장을 역임했다.]

■ 3년간 1000억원 투자 계획 = 가장 먼저 짚어볼 건 SPC가 공언한 ‘재발방지대책’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느냐다. SPC는 사고 발생 6일 후인 지난해 10월 21일 허영인 회장의 대국민 사과문 발표와 함께 재발방지대책을 내놨다. 

향후 3년간 1000억원을 투자해 전사적인 안전 관리를 강화하겠다는 게 골자였다. 안전시설 확충 및 시설 자동화에 700억원, 작업환경 개선과 안전 문화 형성에 2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사고가 발생한 SPL에는 산업 안전 개선을 위해 100억원을 집중 투자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4개월여가 흐른 지금까지 SPC가 이렇다 할 계획을 내놓지 않으면서 “재발방지대책이 선언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SPL 평택공장에서 근무하는 노동자 A씨는 “사고가 발생한 배합기에 안전장치를 설치하고, 낡은 설비를 교체하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이 정도의 변화가 회사가 밝혔던 3년간 100억원(SPL 대상) 투자 계획에 걸맞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박채은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SPC가 약속을 제대로 지키는지 검증할 사회적 감시망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면서 말을 이었다. “SPC가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대규모 투자를 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세부적인 시행 계획은 밝히지 않고 있다. SPC가 실제로 어떻게 투자하고 노동환경은 또 얼마나 개선되는지 감시하고 검증할 일종의 ‘옴부즈만’ 제도가 필요하다고 본다.”


김은정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역시 “S PC가 안전경영위원회를 운영하고는 있지만, 보다 더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외부 노동·시민단체 등이 참여하는 검증단을 구성해야 할 듯하다”면서 “외부의 견제 속에 후속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 노동자 신뢰 회복 = SPC의 과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무엇보다 등 돌린 SPC 노동자들에게 신뢰를 안겨야 한다. 일례로 고용노동부의 기획감독 결과, SPC 계열사에서 12억원대 체불임금이 적발됐다. SPC 측이 부랴부랴 체불임금을 지급하긴 했지만, 노동자들의 실망감을 씻어주진 못했다. 

SPL 노동자 A씨는 “3년치 체불임금 100여만원을 받은 노동자들 중엔 이전 5년, 8년 동안 각종 수당을 지급받지 못한 이들이 적지 않다”면서 “3년치 체불임금이 12억원이라면, 그동안 회사가 지급하지 않은 수당이 얼마나 많다는 얘기겠냐”고 꼬집었다. 

그렇다고 노동자들이 과거 체불임금을 요구하는 것도 쉽지만은 않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체불임금(임금채권)을 요구할 수 있는 시효는 최대 3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결국 지금 SPC가 노동자들에게 할 수 있는 ‘보상’은 관행을 벗어나 신뢰를 구하는 것인 셈이다. 

■ 맞교대 제도 개선 = 노동자를 장시간·고강도 노동으로 내모는 ‘맞교대 제도’를 개선해야 하는 것도 SPC의 과제다. 12시간 주·야간으로 돌아가는 맞교대 탓에 노동자의 피로도가 높아지고, 산재사고 발생 확률이 커진다는 지적이 많아서다. 세상을 떠난 SPL 노동자는 10시간 야간 근무를 하고, 교대 시간 2시간을 앞둔 시점에 사고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야간 노동을 ‘2급 발암물질’로 규정한 바 있다. 지난해 환노위 국감에서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역시 “12시간 주야 맞교대 노동은 노동자의 정신과 삶을 갉아먹어, 국제암연구소도 2급 발암물질로 분류했다”면서 “이번 사고를 계기로 (SPC가) 살인적인 주야 맞교대 방식을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SPC 안전경영위원회는 교대 제도 개선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SPC 사태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선 회사의 노력만큼이나 사회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지난해 10월 사고 발생 직후 모든 미디어의 관심은 SPC로 향했다. 금배지를 단 국회의원들도 앞다퉈 사고 현장을 찾았다. 

같은 달에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감장엔 강동석 전 SPL 대표를 소환했다. 의원들은 “30만원짜리 안전장치가 없어서 사망사고가 발생하는 게 말이 되냐”며 강 전 대표를 강하게 질타했다. 

[사진|연합뉴스, 자료|더스쿠프] 
[사진|연합뉴스, 자료|더스쿠프]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핏대를 세우던 금배지 중 SPC의 후속조치에 관심을 갖는 이들은 많지 않다. SPC 사태 직후 ‘이태원 참사’ 등 수많은 사건사고가 터졌다는 점도 사람들의 망각에 영향을 미쳤다. 

혹자는 “정부(고용노동부)가 감시하면 되지 않느냐”고 물을지 모른다. 하지만 고용노동부의 감독은 ‘연례행사’에 불과하다.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SPL 평택공장의 경우 지난 5년간(2018~2022년 9월) 고용노동부의 산업안전보건감독을 6차례 받았다. 1년에 1번꼴로 감독을 받은 셈이다. 200만개에 달하는 사업장을 감독하는 고용노동부에 맡겨놔선 한계가 있다는 거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사업장 감독 주기가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지속적으로 관리 감독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채은 연구위원은 “국가 차원의 현장 지도도 필요하지만 사회적 관심이 끊기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한 지 어느덧 130일이 훌쩍 지났다. SPC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한민수 경기대(외식조리학) 학생
hmso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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