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돈이 쌈짓돈인가➋
출시 5년차 접어든 제로페이
400억원 넘는 혈세 쏟았지만
부진에 허덕이는 결제 실적
가맹점 63.1% 결제금액 0원
정권 바뀌자 관련 예산도 줄어들어

정부와 서울시가 야심 차게 론칭한 제로페이가 출시 5년차에 접어들었다. 그동안 정부가 제로페이에 투입한 예산은 400억원에 이른다. 하지만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고도 여전히 실적 부진에 허덕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서울시가 제로페이에서 사실상 발을 빼면서 어려움은 더 커질 전망이다. 

정부와 서울시가 2018년 출시한 제로페이가 여전히 부진에 허덕이고 있다.[사진=뉴시스] 
정부와 서울시가 2018년 출시한 제로페이가 여전히 부진에 허덕이고 있다.[사진=뉴시스] 

“소상공인의 수수료 부담을 줄여주는 착한 결제시스템” “몇몇 아는 사람만 사용하는 반쪽짜리 간편결제”…. 올해로 출시 5년차에 접어든 제로페이를 향한 엇갈린 평가다. 2018년 12월 시범사업을 시작한 제로페이는 당시로선 생소했던 ‘QR코드’를 활용한 모바일 간편결제 서비스였다. 여기엔 공공 모바일상품권 결제 기능도 있었는데, 앱에서 지역상품권(서울사랑상품권) 등 공공 모바일상품권을 구매하면 제로페이 가맹점에서 사용할 수 있었다.  

제로페이는 서울시와 중소벤처기업부가 주도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역점사업으로 ‘서울페이’로 불리기도 했다. 지자체와 정부의 지원 탓인지 제로페이 출시엔 국내 20개 은행과 4개의 간편결제 사업자가 참여했다. 출시 이듬해엔 유동인구가 많고 소상공인 점포가 밀집한 전국 109개 상권을 ‘제로페이존’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제로페이의 목표는 소상공인을 힘들게 했던 결제 수수료를 획기적으로 줄이겠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제로페이의 수수료는 이름처럼 저렴하다. 제로페이로 결제하면 연매출액 8억원 이하 가맹점은 수수료가 0%다. 8억~12억원은 0.3%, 12억원 초과는 0.5%다. 신용카드 수수료가 연매출 3억원 이하 0.5%, 3억~5억원 1.1%, 5억~10억원 1.25%라는 걸 감안하면 제로페이의 수수료가 낮은 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출시 당시 3년이면 시장에 정착할 수 있다고 자신했던 제로페이는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었을까. 제로페이는 출시 초기부터 실적 부진이란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서울시는 제로페이의 출시 첫해 목표 결제금액을 8조5000억원으로 잡았지만 출시 이듬해인 2019년 누적 결제금액은 767억원에 불과했다. 

물론 시장의 관심을 끌었던 적이 있긴 하다. 서울시와 정부가 코로나19 재난지원금을 지급했던 2020년이다. 그해 4월 서울시는 코로나19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했다. 이 과정에서 서울시는 모바일 지역상품권인 서울사랑상품권으로 재난지원금을 받으면 지원금을 10% 더 지급했다. 

일례로 20만원의 서울시 재난지원금을 제로페이에서 쓸 수 있는 서울사랑상품권으로 받으면 22만원을 받을 수 있었다. 이 때문인지 그해 2월까지 200억원을 밑돌던 월평균 결제액이 4월 1021억원, 5월 1465억원 등으로 크게 증가했다. 서울시 재난지원금을 제로페이에서 쓸 수 있는 서울사랑상품권으로 받은 서울 시민이 적지 않았다는 거다. 

정부가 제로페이에 400억원에 달하는 예산을 투입했지만 전체 가맹점의 63%는 결제금액이 0원이었다.[사진=뉴시스] 
정부가 제로페이에 400억원에 달하는 예산을 투입했지만 전체 가맹점의 63%는 결제금액이 0원이었다.[사진=뉴시스] 

하지만 관심은 오래가지 않았다. 구자근 의원(국민의힘)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138만3000개의 제로페이 가맹점 가운데 누적결제금액이 0원인 가맹점 수는 87만2792개로 전체의 63.1%에 달했다. 특히 전체의 83. 4%는 누적결제금액이 100만원 이하였다. 누적결제금액이 1000만원을 넘는 가맹점 수는 6만4087개에 불과했다. 전체의 4.6% 수준이다.  

제로페이의 입지는 더 좁아질 전망이다. 무엇보다 든든한 뒷배가 사라졌다. 2019년부터 제로페이를 운영하는 곳이 서울시와 중소벤처기업부에서 민간 재단법인인 한국간편결제진흥원(이하 한진원)으로 변경되면서다.

집권여당도 제로페이를 밀어붙였던 더불어민주당에서 국민의힘으로 바뀌었다. 이는 제로페이를 향한 정부의 관심이 줄어들 수 있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제로페이 관련 예산은 2021년 135억6000만원에서 지난해 102억원, 올해 94억원으로 계속해서 감소하고 있다.   

서울시가 사실상 제로페이에서 발을 뺐다는 것도 악재다. 서울시는 지난해 1월 서울페이플러스앱을 새롭게 출시했다. 서울플러스페이는 모바일 지역상품권인 서울사랑상품권을 구매·결제하는 앱인데, 이 상품권을 판매하는 대행업체도 한진원에서 신한금융 컨소시엄(신한은행·티머니·카카오페이)으로 변경했다. 이에 따라 제로페이에선 서울사랑상품권을 구매할 수 없게 됐다. 서울사랑상품권이 빠진 만큼 제로페이 결제금액이 줄어들 공산이 크다. 

간편결제 업계 관계자는 “제로페이에서 서울사랑상품권이 차지했던 비중은 매우 높았다”며 “서울페이플러스 출시로 제로페이 결제금액이 50% 이상 줄었다는 얘기도 나온다”고 말했다. 그는 “정권이 바뀌고 제로페이를 향한 정부의 스탠스도 이전과는 많이 달라졌다”며 “경기침체의 여파로 소비가 둔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직불 시스템인 제로페이가 활성화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제로페이에 적지 않은 예산을 투입했다는 점이다. 국회예산처에 따르면 제로페이에 쏟아부은 정부예산은 2019년 이후 400억원에 이른다.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도 여태껏 부진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셈이다. 

한진원 관계자는 “제로페이의 월별 결제 금액 등을 알려주기 어렵다”며 말을 이었다. “서울사랑상품권의 이탈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건 사실이다. 하지만 1년가량의 시간이 지나면서 정상화하고 있다. 가맹점도 꾸준하게 늘고 있다. 리오프닝에 대비해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가 많이 사용하는 유니온페이와의 제휴에도 나섰다. 유커가 QR코드를 이용한 결제에 익숙한 만큼 긍정적인 효과가 기대된다.”

한진원에 따르면, 지난 5일 기준 제로페이의 가맹점 수는 167만1235개, 누적 결제금액은 6조1956억7900만원이다. 단순계산하면 가맹점당 연평균 92만6000원이 제로페이로 결제된 셈이다. 400억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한 사업치곤 결과가 초라하기 짝이 없다. 

서지용 상명대(경영학) 교수는 “막대한 비용을 투입하고 가맹점 확대에도 나섰지만 제로페이는 직불 결제시장을 주도하는 대신 공공상품권 유통 플랫폼으로 전락했다”며 “신용카드 수수료가 낮아지면서 가맹점은 제로페이 도입의 실효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출시 5년차에 접어든 제로페이는 소상공인을 위한 착한 결제시스템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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