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반도체법 가드레일 영향
수익성 문제로 줄줄이 탈출
美 뱅가드 중국 철수 이유

미국 정부가 중국에서 자국 반도체 회사들을 완전히 철수시키는 데 꼬박 3년이 걸렸다. 미국 상무부는 21일(현지시간) 반도체법 가드레일(안전장치)을 발표하고, 전 세계 반도체 회사를 향해 사실상 10년 안에 중국에서 철수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이 시그널은 글로벌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미국이 중국 내 첨단 반도체 시설 투자를 금지하는 내용의 반도체 지원법 가드레일을 발표했다. 사진은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부 장관. [사진=뉴시스]
미국이 중국 내 첨단 반도체 시설 투자를 금지하는 내용의 반도체 지원법 가드레일을 발표했다. 사진은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부 장관. [사진=뉴시스]

■ 미 반도체의 철수=미국 상무부가 21일 ‘반도체 지원법’의 보조금 가드레일(안전장치)을 발표했다. 미국 정부의 보조금을 받는 반도체기업들은 앞으로 10년간 중국에서 첨단 반도체 생산능력을 5% 이상 확대하지 못한다. 반도체 생산에 들어가는 웨이퍼의 양을 생산능력으로 규정해 기술력에 따라 더 많은 반도체를 생산할 여지는 있다. 상무부의 첨단 반도체 기준은 로직 반도체의 경우 28나노미터(㎚), D램은 18㎚, 낸드플래시는 128단이다. 

사실 미국이 중국의 반도체 굴기에 삐딱한 시선을 보내기 시작한 건 2015년이다. 중국 칭화유니그룹은 2015년 마이크론을 230억 달러에 인수하려 했지만, 미국의 외국인 투자심의위원회가 이를 불허했다. 2016년에는 화룬그룹이 페어차일드를, 칭화유니그룹이 샌디스크를 인수하려 했지만 모두 미국 당국의 반대로 실패했다. 

미중 경제 갈등은 2018년 무역분쟁으로 시작됐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2018년 3월 중국과의 불공정 무역 관행에 관한 행정명령 2건에 서명한 게 도화선이었다. 미국은 무역확장법에 근거해 중국에서 수입한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각각 25%, 10% 관세를 부과했다. 또 무역법에 근거해 2017년 대미對美 수입액이 500억 달러가 넘는 중국의 1300여개 품목에 관세를 부과했다. 

중국도 반격했다. 중국은 2018년 7월 미국 퀄컴의 NXP 인수 승인을 거부했고, 마이크론 일부 제품이 지식재산권(IP)을 침해했다며 판매를 금지했다. 그러자 미국이 반격의 수위를 높였다. 같은해 미국 사법부는 푸젠진화반도체가 기술을 탈취했다는 이유로 기소했고, 상무부는 이 회사에 미국 반도체 장비나 소재를 수출하지 못하도록 조치했다. 푸젠진화반도체는 2019년 1월 결국 D램 사업을 포기했다. 

2018년 2월에는 인텔이 5세대 통신 칩과 관련해 칭화유니그룹과의 협력을 중단했다. 같은해 4월 미국 상무부가 작성한 ‘거래 주의 대상 리스트’에 따라서 반도체 장비회사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가 중국 기업 및 연구기관 3곳과의 거래를 중단했다. 미국 반도체가 중국으로부터 철수하는 데 걸린 시간은 3년 남짓이다.

■ 한국 기업의 철수=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갈등으로 한국 기업들의 철수 시계는 더 빨리 돌아가고 있다. 미 상무부의 가드레일에 따르면 주어진 시간은 10년이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미국 상무부의 보조금을 받으면 대규모 투자를 집행한 중국에서 향후 10년간 5% 이상 웨이퍼를 투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에서 철수했거나 철수를 준비 중인 한국 기업들도 늘어나고 있다. 19일 한샘은 공시를 통해서 중국 진출 6년 만에 한샘장식법인을 청산하고, 남아있는 법인 3곳을 통해 중국의 B2B 시장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한샘의 중국 진출 이후 누적 적자는 888억원이다. 

삼성중공업은 중국 법인 영성가야선업 유한공사를 매각했다. 이 법인의 2021년 순손실은 86억원이었다. 현대제철은 현재 중국 베이징법인 매각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데, 올해 상반기 중에 매각 절차를 마무리할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제철의 중국 베이징법인은 5년 동안 누적 1058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포스코는 지난해 초, 동국제강은 지난해 7월 각각 중국 지분 대부분을 매각했다. 

반도체를 제외한 대부분의 한국 기업들은 수익성 악화로 중국 시장에서 발을 빼고 있다. 2017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 부지를 한국 정부의 요청으로 제공했던 롯데그룹도 수익성이란 잣대로 철수와 진입을 결정하고 있다. 롯데제과는 현재 생산기지인 칭다오법인 매각을 추진하고 있지만, 롯데칠성음료는 올해 1월 상하이에 현지 판매법인을 신설했다. 

■ 현대차그룹의 진격=현대차그룹은 최근 중국 전기차 시장을 정조준하고 있다. 최근 상하이에서 자사 전기차 콘셉트 모델을 처음 공개한 기아차의 행보는 신호탄 격이다. 현대차그룹의 중국 시장 점유율은 급락세다. 현대차그룹의 중국 점유율은 2018년 3.4%, 2019년 3.1%, 2020년 2.3% 2021년 1.8%에 이어 2022년 1.7%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포기하기에는 중국 시장이 너무 크다. 중국은 세계 최대의 자동차 시장이다. 중국 자동차 판매량은 2017년 연간 2888만대로 정점을 찍었고, 2021년 2628만대, 2022년에도 2718만대를 기록했다. 특히 전기차 등 친환경 에너지차 판매량은 2021년 352만대, 2022년 567만대였다. 지난해 기준 전 세계 전기차 판매량 802만대 중 중국에서만 66.3%가 팔렸다. 생산량도 막대하다. 중국의 지난해 자동차 생산량은 전년 대비 3.6% 증가한 2702만대였다.  

■ 금융회사의 엇갈린 선택=아직까지 글로벌 금융회사에 탈중국은 다른 나라 얘기다. 미국과 중국이 갈등하기 시작한 2018년 이후에 중국 금융시장에 진출하거나 규모를 키운 금융회사는 8곳이다.

미국 대표 금융회사인 JP모건체이스는 2019년 3월 중국에 4억4800만 위안을 투자해 증권회사를 세웠다. 중국과 각을 세우고 있는 일본도 대표 증권사인 노무라가 10억 위안을 투입해 증권회사를 만들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은 2021년 8월 30일 중국에서 10억 달러 규모의 뮤추얼펀드를 출시했다. 

중국이 현재 유일하게 외국 자본에 우호적인 분야는 금융시장이다. 2017년 증권사, 자산운용사, 선물회사의 외국인 지분 한도를 51%로 상향한 중국은 3년 후 지분 한도를 폐지한다고 발표했다. 생명보험사의 지분 한도 역시 51%로 높이고 5년 후 한도를 폐지한다.

중국 은행보험감독관리위원회는 2018년 8월 25%였던 은행의 외국인 지분율 한도를 전면 폐지했다. 지난해에는 해외 기관투자자에게 중국 내 41개 파생상품 시장을 개방했다. 중국의 금융 개방은 자국 산업에서 가장 낙후된 부문이 금융이라는 위기감 때문으로 풀이된다. 

세계 2위 자산운용사인 미국 뱅가드 그룹이 중국에서 완전히 철수할 것을 보인다.[사진=뉴시스]
세계 2위 자산운용사인 미국 뱅가드 그룹이 중국에서 완전히 철수할 것을 보인다.[사진=뉴시스]

이런 상황에서 22일 세계 2위 자산운용사인 미국 뱅가드 그룹이 중국에서 완전히 철수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블룸버그 등 외신들은 뱅가드 그룹이 상하이 지사를 폐쇄하겠다는 의사를 중국 정부에 밝혔고, 알리바바 산하 앤트그룹과 합작한 로보 어드바이저 사업에서도 철수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뱅가드 그룹은 2020년 홍콩·일본 사무소를 폐쇄하고 상하이를 아시아 허브로 선택할 정도로 중국 사업에 집중해 왔다. 하지만 결국 수익성 문제가 불거졌다. 뱅가드 그룹은 예상과는 달리 지난해 중국에서 380만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2021년 시작한 뱅가드의 로보 어드바이저 사업도 수수료 반값 전략을 썼지만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했다.

중국 금융시장엔 또다른 불씨가 존재한다. JP모건체이스, 뱅크오브아메리카, 씨티그룹, 웰스파고 등 미국 대표 금융회사 7곳의 CEO들은 지난해 9월 미 하원 금융위원회 청문회에 참석해 특정한 경우에는 중국에서 철수하겠다고 밝혔다. 그 특정한 경우는 중국이 대만을 침공했을 때다.

미국 금융회사들은 지난해 2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되자 정부 뜻에 따라 러시아에서 일제히 철수한 바 있다. 브라이언 모이니핸 뱅크오브아메리카 CEO는 이 자리에서 “우리는 지난 수십 년간 중국에서 사업을 했지만, 늘 정부 지침을 따라왔다”고 말했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ayhan0903@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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