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지원법 가드레일 발표
반도체 생산량 제한 걸었지만
당초 우려보다는 완화한 조치
독소조항 위험요인 남아 있어
미국 정부가 글로벌 반도체기업들에 ‘보따리’를 푸는 대신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었다. 반도체지원법(CHIPS and Science Act)의 세부 규정안을 통해서다. 지난해 8월 공표된 반도체지원법의 골자는 미국에서 반도체를 제조ㆍ생산하는 기업들에 총 390억 달러(약 510조원)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거다.
여기엔 글로벌 기업들의 현지 투자를 유인하고, 이를 통해 미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을 강화하려는 바이든 정부의 포석이 깔려 있다. 지나 러몬도 미 상무부 장관은 “반도체지원법을 통한 혁신과 기술은 미국과 동맹국들의 기술적ㆍ국가안보적 이점을 확대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전례 없는 규모의 산업지원책에 보조금을 확보하기 위한 반도체기업들의 경쟁도 치열했다. 지난 2월 미 언론 뉴욕타임스에선 “반도체 제조업체들이 보조금을 둘러싸고 공개적ㆍ비공개적 쟁탈전에 돌입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렇게 글로벌 반도체기업들이 촉각을 곤두세운 상황에서 미 상무부는 지난 3월 21일(현지시간) ‘반도체지원법 가드레일(안전장치)’을 발표했다. 미 상무부가 가드레일에 명시한 세부 규정에 따르면, 미국 정부의 보조금을 받는 반도체기업은 반도체 생산량의 제한을 받는다.
가령, 보조금 혜택을 받는 기업은 향후 10년간 중국에서 반도체 생산능력을 5% 이상 확장할 수 없다. D램(컴퓨터에서 정보ㆍ명령을 판독하고 기록할 수 있는 기억장치)과 같은 첨단 반도체의 경우에도 생산능력을 5% 이상 키우지 못한다.
구세대(레거시) 반도체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보조금 수혜 기업은 구세대 반도체 생산능력을 10% 이상 늘리지 못하는 데다, 전체 생산량의 85% 이상을 ‘현지(미국) 시장’ 수요를 충족하는 데 활용해야 한다. 한마디로 ‘미국에서, 미국 시장을 위해, 적정한 규모로’ 반도체 사업을 하라는 얘기나 다름없는 셈이다.
언뜻 삼성전자ㆍ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기업에 불리한 조건으로 보이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업계에선 되레 “우려했던 것보단 기준이 완화된 편”이라며 안도하는 분위기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위원은 “당초 미 정부가 중국에서의 반도체 생산 자체를 막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었다”면서 “이번 가드레일을 통해 중국 생산기지를 지켜내고, 소량이나마 반도체 생산량을 증대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겨서 우리 기업들에 심각한 타격은 없을 것으로 본다”고 분석했다.
물론 위험요인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중국 생산 전면 봉쇄’란 최악의 수는 피했지만, 국내 기업들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독소조항이 존재해서다.
보조금을 수령하는 반도체기업엔 ▲초과이익 환수 ▲군사용 반도체 우선 공급 ▲반도체 공동연구 참여 제한 등의 독소조항이 적용된다. 이는 자칫 경영개입이나 기술개발 제한으로 이어질 수 있다. 생산능력도, 연구ㆍ개발(R&D)도 마음대로 키워나갈 수 없는 상황에서 K-반도체는 해법을 찾을 수 있을까.
윤정희 더스쿠프 기자
heartbri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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