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차기 CEO 심사 명단 공개
우려했던 낙하산 인사 빠졌지만
외압에 경선 절차 두번이나 바꿔
연임 수순 구현모 사퇴 결정
낙하산 인사 막을 시스템 만들고도
정치권 압박에 제대로 가동 못해

KT의 차기 CEO에 오를 4명의 인물이 선정됐다. 업계가 우려했던 ‘정권의 낙하산’은 없었다. 그럼에도 정부 압박에 떠밀리듯 경선을 진행한 게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지울 순 없다. 더 큰 문제는 주인 없는 기업 KT가 외풍을 막기 위해 구축한 시스템이 누군가의 입김에 속절없이 무너졌다는 거다.

구현모 KT 대표가 연임을 포기하고 차기 대표이사 후보군에서 사퇴하기로 했다.[사진=연합뉴스]
구현모 KT 대표가 연임을 포기하고 차기 대표이사 후보군에서 사퇴하기로 했다.[사진=연합뉴스]

KT가 차기 최고경영자(CEO) 심사대상자 명단을 공개했다. 사외인사로는 박윤영 전 KT 기업부문장, 임헌문 전 KT 매스총괄이 뽑혔고 사내에선 신수정 KT 엔터프라이즈부문장, 윤경림 KT 그룹트랜스포메이션부문장이 선정됐다. 이중 최종 1인이 3월 말 주주총회에 이름을 올린다.

성과로 따지면 명단에 포함될 게 확실했던 구현모 현 KT 대표의 이름은 빠졌다. 구 대표는 일찌감치 사퇴 의사를 밝혔다. 그는 지난해 말부터 두번이나 연임 적격 판정을 받고도 후보 선임 절차가 3차례나 진행되는 초유의 사태 속에서 연임에 실패했다. 

원인은 정치권에서 불어온 외풍이었다. 당시 과정을 다시 들여다보자. 지난해 말 KT 대표이사후보심사위원회는 구현모 대표를 두고 ‘연임 적격’ 평가를 내렸다. KT는 이사회운영규정상 ‘연임 우선 심사제도’를 시행하고 있는데, 구 대표가 이 심사 제도를 통과한 결과였다. 

당시만 해도 구 대표의 연임은 수순이었다. 성과가 워낙 훌륭했다. 2020년과 2021년 두 해 동안 KT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모두 증가세를 기록했다. 지난해에도 KT는 매출과 영업이익으로 각각 25조6500억원, 1조6901억원을 올렸다. 상장 이후 역대 최대 매출 규모였다. 

구 대표가 취임하던 시기 2만원을 밑돌던 주가는 3만원을 훌쩍 넘었다. 구 대표가 성장이 정체된 통신기업(텔코)에서 디지털 플랫폼 기업(디지코)으로 전환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고, 이를 실현한 덕분이었다. 

그런데도 구 대표는 이사회에 “복수후보를 추천해 달라”고 요청했다. KT 최대주주인 국민연금공단이 마뜩잖은 시선을 보냈기 때문이다. 연임 결정이 나오기 전 김태현 국민연금 이사장은 “기업이 대표를 선임하는 과정에서 현직자를 우선 심사하는 관행은 결국 후계자 양성을 통한 지배구조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지배구조 기준과 원칙 정립이 필요하다”면서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이런 맥락에서 ‘복수후보 카드’를 꺼내든 구현모 대표 입장에선 다른 후보와 경쟁을 벌여 당당히 연임하겠다는 승부수를 던진 셈이었는데, 재심사에서도 구 대표는 최종후보로 낙점됐다. 그럼에도 국민연금은 “선정 과정이 불투명하다”고 문제를 제기했고,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주인 없는 기업의 지배구조를 투명화해야 한다”고 주문하면서 이 결정마저 번복됐다. 

KT 이사회는 지난 2월 9일 후보 확정을 백지화하고 공개경쟁 방식으로 회장을 선임하기로 했다. 모든 과정을 오픈하고 진행하는 경선엔 KT 전ㆍ현직 임원뿐만 아니라 전직 관료와 국회의원도 대거 몰렸다. 여전히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던 구 대표는 경선 레이스에서 중도 하차했다. 정부 차원에서 압박이 상당했던 만큼 재선임되더라도 대표직을 유지하는 게 어려웠을 거란 전망이 우세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사이 KT 안팎에선 여권발發 특정 후보 유력설이 확산하면서 ‘낙하산 인사’가 재현될 것이란 우려가 감돌았다. 다행히 우려는 기우로 확인됐다. 후보자 33명 가운데 압축된 4명은 모두 KT 전ㆍ현직 임원이었다. 정치권과 접점이 짙은 인사도 없었다. 출사표를 냈던 정ㆍ관계 인사들은 모두 고배를 마셨다. 

업계 안팎에선 4인 모두 납득할 만한 후보라는 평가를 내린다. 박윤영 전 사장과 임헌문 전 사장은 과거 구 대표와 CEO 자리를 겨룬 적 있고, 윤경림 사장과 신수정 부사장 역시 전문성과 경영 리더십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이번 경선이 합리적이라고 해도 곱씹어봐야 할 문제가 있다. CEO 선임 과정에서 어디선가 외풍이 불어왔고, 그 결과 연임에 강한 의지를 드러냈던 구 대표가 낙마했다는 점이다. CEO 선임 프로세스를 두번이나 바꿔가면서 진행한 것도 촌극이다. 

사실 KT는 민영화 이후 CEO 선임을 둘러싼 잡음이 끊이질 않았다. KT의 CEO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함께 교체됐다. 역대 정부는 공공기관에 낙하산 인사를 내리꽂듯 KT의 수장을 갈아치웠다. 이 과정에서 남중수 전 사장, 이석채 전 회장, 황창규 전 회장 등이 검경의 수사를 받았고 그때마다 KT는 ‘CEO 리스크’에 시달렸다. 

KT에 낙하산 인사를 꽂는 게 쉬웠던 건 선임 방식이 단순했기 때문이다. 사외이사 전원과 사내이사 1명으로 구성된 CEO추천위원회에서 후보를 선정한 후 주주총회에 상정해 통과하면 끝이었다. 

CEO 자리를 둘러싼 잡음이 끊이질 않자 KT는 2018년 정관을 뜯어고쳤다. 이에 따라 CEO추천위원회가 갖고 있던 회장 후보 추천권과 임명 권한을 이사회와 지배구조위원회로 이관했다. CEO추천위원회는 후보자를 심사하는 기능만 갖고, 이사회에 심사 결과를 보고하도록 해 권한을 제한했다. 이름도 대표이사후보심사위원회로 바꿨다. 과정을 세분화하고 체계화해 외부 인사가 낙하산처럼 영입되는 걸 미연에 방지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사내이사 1명, 사외이사 4명 등 총 5명의 멤버로 구성된 지배구조위원회는 사외이사 비중을 높이고 경영진의 입김을 최소화하는 데 힘을 실었다. 심사기준 중 하나인 ‘경영경험’도 ‘기업 경영경험’으로 바꿨다. 관료나 정치인 출신 인사가 CEO가 되는 길을 틀어막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그 결과, 2단계를 거쳐 선임됐던 CEO 선임 과정이 ‘지배구조위원회→대표후보심사위원회→이사회→주주총회’ 등 4단계를 거치도록 바뀌었다. 이 과정을 통해 구 대표는 2020년 3월 KT에 취임했다. 남중수 전 사장 이후 11년 만에 내부인사 출신 CEO가 오른 건 선임 규정을 바꾼 덕분이란 평가가 나왔다. 

KT는 현재 차기 대표 선임 작업을 진행 중이다.[사진=연합뉴스]
KT는 현재 차기 대표 선임 작업을 진행 중이다.[사진=연합뉴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구 대표가 ‘복수 경선’을 요청한 뒤엔 지배구조위원회가 후보 심사대상자를 선정하고, 대표이사후보심사위원회가 후보자를 결정했다. 이어 이사회가 후보를 확정하는 과정을 거쳐 구 대표의 연임 여부를 결정했다. 

그런데 국민연금의 반대와 정치권에서 나온 말 몇 마디로 이런 시스템은 무력화했다. 이동통신 업계 관계자는 “낙하산 인사를 방지하기 위한 장치를 촘촘하게 만들어놔도 외부 입김이 작용하면 결국은 틀어진다는 게 문제”라면서 “이번에 최종 후보로 오른 사내인사 2인의 경우 직전 복수경선 과정에서 구 대표에게 밀린 인사였을 수 있다는 점도 우스운 일”이라고 꼬집었다. 

3번째 경선을 통해 뽑은 후보를 두고도 정치권은 여전히 KT를 흔들고 있다. 과방위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3월 2일 기자회견을 열어 “KT 출신 전ㆍ현직 임원 4명만 통과시켜 차기 사장 인선이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했다”면서 “KT 차기대표 인선을 즉각 중단하라”며 으름장을 놨다. KT의 예비 수장은 도대체 어떤 인물이 오를까.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